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 한길수
2011.04.26 11:26
선생님께서 떠나시고 일 년 후
애나벨 리 왕국에서 편안하신지요
문단 언저리에도 봄이 왔고 마땅히
소풍가고 싶은데 누구와 가야할까요
광활했던 미주문학도 처음에는
눈길가지 않던 허허들판이었다지요
첫 발걸음이 난 후 수십 년 지나고
날로 커져가는 문학 행사에 항상
먼저와 앉아 계신 뒷모습에
슬며시 다가가 인사드리면 손잡으며
등대 불빛처럼 환하게 웃어주셨지요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 때문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문단활동
연간지를 계간지로 바꿔 놓고
벨리에서 엘에이 오가는 길
쉼 없이 다녀가신 그 거리에
편안함 마다하고 분주한 손길로
문인협회 반듯하게 세우신 강단
홍시 영글듯 밝아진 결실 보이세요
선생님께서 하나 둘 거두셔야죠
문학이 없으면 살아도 죽은 거라시며
죽어서도 문학만 하시겠다는 메아리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 어디 계세요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 말씀 때문입니다
일터에 찾아와 작품디스켓만 주고
발길 따라나서기 무섭게
손 저으시는 바람 같았던 것 아세요
돛단배 타고 떠나듯 유유히
물결 헤치듯 등 뒤가 일렁였지요
꼿꼿해서 근엄했던 얼굴보다
더 많이 남기신 쓸쓸한 뒷모습이
가슴 철썩이며 닿는 파도였네요
낯선 병실에서 일그러진 얼굴로
가슴 쥐어짜며 투병하실 때도
문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홀연히
병든 무덤 속 외롭게 들어가셨지요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 추억 때문입니다
뒤풀이하던 황태자에서
멋들어지게 줄줄 암송하시던
애드가 엘렌 포우의 <애너벨 리>
시보다 더 애절한 마음으로
문학을 사랑하셨던 송상옥 선생님
그 음성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 그 왕국에도 봄이 왔는지요
천사들이 둘러싸인 가운데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영원한 사랑의 애너벨 리가 아니라
여러 문학인과 조우하고 계시는지요
눈물 마르질 않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 낭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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