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규네 농장 / 최문항

2007.12.23 11:38

미문이 조회 수:700 추천:5

자스민 흰꽃이 오래된 아파트 건물 담장 너머까지 짙은 향내를 흩날리고 있었다. 주말의 윌셔 뒷골목은 한가롭기만 했다. 아내와 나는 L.A. 길이 서툴러서 일찍 행사장에 도착하고 보니 넓은 지하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길 건너 스타벅스 다방에서 커피와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내고 아내는 먼저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차에 두고 온 카메라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벌써 많은 차들이 들어섰고 조금 전까지 안보이던 관리인이 입구에서서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검정색 벤츠 한대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려고 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관리인이 손을 흔들면서 빈 자리가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벤츠를 몰고 온 젊은 친구가 창문을 내리고 몹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차요원에게 뭐라고 지껄이니 입구를 막아 놓았던 의자를 치워 주었다. 여러 대의 차를 돌려보내고 있는데 이번에는 은색 렉서스한대가 입구 쪽으로 굴러 들어왔다. 관리인이 자리가 없다고 손짓을 했는데도 차에 탄 젊은이가 창문을 조금내리고 경적을 울리면서 막아놓은 의자를 치우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안에 자리가 없다는데 왜이래요?” “당신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의자 치워!” “그런데 젊은이 왜 꼬박꼬박 반말인가?” 그는 대답 대신에 차에서 내려 앞에 막아놓은 의자를 길가운데로 휙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막무가내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관리인이 호각을 불면서 뒤쫓아 뛰어갔다. 옆에서 구경만 하던 나도 그의 뒤를 따라 주차장 안으로 내려갔다. “여봐요 자리 없다는데 말이 말 같지 않아? 여기는 이 빌딩 사람들 전용 주차장이라고,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내가 지키고 있는 거야, 차 안 빼면 당장 견인해 갈 테니 그리 알라고.” “당신 여기 온지 얼마 됐어? 나 몰라? 일이 안 될 라니까 별것이 다 지랄이네, 시간이 늦어서 죽겠는데 저리 못 비켜 이거! 이 늙은이 주차장 근무 다 한줄 알라고, 빌딩사람 전용이라면서 정작 테넌트도 못 알아보면서 무슨 주차관리를 해?” 마치 옛날 양반집 도령이 늙은 하인 대하듯이 눈까지 부라리면서 소리쳤다. “여보시오 젊은 양반 그러면 조용히 이 건물 사람이라고 말을 해야지, 태도가 그게 뭐요?”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더 흥분해서 거들고 나섰다. “당신은 또 뭐요? 오늘 진짜 재수 더럽게 없네! 씨X” 그는 트렁크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들고 황급히 엘리베이터 있는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아이고 선생님 요즘 젊은것들은 나이 같은 건 상관없어요, 내가 주차장 관리나한다고 없수이 여겨서 그러는 거라고요, 저는 매일 이러고 삽니다. 자기 몰라 줬다고 저렇게 지랄하는 거예요.” 그는 별로 화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공연히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기분을 망쳐 버렸다. 2층 강의실로 올라갔다. 한국문화 소개와 독도분쟁에 대한 세미나가 열린다고 신문과 방송으로 광고를 해 대더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시작시간이 벌써 반시간이 넘었는데도 누구한사람 나와서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실내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앉을 자리가 없었다. 겨우 아내 옆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앞쪽이 좀 부산스럽더니 조금 전에 주차장에서 언성을 높였던 그 작자가 마이크 앞으로 나왔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상냥하게 인사하고 오늘의 강사를 소개했다. “조금 전에 그렇게 불량스럽게 놀더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아주 딴판이구만 그래” “저사람 얘기예요? 키도 훤칠하고 말도 잘 하네, 저 사람 잘 알아요?” 아내가 조용히 귓속말로 물었다. “응 좀 알지!” 나는 슬쩍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자리를 못 잡은 사람들이 입구와 복도까지 늘어서서 안쪽을 기웃거렸다. 입구에 있는 안내석으로 갔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안내하는 아가씨가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왔군, 여기 책임자가 누군지 좀 만났으면 하는데.” “무슨 특별한 용건이라도 있으신가요?” 안내하는 아가씨가 약간 긴장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 별일은 아닌데 조금 충고해줄 말이 있어서 그러니 책임자 좀 불러 주시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녀가 저쪽 끝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뚱뚱한 사내를 불러왔다. “안녕하십니까? 저 홍 부장입니다.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그는 퉁명스럽고 사무적인 어투로 내게 다가왔다. “수고 하십니다. 세미나는 아주 성공적인 것 같군요.” “네, 미스터 김이 오랫동안 정성들여 준비했으니까요!” 그는 좀 거들먹거리면서 미스터김을 칭찬하고 있었다. “저기 사회보고 있는 친구가 미스터 김입니까?” “네, 아주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이번 세미나를 전부 혼자 준비 했으니까요!” “아~ 그래요? 저 친구가 조금 전에 주차장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하고 하는 말이요? 사람을 잘못 알고 있구만 그래! 옆에서 말리던 내게도 육두문자를 써가며 욕을 해 대면서 난리를 부렸는데 뭐 성실한 친구라고? 나는 그저 옷 잘 차려입은 불량배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 친구가 앞에 나와서 사회를 보고 있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아니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내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주변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우리 두 사람을 쳐다봤다. “저런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자가 웃음을 흘려가며 앞에 나서서 사회를 보게 하는 것은 여기모인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 거요! 당장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시오. 가소롭게도 주차요원의 일자리를 놓고 해먹을 수 있네 없네 하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던 녀석이 뭐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지금 누구 갖고 노는 거요 뭐요? 저놈 당장 내려 오라고해요! 그 힘없고 늙은 주차요원 밥 줄 떨어지기 전에 저 녀석부터 해고 시키시오!” 나는 말을 하다 보니 처음에 해 주려던 간단한 충고보다 훨씬 흥분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미스터 김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자세히 알아보고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행사도 중요하지만 직원들 교육에도 신경 좀 쓰도록 하시오!” 나는 홍 부장에게 명함을 건네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끝나는 대로 저 친구 불러내서 꼭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홍 부장은 나의 강경한 태도에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음을 알고 더욱 공손한 태도로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세미나는 아직 두시간정도 더 계속될 것 같았다. 나는 강의실로 들어가지 않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한가해진 주차장 입구 그늘진 곳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관리인이 나를 보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세미나엔 안 들어 가셨어요?” “독도 얘기나 좀 들어 볼까했는데 저기 은색 렉서스 타고 온 그 젊은 놈이 앞에 나서서 있는 대로 폼을 잡고 사회를 보고 있지 않겠소, 그래 내가 책임자를 불러 호통 좀 쳐놨지, 세미나 끝나면 형씨한테 사과하러 내려올 겁니다.” 내가 좀 우쭐대면서 이야기했다.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이쯤에서 끝내 주쇼, 그놈 말대로 밥 바가지 날아가면 형씨가 책임지겠소?” 그는 이런 일을 여러 번 격어 봐서 그런지 젊은 놈에게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별로 억울한 기색도 없어보였다. “그래도 그렇지 소위 한국 다도문화, 예절에 대한 세미나를 준비한 놈이 하는 짓이 그래서는 절대 안되지, 더군다나 나이 먹은 사람한테 망나니같이 구는 놈을 가만두면 되겠소? 형씨가 괜찮다고 해도 나는 절대 용서 못해요!” 나는 은근히 주차요원에게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주차장 관리직이 그렇게 좋습니까? 이놈저놈한테 반말 지껄이나 듣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도 있잖아요, 전에는 총 차고 야간경비도 서봤는데 그건 정말 못 해 먹겠더라고요.” 그는 담배를 꺼내 물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이 고달픈 이민 생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생은 미국 온지 오래 됐습니까?”그가 물었다. “왜요?” “요즘은 한국에서도 젊은 놈들 버릇 고쳐주겠다고 나서는 사람 별로 없어요, 괜스레 애들한테 봉변이나 당하지.” “그래도 그렇지, 이놈은 내가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고 말테니 두고 보슈.” “웬만하면 제 처지를 봐서 그냥 넘어 가 주쇼, 형씨는 오늘 한번 그러고 가면 그만이지만 나는 이나마 어렵게 얻은 일자리 놓치겠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그는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걱정이 되요? 여기 그만두면 한번 찾아와요 내가 일자리 마련해 볼 테니까.” 지갑을 뒤져 하나 남은 명함을 꺼내주었다. “이게 뭐하는 회사요? 형씨가 사장이고? 어디 쯤 있나 모르겠네.” 그는 건성으로 내명함을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정 뭣하면 우리 회사에 와도 좋고, 자리야 만들면 되는 거니까.” 그가 담배를 빼어 물고 나를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형씨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통 기억이 안 나네, 하긴 한국사람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서두.” “그래요? 대학 다니다 미국으로 쫓겨 왔거든요. 군대도 안가고 학교도 졸업 못해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 별로 없는데...” “무슨 큰 죄를 져서 학교도 못 다니고 쫓겨 와요? 누구한테?” “이젠 삼십년도 넘은 얘기니 말해도 되겠지만 뭐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요. 혹시 통혁당 사건 알아요?” “글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몇 년도 얘기요?” “1967년 여름에 학사주점 사건 몰라요? 180명 정도 잡혀가고 몇 명은 사형까지 당했는데, 그때 편지 한통 잘못 전해주고는 통일혁명당에 협조한 꼴이 되어 중정 사람들한테 쫓겨서 제주도로 도망갔다가 결국은 미국까지 오게 됐지요.” “지금 제주도라고 했소? 그해 여름에 태풍이 몰아치고! 혹시 한라산에......” 그는 구석에 놓여있는 의자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한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한참동안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그의 얼굴에 붉게 돋아난 흉터를 보면서 옛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때 아주 날씬한 여학생하고 동행했었지요? 이름이 아마 ‘경희씨’였나 그랬을 거요.” 그는 그때 일을 명확히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면 형씨가 ‘영규‘ 그 농촌 지도자?” 우리는 너무 반가워서 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지나가던 멕시칸 친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우리를 건너다 봤다. “아니 어떻게 된 거요? 미국에는 언제 왔고 지금 어디 살고 있소?” “내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서형은 미국 온지 오래 됐으니 이제 자리 잡았겠지?” 영규는 나를 만난 것이 별로 즐겁지 않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우리 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 하면서 이야기합시다.” “나야 지금 근무 중이니 어디 갈수는 없고, 이게 몇 십 년 만이야?” “가족은 다 건너와 있소? 참, 결혼은 했겠지? “ 내가 흥분 되서 횡설수설 했다. 담배를 깊숙이 빨아드리고는 나를 한참 올려다보던 영규가 우물주물하면서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거 실례가 될지 몰라서 조심스러운데 뭐 좀 물어봐도 되겠소?” “아 옛 친구를 만났는데 실례가 다 뭐야!” “그때 한라산에 같이 갔던 아가씨는 어떻게 됐소? 그 후에” 영규가 자기 손가락이 잘려 나가면서까지 경희를 살려냈는데 나와 경희가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는지 무척 궁금한 것 같았다. “이 친구하고는, 뭐가 어떻게 돼? 내마누라가 됐지, 아들 딸 하나씩 낳아 주더니 이제는 아주 무서운 호랑이 아줌마가 다 됐어, 오늘 여기 함께 왔어요, 나는 사실 이런 세미나 별로 흥미 없는데 경희가 오자고 해서 오래간만에 LA 나왔는데 이렇게 반가운 사람을 만났구먼!” “사실 형씨하고야 뭐 별 계산할게 있나 뭐, 경희씨라면 모를까?” “아 글쎄 내마누라가 됐으니 경희일이 내일이지 뭐.” “그때 뭐 중정사람들이 쫓아다닌다고 했는데.” “그 덕분에 대학 2년도 못 마치고 LA로 유학 와 버렸거든, 여기 와서 겨우 대학 마치고 경희 둘째 언니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 했는데 그때 배운 기술로 이 회사 차려가지고 20년 넘게 잘 해먹고 있다고.” 영규와 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나간 세월 이야기를 늘어 놨다. “조금 있으면 경희가 내려올 테니까 우리 집으로 가자고.” 그러나 영규는 한사코 다음 기회에 가겠다면서 사양했다. “김형 연락처나 주시오.” 세미나 안내지 뒤에다 영규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나는 급히 2층으로 올라가 경희를 찾았다. 세미나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홍 부장이 미스터 김을 데리고 내게로 다가왔다. “미스터 김, 우선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드려, 가디나에서 사업하시는 서사장님이셔.” “아까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강사 연락도 안 되고 여러 가지 일들이 꼬이는 바람에 그만 큰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미스터 김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몇 시간 전과는 아주 딴 사람처럼 양순하게 머리를 숙이면서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나한테야 뭐 괜찮은데 그 주차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좀 심했던 것 같아, 그 사람 지금은 여기서 바닥을 기고 있지만 알고 보니 한국에선 잘나가던 사람이었더라고 내려가서 정중하게 사과하라고.” 경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주차장으로 내려 왔을 때는 차가 많이 빠져 나갔고 어디로 갔는지 영규도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규를 어떻게 도와 줘야하나 곰곰이 생각했다. “무슨 일 있었어?” “좋은 일! 혹시 영규라고 기억나? 한라산에서 만났던 친구 말이야 성모 병원에 입원했던!” “아~ 영농 후계자라던 그 시골 청년! 내 생명의 은인 말이야?” “오늘 그 친굴 만났어! 글쎄 주차장 관리 일을 하고 있더라니까?” “근데 왜 먼저 가 버렸을까? 나도 안보고” “경희 보기가 좀 부끄러웠나보지! 나한테 전화번호 적어 줬으니까 나중에 연락해서 만나지 뭐.” 공장에 새로 들여놓을 제사기계(실뽑는기계)쇼가 시카고에서 열리는 바람에 출장을 다녀왔다. 3월에 눈이 내린 시카고 비행장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 30년 전 태풍이 몰아치던 한라산에서 만났던 영규를 생각했다. 대학진학 대신에 특수농법으로 잘사는 농촌을 만들어 보겠다고 자신 만만했던 친구가 무슨 곡절을 넘기고 여기까지 와서 주차장 관리를 하고 있을까? L.A에 돌아가면 꼭 연락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늦은 시간에 영규 하숙집으로 전화를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귀찮다는 듯한 영규 목소리가 저쪽에서 힘없이 들려왔다. “전화 바꿨습니다.” “김형, 나요, 서...!” “서...라 누구시더라?” “아니 벌써 잊어버렸어? 한라산......” “아이구 서 형! 정말 전화를 주셨네, 그래 안녕하쇼? 그렇지 않아두 한번 연락할까하다 그만 뒀는데, 도무지 용기가 나야 말이지!” 영규가 반가워하며 목소리를 높여서 대답했다. “그간 어떻게 지냈소? 내가 빨리 연락을 했었어야 하는건데 기계하나 보려구 동부에 갔다 오는 바람에 오늘에야 전화 했수다, 이번 연휴에 한번 만납시다.” “뭐 요즘 나한테야 매일이 연휴나 마찬가진데 뭐” “아니 그럼 지하 주차장일 그만 뒀쑤?” “그게 말이 좀 긴데 나중에 만나서 얘기 합시다. 근데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소?” “김형 옛날에 청포도 키웠다고 했지? 여기 캘리포니아가 아주 유명한 포도주 생산지거든 중 가주에 있는 나파 밸리부터 샌디에고 내려가는 길목에 테마큘라, 이번 연휴에 가까운 곳부터 한번 둘러봅시다.” “서형 웬 포도얘기를 하십니까?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좌우지간 공장 구경이나 좀 합시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영규가 공장으로 찾아왔다. 연휴로 조용한 공장안을 여기저기 둘러본 영규는 마치 취직이나 된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들떠있었다. “기술은 없어도 열심히 도울테니 아무 일이나 맡겨만 줘요.” “김형이 할일이야 따로 있지! 옛날 그 패기는 어디 갔소? 영농 후계자의 야무진 꿈 말이요!” “다 지난 일이고 또 그게 그리 말처럼 쉬운가요? 여기 물정도 잘 모르고......” “그러니까 오늘부터 차근차근 조사해 보자는 거요! 또 알 수 있소? 나하고 큰 농장 한번 일궈볼지?” 영규와 나는 차를 타고 15번 프리웨이 남쪽으로 달렸다. “얘기 좀 해봐요, 어떻게 경기도 용인 터줏대감이 여기까지 굴러 와서 어두운 지하주차장 일을 하게 됐는지 말이야.” “나도 한때는 잘 나갔지! IMF 전까지 말이요!” 영규가 휙휙 옆으로 스쳐가는 농촌 풍경을 내다보면서 옛날생각에 젖어 들었다. 영규는 용인에서 무공해 유기농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각종 과일과 야채를 온실 재배하고 특수포장해서 서울에 있는 아파트단지까지 직접 배달해주면서 탄탄한 기반을 다져갔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신갈인터체인지 근처는 수원과 서울 생활권으로 변해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이닥치는 부동산투기꾼들의 마수가 영규에게도 몰려왔다. 그들 계산대로라면 농사짓는 일은 돈을 들이는 만큼씩 손해 보는 일 이라고 했다. -지금 농사짓고 있는 땅을 한번만 잘 회전시키면 평생 발에 흙 안 묻히고도 편하게 살아 갈 텐데 왜 농사를 고집하느냐, 시대를 쫓아 살아가야 한다.―고 유혹했다. 처음에는 끄덕 않던 영규도 변해가는 주위환경 때문에 갖고 있던 땅을 조금씩 처분하기시작 했다. 종친 어른들이 절대 안 된다고 노발대발해도 소용이 없었다. 농촌을 책임지자고 다짐했던 친구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대부분의 땅을 처분해서 수원에 나가 갈비 집을 열었다.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용인 구석이 아니라 수원 중심지에 갈비 집을 세 군데나 갖고 있는 김 영규사장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식당에 단골로 드나들던 증권회사 중역인 윤 상무라는 사람이 접근해왔다. 조금씩 투자해보니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항상 서류에 나타난 숫자만 올라갔지 실제 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식당에서 나오는 것을 꼬박꼬박 윤 상무에게 보냈다. 상당히 큰 액수를 어느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그런데 IMF가 밀어 닥치면서 그 기업의 대표가 돈을 외국으로 빼돌렸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검찰에 구속되고 회사는 문을 닫아버렸다. 윤 상무는 휴지가 된 서류를 영규에게 건네주고는 종적을 감춰 버렸다. 고향에서는 어느 한사람 영규를 반겨주는 이가 없었다. IMF후유증으로 갈비집도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아 버리고 말았다. 딸과 아내는 친정이 있는 당진으로 내려 보내고 영규는 하와이 누이집으로 건너와 버렸다. “고생이 많았었군 그래” “그렇게 3년이 넘는 세월을 미국에서 여기저기 흘러 다니다가 지하 주차장까지 왔소이다.” 영규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요?” “뽀죽한 수 있나 뭐, 그저 하루하루 이렇게 지내는 거지.” 담배를 힘껏 빨아 깊이 들여마시고는 한참을 참더니 한숨처럼 길게 내뱉었다. “그렇게 맥없이 굴지 말고 정말 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말 해봐요!” “쥐뿔이라도 손에 쥔 게 있어야 뭘 해볼게 아니요?” 영규는 무슨 일을 해 보겠다는 생각조차 없는 듯이 보였다. “남가주 만 해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서 전에 했던 대로 유기농작물을 재배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가끔 마누라 따라 한국 마켓에 가보면 없는 게 없더라고!“ 고속도로 주변의 구릉들은 초여름인데도 누런색으로 변해 있었다. 쾌속 보트가 엘시노 호수위에 하얀 무늬를 수놓고 있었다. 우리는 포도밭이 많은 테메큘라에 도착했다. 포도주 시음장에 들어가서 표를 사가지고 각종 포도주를 감질나게 한 모금씩 마셨다. “청포도로 돈 많이 벌었었다며?” “다 옛날이야기지, 그런데 왜 날 여기까지 데려온 거요?” 영규가 물었다. “멋있는 포도 밭 하나 골라봐.” 나는 금방이라도 와이너리 하나쯤 사 줄 것처럼 말했다. “이런 농장은 대기업이라 꿈도 못 꾸지만 진짜 해 볼만 한 것이 있을 텐데.” 영규는 별로 흥미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오늘은 포도 밭 구경하고 다음에는 사과 농장에 가보자고” 어느덧 한주가 지나갔다. 이번에는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팜스프링스 조금 못가서 옥크 그랜이라는 사과농장이 많이 모여 있는 마을로 올라갔다. “이거 매번 밖으로 만 돌면 장사하는데 지장 있잖아, 주말에나 한 번씩 나와 보면 어때요?” 영규는 자기 때문에 내가 시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여기저기 구경시켜주는지 알아? 이번 주말을 넘기지 말고 뭐든지 결정을 내고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 보라고요! 그렇게 무작정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소?” “무슨 결정, 농사짓는 거?” 영규는 나의 생각을 조금은 알아차렸는지 사과농장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훑어보고 다녔다. “사과는 산뜻한 겨울 맛을 봐야 되는데, 여기는 겨울에 눈은 좀 오나 모르겠네? “ “이제야 좀 전문가다운 말을 하는군.” “그런데 말이야 서형 그동안 돈 많이 번 모양이지? 전번에도 그렇고 오늘 본 사과 밭도 굉장한 규모 같은데 투자할만한 여유는 있는 거요?” 영규가 슬쩍 내 의중을 떠봤다. “내가 그동안 짜낸 원단을 길게 펼치면 아마 태평양을 건너 한국까지 갈 수 있을 걸, 이 회사 시작한지 올해로 벌써 20년이 넘었어! 나도 조금 여유 있을 때 다른 사업에 투자해 보았으면 하는 욕심도 있고.” 사과를 종류별로 한다즌씩 봉투에 넣어 진열해놓은 상점 안을 빙빙 돌아보면서 골돌히 생각에 잠겨있던 영규가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이 중얼거렸다. “포도나 사과같이 대규모는 좀 힘들겠고 그저 한국 마켓에 공급 할 야채나 대추 감 배 같은 것을 소규모로 경작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영규도 이제 구체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서 과일농사 잘 짓고 있는 한국 분을 알고 있는데 거기 한번 가볼래?”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 물어볼 것도 많고 또 어떻게 꾸려나가는지 한번만 보면 대강 윤곽을 잡을 수도 있겠고!" 우리는 다시 차를 돌려서 15번 프리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빅터빌지역은 아직 개발이 안 돼 있었지만 간혹 한국 사람들이 들어와서 넓은 땅을 가꾸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전에 가끔 드나들던 강 선생 체리농장에 들러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 근처 땅은 아주 헐값인데 지하수가 있는지부터 알아보고 사든 말든 해야지 물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인상이 좀 투박해 보이는 강 선생은 우리를 도와주려고 친절하게 많은 말을 해주었다. “지하수가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내가 물었다. “우선은 이 지역 관할시청에 가서 지하수지도 한 장 얻어 보라고, 그리고 다시 와, 내게 물줄기 찾는 아주 기막힌 도구가 있거든.” 강 선생은 농사짓는 일을 아주 쉽게 말했다. “정말 뭔가 손에 잡히는 것 같은데! 젊어서 못해본걸 여기 와서 해봐?”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영규가 흥분된 어조로 의욕을 보였다. 우리는 이제 구체적으로 사업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영규는 나의 적극적인 태도에 힘을 얻고 묘목이나 장비 그리고 최소한의 생활비정도만 보장해 준다면 5년 내에 번듯한 농장을 일궈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제시했다. “나 미국 놈 다 된 거 알고 있지? 절대 공짜로 주는 거 없어, 땅은 내가 구입 할 테니까 10년 동안 무이자로 원금만 갚으라고!” “나 땅 욕심은 정말 없어, 3년이 될지 5 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서형이 투자한 것 모두 빼줄 자신 있어, 나한테 투자 해보라고!” “그러면 우리 정말 동업하는 거구만, 경희가 늘 주말농장 타령을 했는데.” “나 정말 멋진 농장 만들 자신 있다고, 지식과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야 훌륭한 영농 후계자가 몇 십 년 지나서 미국 사막에 와서야 드디어 꽃을 활짝 피우겠는 걸.” 주말이 왔다. 경희가 정성껏 저녁상을 준비했다. 영규는 옛날 애인을 만나러 온 사람처럼 빨간 넥타이에 정장차림으로 화사한 꽃다발까지 사들고 왔다. “어서 오세요, 저 기억 하시겠어요?”경희가 반갑게 맞이했다. “네, 안녕하셨지요. 서형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영규씨 얼굴을 잘 기억 못 해요. 우리가 만났던 건 어둑어둑한 관음사 앞뜰에서 잠시 보고 산에 올라가서는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혼자 계시다니 얼마나 적적하세요. 빨리 부인을 모셔 와야지요.” 경희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래간만에 수다를 떨었다. 미국에 와서 고생한 이야기, 아들딸 잘 키워 사회에 내 보내 다 제구실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제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 문학 동호인들과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해서 바쁘게 지난다는 둥,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경희는 우리들이 농장을 시작하겠다는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뛸 듯이 기뻐했다. “빨리 자리 잡고 부인과 딸을 모셔와야죠, 서로 오고 가면서 형제처럼 지나면 얼마나 좋겠어요?” “농사일을 시작하게 되면 집사람부터 불러 들여야죠. 딸애는 좋아하는 총각이 있으니 시집이나 보내고요.” 영규는 그간 떨어져 살아온 아내 생각을 하면서 벌써 농장을 시작한 사람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빅터빌 강 선생네 채리농장 알지? 아마 비슷한 규모가 될 것 같아.” 나도 한마디 끼어들었다. “그러면 영규 씨에게는 생업이 되는 거고 우리는 주말농장이 생기겠네!” 경희도 우리 두 사람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우리는 애플밸리부터 빅터빌 근처에 있는 적당한 땅을 찾아 나섰다. 카운티 사무실에 가서 지하수 지도 한 장을 얻어왔다. 사무실 직원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생긴 것을 주면서 물줄기 찾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매일 밖으로 만 돌아다녀도 장사에 지장 없어?" 영규는 벌써 열흘이 넘게 이 동네 저 동네 적당한 크기의 땅을 찾아 뒤지고 다니는 내가 공장 일을 소홀히 할까봐 걱정되는 것 같았다. “걱정 말라고, 그래서 이거 800불씩이나 주고 준비했지.” 마치 군용무선전화기처럼 생긴 목침만한 차량전화기를 영규에게 보여 주었다. “이거 아주 성능이 좋아, 이 벌판에 나와도 잘 들린다니까! 이제는 내차가 사무실이나 다름없지 뭐야.” 토니라는 뚱뚱한 부동산 업자가 열 곳도 넘는 땅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삼각형으로 된 마른나무가지를 들이대고 물줄기부터 찾았다. 토니는 지쳤는지 잘 따라 오지도 않았다. “좌우지간에 수맥을 못 찾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니까!” 나는 중얼거리면서 이구석 저구석을 쑤시고 다녔다. 잡풀이 수북한 사막에서 수맥을 찾아다닌 지 한 주일이 넘었다. “이러지 말고 강 선생한테 가서 물어 보는 게 어떻겠어?” 영규도 수맥 찾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받자고 했다. 우리는 다시 강 선생 농장이 있는 빅터빌로 갔다. “강 선생 우리 힘으론 수맥 근처에도 못 가봤습니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자 그렇다면 내가 한번 나서보지!” 우리 셋은 강 씨의 다 찌그러진 픽업트럭을 타고 핀랜 쪽으로 갔다. 큰길에서 한 참 들어간 곳에 부동산 팻말이 붙어 있는 세 곳을 들려봤으나 허사였다. 다시 큰길로 나와 북쪽으로 한참 달려 언덕을 넘어섰다. 저 아래쪽으로 잭슨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뽀얀 먼지가 수북하게 올라앉은 팻말을 보고 차를 세웠다. 강 씨는 무슨 감이 오는지 휘파람까지 불면서 삼각형으로 된 철사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여기는 물이 있어 보이는군. 벌써부터 자꾸만 끌어당겨, 여기 굵은 물줄기가 지나가고 있군 그래.” 강 씨가 한 바퀴 휘 돌아보고는 여기가 좋겠다고 했다. “고맙습니다. 그럼 여기로 정하겠습니다.” 차에 있는 무선전화기로 부동산 업자를 호출했다. “헤이, 토니 맘에 드는 땅을 드디어 찾았다고, 핀랜 쪽으로 올라오다가 네 번째 땅 일세, 이리로 빨리 올 수 있겠나?” “오케이 지금 즉시 달려갈게” 잠시 후 토니 지프가 흙먼지를 길게 끌면서 사막을 가로 질러 달려왔다. 12 에이커 땅을 계약했다. 우선 철조망 울타리를 둘러치고 Cal, Well Co.라는 회사에 연락해서 우물 공사부터 시작했다. 자동펌프를 두 곳에 설치했다. 우리 회사에서 일 잘하는 멕시칸 두 명을 매일 영규농장에 보내줬다. 두 달이 조금 지나니 전기와 전화까지 연결된 방 두 칸짜리 번듯한 집이 세워졌다. 금요일 오후에 영규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서형 혹시 여유가 되면 트럭터 한대 사줘, 우선 땅을 좀 고르게 해놓고 비료도 줘서 제대로 준비했으면 하는데.” “그거 좋은 생각이야! 미국에서는 농기구가 제일 큰 일꾼이지.” 다음날 일찍이 우리는 605 프리웨이 북쪽에 있는 농기구회사로 찾아갔다. 영규는 벌써 어떤 것을 살 것 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기는 다 새것들뿐이군 그리고 너무 커, 혹시 구형 작은 거 없냐고 물어봐 줘.” 영규는 수없이 많은 트럭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형 중고 트럭터를 찾고 있었다. “소형 중고농기구는 변두리로 나가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뚱뚱한 여자직원이 종이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 찾아간 곳은 빅 베어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중고 농기구 파는 회사였다. 녹이 잔뜩 쓴 트럭터에 올라앉은 영규가 나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보다 안 비싼데, 돈은 오늘 다주고 물건은 월요일에 농장으로 보내 달라고 주소를 적어줬어.” 나는 수표를 써주고 받은 영수증을 영규에게 건네주었다. “녹은 났어도 얼마 안 쓴 기곈데! 성능도 괜찮고.” 영규는 트럭터를 시운전하면서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과실수묘목을 좀 준비해야 하는데 어디 가서 알아보지?” “어 그거 강 선생한테 부탁해 놨어, 내일 농장으로 나갈 테니 같이 가보자고.” 월요일 아침 일찍 대형 트럭에 주문한 트럭터가 실려 왔다. 일사천리로 수속을 마치고 방문비자로 영규 아내가 들어왔다. 바람 부는 들판에 혼자서서 손을 흔들며 우리를 보내는 영규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제야 겨우 사람 사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영규는 연못을 세 군데나 파고 금붕어만한 코이(비단잉어)새끼들을 풀어 놨다. “이놈들이 자라면 돈이 좀 될 거야.” “아니 양어장까지 하려고 그래?” “서형 내 영어도 쓸 만하지? 요 윗동네에 사는 백인 영감이 코이 키우는 법까지 알려 주면서 꾀 여러 마리 주고 갔어, 잘 키우면 농사짓는 것 보다 수익이 더 좋을꺼라고 하더라고.” 성격 좋은 영규는 어느새 농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과도 스스럼없이 오가며 교제하고 있었다. 어디서 얻어왔는지 마당 구석구석에는 토종닭 토끼 진돗개 고양이가 뛰노는 평화로운 농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과일농사를 짓는다고 하면서 한국산 신고배 감 대추 사과 등을 접붙여놓은 나무들을 울타리를 따라 수도 없이 줄줄이 늘어놨다. 철조망 근처에는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각종 야채를 길렀다. 스윗 그레이프 토마토 (포도송이 크기의 달콤한 토마토)와 페르시안 오이, 무순, 알파파 그리고 연못가에는 물미나리를 키우고 지하실에서는 팽이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부지런한 영규내외는 농장을 시작한 다음해부터 나의 도움 없이도 잘 꾸려나갔다. 영규의 유기농 특수 작물이 벌써 가까운 한국 마켓에 선보이고 수입도 짭짤하게 들어왔다. 경희와 날 위해서 뒤쪽으로 방을 하나 더 들였다. 영규 아내는 마치 옛날 용인농장에 다시 온 것 같다고 하면서 즐거워했다. 어느덧 12에이커 넓은 땅에는 영규의 작은 꿈이 청포도 알처럼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었다. 이번 겨울에는 영규 외동딸 결혼식에 참석하기위해 우리부부와 영규 내외가 함께 한국 나들이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