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 건너가 만나리 / 김혜령

2009.09.21 08:26

미문이 조회 수:747 추천:1

<생략> 검사결과는 일주일 이내에 주치의에게 전달된다고 했으니 7월 7일이면 충분했지만, 마침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 연휴가 끼는 바람에 결국 현의 생일인 7월 8일이나 그 이후까지 기다려야 하게 되고 말았다. 덕분에 현의 남편은 말없이 눈치만 살피고 있었고, 현은 제 생일마저도 축하는커녕 이 세상의 모든 죽어 가는 사람들과 어두운 골짝을 방황하는 외로운 귀신들을 대표하여 통곡하고 또 통곡하는 심정으로 힘겹게 보내고 말았다. 현은 낮에도 수시로 잠에 빠져들었고, 밤에도 수시로 깨어났다. 잠을 자면 어느 새 좁고 어두운 골짝을 걸어가고 있었다. 골짝에는 이 세상의 빛 같지 않은 희미하고 푸른빛이 드문드문 봄밤에 보던 신기 어린 백목련 꽃송이들처럼 모습을 드러냈고, 그 빛에 언뜻언뜻 앞서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굴까. 어깨주름이 많이 잡힌 허연 옷을 입었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한 손에는 리라를 들었다. 아, 오르페우스. 돌아보지 말아요, 제발, 제발. 현은 앞서 걷는 그리스 의상의 남편과 자신 사이의 거리가 바로 그가 고개를 돌리지 않도록 신이 처방한 생명의 거리라고 굳게 믿었으므로, 그와의 보조를 한치 틀림없이 맞추느라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면 중절모를 쓰고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걸어가는 아저씨의 뒷모습. 아저씨, 아저씨, 응치가 시리고 시리가...... 현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아저씨가 반가워서 아는 척을 하려고 했지만, 아저씨는 앞만 보고 중얼중얼 푸른 어둠의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현은 다시 한쪽 가슴을 움켜쥐고 어둠 속을 걸어갔다. 가면서 다음엔 호랑이에게 무엇을 떼어 주어야 하나 생각했고, 가면서 팔과 다리와 몸통을 잃어, 현은 어느 새 구르는 듯 흐르는 듯 가고 있었다. 싸웠어야 하는데, 끝까지 싸웠어야 하는데......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가슴을 움켜잡고 한탄하는데, 저만치 하얀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보였다. 다가가 살펴보니 할머니는 한 손으로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목련 꽃송이를 흩으려 뿌리고 있다. 어둠 속에 흩어지는 꽃잎이 언뜻언뜻 호랑이의 안광처럼 번쩍거렸다. 할머니, 할머니 일어나셨네, 이제 안 아프세요? 현이 깊이 잠긴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내어 할머니를 부르는데, 할머니는 손을 잡은 아이를 바라보고 빙긋이 웃으셨다. 아이는 어려 죽은 현의 사촌이었다가, 현이 되어 몇 걸음을 옮기더니, 어느 새 현의 아들 모습이 되어 종알대며 할머니 손을 잡고 가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아가, 아가, 아가! 현은 땀에 젖어 도리질을 하며 깨어나 두리번거렸다. 집안은 구석구석까지 여름 한낮의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저만치 현의 아이가 오래된 그림처럼 앉아 혼자 무어라 종알대며 놀고 있었다. 이게 현실인가, 아직은 이게 내 자리, 내 몸인가. 현은 축축한 손으로 제 가슴을 더듬었다. 얇은 여름옷 밑으로 반창고 붙인 봉긋한 가슴이 잡혔다. 반창고 밑에는 작은 구멍, 그리고 그 구멍 속에는 작은 새. 한숨이 새어나왔다. 손에 잡힌 가슴의 부피만큼은 아직 이게 현실이라고, 진짜라고, 제 것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 같았다. 전화벨 소리에 흠칫 놀라 몸을 일으키다가 현은 흐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열려진 창으로 옆집 일본여자가 모시모시 전화 받는 소리가 꿈처럼 아득히 들려왔다. 옛날 소련 사람들, 가장 행복한 순간이 새벽에 찾아온 KGB 요원에게 우리 집이 아리라 옆집이라고 말할 때라던가. 어제로 현의 생일도 지났으니 조직검사 결과는 이미 나왔을 테지만, 주치의에게서는 아직 소식이 없었고, 현 역시 집안의 전화기들을 본 척 못 본 척 지나만 다닐 뿐 전화 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리가또, 아리가또. 모이를 쪼는 새처럼 고개를 까닥거리고 있을 옆집 여자를 상상하며 현은 다시 잠이 들었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이 종종걸음으로 좁은 골목을 가고 있었다. 호호 깔깔, 웃음소리,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집집마다 담 너머로 고개를 내민 장대 끝에 오색종이가 붙어 팔락이고 있었다. 종이에는 â응치ä, â시리ä, 그런 말도 쓰여있고, 캥거루, 사슴, 하마, 젖소 같은 동물 그림도 한두 획의 붓질로 휘갈기듯 그려져 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집집마다 같은 새 그림이 걸려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펼친 새. 새 그림을 따라 걷다 보니, 골목 끝에 한복 입고 허리띠를 질끈 동여맨 여자 뒷모습이 보였다. 아, 어머니, 엄마, 엄마, 부르며 어린 현은 헐레벌떡 꼬불꼬불한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엄마, 엄마, 엄마는 내가 안 보여? 어머니는 뭐가 그리 바쁜지 대꾸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만 재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엄마, 내가 죽어서 이젠 안 보이나? 엄마, 내가 죽었어? 죽었으면...... 엄마, 죽은 사람에게는 산 사람이 안 보여? 죽은 사람은? 보여, 안 보여? 그 순간이었다. 불현듯 어머니가 걸음을 딱 멈추고 돌아서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죽어 봤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 현은 깜짝 놀라서 잠이 깼다.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듯 쿵쿵대며 날뛰는 심장을 누르다가 현은 저도 모르게 히히 웃고 말았다. 아, 그거였구나. 어머니의 충격요법. 사촌이 죽고 난 뒤, 죽음의 세계라는 두려운 수수께끼에 매달려 엄마 뒤꽁무니만 좇아 다니던 어린 현에게 일격을 가했던 말. 더없이 정직한 그 대답 앞에 어린 현도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났다. 아, 그렇지. 그건 이 세상의 누구도 다녀오지 못한, 그래서 아무도 얘기해 줄 수 없는 세상이지. 그것은 혼란스런 꿈을 꾸다 죽비를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이었고, 현은 그날 자신이 훌쩍 커버린 것 같았다. 어른들이 하늘나라니, 저 세상이니, 다음 생이니 할 때보다 버럭 소리를 질러준 어머니의 대답에 믿음이 갔고, 어른들이 아무리 아는 척해도 모르긴 저나 어른들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은근한 동지의식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대로 포근하고 아늑한, 그래서 견딜만한 한계의 선언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살아있다고 느끼는 데까지만 네 책임이라고 한정지어주는. 우리 모두 지금은 삶이라는 둥지 안에 들어 있으니, 그 밖의 세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걱정할 수도 없다는. 그래, 그렇지만 이제 나는...... 이제 나는 둥지 밖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놓여있지 않은가. 현은 다시 울음을 터뜨릴 듯 입술을 삐죽이다가 왈칵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엄마! 현은 대들 듯 볼멘 소리로 첫 마디를 내뱉었다. 엄마가 거기까지밖에 안 가르쳐줬으니 이제 나는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으응, 현이냐, 왜? 현의 어머니 역시 반갑다는 말 대신 왜냐고 용건부터 물었다. 그곳은 아침일 텐데 아침부터 TV를 보며 뭘 드시고 계셨던지 말씀 사이로 입안에 담긴 음식물을 짭짭 씹는 소리가 들렸고,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며 음악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그 바람에 현은 한층 더 외롭고 짜증이 나서 목소리를 높여 싸울 듯이 말했다. 엄마, 내가 병원에 갔었는데...... 근데? 잠시 후에 돌아온 어머니의 대꾸는 여전히 건성이었다. 엄마, 지금 뭐해요? 현은 다그치듯 물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태평이었다. 으응, 김수현 드라마에 장미희가 나와서...... 흐흐, 쟤가 대체 언젯적 애냐? 아이구...... 마침내 화가 난 현의 거친 숨소리를 감지했는지 어머니는 씹던 것을 꼴깍 삼키고 인심쓰듯 물었다. 병원엔 왜? 가슴 사진 찍으러. 숨이 막힐 만큼 뻣뻣하게 굳어진 목구멍 사이로 겨우 밀어낸 현의 대답에 어머니는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즉각 반응을 보였다. 아이구, 그새 가슴이 그렇게 쳐졌니? 그래도 성형수술 하려면 잘 알아보고 해야지. 하긴 장미희도 저렇게 예뻐진 걸 보면 요즘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너도 나도 여기저기 고치는 것 같긴 하더라만. 엄마! 현은 홧김에 제법 목청을 높여 그렇게 불렀지만, 다음 말이 나와주질 않았다. 응, 그래. 참, 생일은 잘 지냈냐? 우리 정민이, 박서방 다 건강하지? 사위와 손자의 건강은 물으면서도 정작 당신의 딸은 불사신이라 믿는 건지, 현의 건강은 물어볼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기가 막혀 대강대강 전화를 끊고 나니 푸슬푸슬 웃음이 났다. 모르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나이를 먹어도 철저히 이 세상 사람인 어머니. 하긴 가슴에 실리콘 주머니를 넣는 일과 금속 새를 넣는 일은 어딘지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았다. 실리콘은 가슴을 팽팽하게 해준다지만, 내 금속 새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아니, 나는 왜 그 금속조각이 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언제 켰는지, 아이가 보고 있는 TV화면 속에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거리에 내걸린 용이며 종이 장식들이 팡팡 솟아오르는 불꽃 사이로 보이는 것은 전에 본 일본의 칠월칠석, 타나바타 마쓰리와 비슷한데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눈썹이며 머리카락이 짙은 라틴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브라질 상파울로라고 했다. 타나바타 마쓰리가 바다를 건너가 상파울로의 축제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저 축제는 누가 다리를 놓아 바다를 건너간 것일까. 칠월칠석에 비가 와서 별이 보이지 않으면, 까치들이 다리를 놓아준다고 했다. 그날을 위해 견우와 직녀는 일년 내내 까치를 키울 것이다. 대륙과 대륙을 이은 새들은 누가 키워낸 것일까. 아마 만남을 믿고 삶을 소망하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늘나라에까지 삶을 잇고 싶은 사람들이, 삶의 통증이 가 닿는 마지막 자리, 생과 사의 구분도 의미도 사라져버리는 그 깜깜한 허공에까지도 불꽃을 쏘아 올리며, 그 어둠 너머의 무엇을 기원하는 것일 게다. 아이가 어둠이 차 오르는 거울 앞에 제 침대시트를 슈퍼맨 케이프처럼 두르고 서서 쉬익쉬익 바람소리를 내고 있었다. 현은 두 팔을 휘저으며 날아오르려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거울 속 아이의 펄럭이는 겨드랑이 밑에서 낯익은 모습을 만났다. 엄마 뒤꽁무니를 헐레벌떡 따라 다니는 아이. 죽은 사촌은 이제 날 수 있느냐고 묻는 아이. 두려움과 혼란의 시선 너머로 호기심과 선망의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 생일이 올 때마다 가슴 한 편에 이런 저런 이별을 품고, 이별의 상처를 핥으며 자신을 확인하고, 자신으로부터의 비상을 꿈꾸던 아이. 그리하여 더 멀고 아득한 만남을 꿈꾸던 아이. 그리고...... 아이를 포근히 끌어안고 젖을 먹이는 여자...... 아이가 만들어준 달고 나른한 둥지 속에서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눈에 눈물이 맺히도록 하품을 하는 여자. 여자는 어느 새 어깨에 펄럭이는 분홍 망토를 두르고 굵은 나무기둥을 오르고 있었다. 울면서 웃으면서 여자는 점점 가늘어지는 위태위태한 나무 줄기를 쉬지 않고 기어올랐다. 여자는 나무줄기가 머리카락만큼 가늘어져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올라가 그 가지 끝에 까치발로 섰다. 그리고 그 깜깜한 허공을 껴안을 듯 두 팔을 벌렸다. 그 순간 가슴에서 파닥파닥 날개 치는 소리가 들렸고, 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모양을 알 수 없는, 점같이 작은 금속조각이 새로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가지 끝 여자의 몸은 이제 활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과녁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힘껏 쏘아보내고 싶은 화살을 가슴에 품은 듯 여자의 몸이 깜깜한 허공, 그 시리고 추운 공간을 향해 떨고 있었다. 아, 할머니가 말씀하신 죄는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 화살을 쏘아보지 못한 죄, 새를 풀어내지 못한 죄. 나무 끝에서 썩은 동아줄을 잡았던 호랑이. 이제 보니, 호랑이의 정신은 이미 그 순간, 그 순간의 밖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순간의 안과 밖에서, 미지의 바깥으로 튀어나가려는 두려움 섞인 열망과 지루하나 안온한 안에 머무르려는 안간힘으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현이 내일은 어쨌든 병원에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결심을 굳히며 창 밖을 보니, 드문드문 흩어져 어두워 가는 구름의 섬들 사이로 한 떼의 새들이 핏빛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