소냐를 생각하면서-고대진

2007.01.22 08:14

미문이 조회 수:308 추천:25

소냐를 만난 것은 한 1993년 버지니아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였다.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목사님도 안 계신 교회에 쏘냐가 나타났다. 한국말은 서툴지만 교육부 전도사님이 되어 보수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민 2세로 하버드를 졸업하고 그곳 신학교에서 그의 신랑 테드와 함께 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한글학교에서 한글도 배우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초 중 고등부를 세우고 대학생부의 성경공부반도 만들어 그녀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루퍼스(lupus)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창백한 얼굴에 가끔 홍반이 돋기도 했으며 몸이 많이 아플 때는 대학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던 난 병실을 자주 들릴 수 있었는데 그녀는 병상에서도 전혀 힘든 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항상 웃는 얼굴로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한국을 알려고 했고 아이들 하나 하나에게 사랑을 보여주었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좋은 카운슬링를 해주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소냐를 잘 따랐다. 그 중에 내 아이도 쏘냐를 잘 따랐는데 아마 소냐의 사랑을 잘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전도사 일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위해 프린스턴 대학으로 가고 나서 소식이 끊겼는데 갑자기 쏘냐에게서 리치몬드에 내려와 만나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2002년 봄이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들은 그녀의 지난 몇 년의 이야기는 가슴 아픈 일들의 연속이었다. 목회자로 활동하던 남편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고 목회를 그만둔 일에서부터 이혼 그리고 그 충격으로 뇌출혈을 일으켜 반신이 마비된 일… 그래도 석사학위를 마치고 그녀의 부모가 계신 매리랜드로 돌아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도 반신을 잘 움직일 수 없지만 겨우 걷고 또 손으로 자동차를 몰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나는 아직도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역설적이게도 내 논문의 제목이 ‘고통을 통해 만나는 하느님’이거든…” 대화 중에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쏘냐의 의지와 희망을 볼 수 있어서 쏘냐를 보내면서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집으로 가면서 쏘냐가 웃으면서 말했다. “난 혼자이지만 아직 젊고 예쁘고 하고싶은 일들이 많아. 공부해서 박사학위도 받고 또 가슴앓이하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생각해보면 모든 것에 대해 불평해도 모자란 형편인데도 쏘냐는 항상 긍정적인 쪽을 보고 있었으며 또 남을 도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이보다 훨씬 더 성숙하게 인생을 보고 있는 쏘냐의 마음이 내 누이같이 여겨져 언젠가 쏘냐의 삶을 다른 아픔을 격는 사람들에게 소개하여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고 또 곧 리치몬드에 다시 오리라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남편 테드가 남겨놓은 전화를 걸어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루퍼스에 걸린 쏘냐가 또 많이 아프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척 불안했다. 전화를 받은 테드는 울음으로 대답을 못한다. "소냐가 그만 우릴 떠났어. 영원히…" 엄마와 오랜만에 오페라를 보고 행복해 했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서 엄마를 보내고 베란다에 쓰러졌는데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른 다섯의 생일을 막 보낸 날이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면서 많이 아파한다. 언젠간 우리를 보내면서 다른 사람들도 아파하겠지. 피할 수 없는 이별이라도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만날 것이란 생각을 하면 이별은 그렇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맛보던 아픔과 안타까움이 사라진 평안과 행복에 둘러싸인 만남 이라면… 아마 소냐는 세상이 그래도 희망은 있고 그래도 내일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고 말할 것 같다. 페이스메이커 (Pace Maker) (둘) * - 소냐(Sonya) 에게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고 나의 생각은 너에게만 멈춰 있을 때 나는 가만히 이 시간으로 내리고 싶다 혼자 멈추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한적한 시골 역 같은 '지금'이라는 정거장에 날 슬그머니 내려놓고 연기를 뿜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겠지만 멀어지는 파아란 별에 너를 두고 혼자 내린 내 가슴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겠지 지금의 내가 어제로 돌아갈 수 없듯이 내일의 너는 지금으로는 결코 올 수 없겠지 멈추는 순간은 영하 273도 모두를 얼리는 절대온도 너의 눈물 나의 눈물 우리의 사랑까지도 박제된 물고기 느려지지 마 멈추지 마 가슴아 번쩍이는 번갯불 전자들의 춤 꿈은 훨훨 날개 달아 오르고 나는 또 내일로 걸어가야 한다 *심장의 박동이 느려져 멈추려 할 때 전기자극을 주어 다시 정상맥박을 회복하게 하는 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