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 켤레 / 한길수
2009.07.21 09:53
고양이 지붕 밟는 소리만큼 열린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신발장 안
가는 숨소리 내쉬는 구두 한 켤레
너와 함께 한 날이 며칠이었는지
후배 K의 아버지 칠순잔치하고
고향 아저씨 장례식장 다녀오고
시인이랍시고 한두 번 문학모임에
얼굴대신 발 도장 찍었을 뿐인데
저만치 뒹구는 시간이 멀어져간다
물 내리면 고일 윤기 없는 얼굴
세수 못하고 크림 한번 못 바른
잘못 시집와 투정 늘어난 아내 같다
남달리 넓은 볼로 한 켤레 고르고
사뿐하게 통과한 국제공항 검색대
곱던 새색시 같던 만남도 있었는데
굽 가는 돈이면 새 구두 사는 요즘
모처럼 시내 나가 파마한 아내가
내 곁에 있어 오래도록 벗인 것처럼
변변치 않은 내 가는 길 함께 한 너
날 잡아 시내 구둣방 한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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