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의 '무녀도' 를 읽고 - 한길수

2005.12.18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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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형태의 소설로 화자 대대로 골동품에 관심을 가진 집안에 찾아온 '낭이'라는 소녀가 그리고 간 그림, 화자의 조부가 이름지은 '무녀도'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화자가 전해 듣고 쓴 소설이다.
경주 읍에서 십여 리 떨어진 여민촌 혹은 집성촌 마을의 퇴락한 집에 사는 모화는 무녀가 있었다. 그녀는 귀신이 들어앉아 있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자신이 신의 영적인 힘을 얻어 그 귀신들을 쫓아내거나 물리친다고 믿고있다. 마을 사람들도 그녀의 신비스러움과 영험함에 집안의 안위와 대소사가 있으면 청하러 와서 굿과 주술로 풀어 가는 것으로 생활의 바탕을 두고 있다. 집에는 그녀와 '낭이'라는 딸과 함께 사람의 자취와 인연이 끊어진 도깨비 굴 같은 곳에서 모녀가 살아간다. 낭이 아버지는 칠 십리 가량 떨어진 동해변에서 해물 장수를 하면서도 낭이를 끔찍하게 여겨 봄, 가을 다시마와 꼭지미역 같은 것을 주러 다녀가곤 했다. 나중에 '욱이'라는 모화의 아들은 귀신이 지피기 전에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로 아홉 살에 절간으로 보낸 뒤 소식이 묘연하다 십여년 만에 나타났지만 나타나기 전에는 사람의 발길이 드문 집이었다. 모화는 주막에서 술을 먹다말고, 화랑이들과 춤을 추다말고 별안간 일어나 집에 있는 낭이가 부른다고 달려갈 만큼, 낭이를 꼭 따님이라고 높여 부를 정도로 모화는 딸을 끔찍이 여겼다. 낭이 낳을 때의 태몽으로 용신을 만나 복숭아를 얻어먹고 낳아 용신의 딸이 된 화신으로 믿고 있었다.
욱이가 집에 돌아온 다음부터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변화가 생긴다. 낭이는 욱이를 몹시 따르곤 했는데 욱이가 절간으로 떠난 뒤 시름시름 앓다 귀머거리가 되고 언제나 방에 들어앉아 그림만 그리던 낭이가 욱이를 위해 밥도 짓고 부엌출입을 했다. 모화는 욱이가 절에서 불도를 배우고 온 줄만 알다가 예수교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놀라며 귀신이 붙었다고 아들을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지만 욱이는 욱이대로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걱정했다. 마태복음에 적혀 있듯이 낭이가 귀머거리가 된 것도 그 탓으로 욱이는 믿는다. 욱이는 하나님께 어머니와 누이를 구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욱이는 잘 때도 언제나 성경을 가슴에 품고 자다 어느 날 밤 욱이는 잠결에 가슴이 허전함을 느껴 깨어보니 성경이 없었다. 부엌에 불이 밝혀져 있는데, 모화는 주문을 외우면서 성경의 첫 장을 불에 태우고 있었다. 욱이는 뛰어나가 성경을 뺏으려 하자 그 때 머리 위로 식칼이 날았다. 모화의 눈에는 욱이가 예수 귀신으로 보였고 욱이는 세 곳의 몸에 칼을 맞고 넘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모화의 품속에 안겨진다. 욱이는 외상만이 아니고 날이 갈수록 앙상하게 바르고 눈자위가 패어든다. 모화는 두문 불출하고 아들의 병을 간호했다. 그 사이 이 마을에도 교회당이 서고 선교사가 들어왔다.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어 무속의 부질없는 것을 비방하며 돌아다녔다. 교회는 욱이의 청으로 현목사가 주선하고 욱이의 편지를 널리 알려 세웠던 것이다. 욱이의 기도나 염원은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이슬방울을 맺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모화는 예수 귀신이 욱이를 잡아갔다고 말했으며 매일 같이 귀신을 쫓는 주문을 외었다. 달포가 지났을 때, 그녀는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여인의 혼백을 건지는 굿을 마지막으로 맡게 되었다. 그날 따라 어느 때보다 정숙했다. 외아들을 잃은 데다가 예수교도로부터 박해까지 받고 사는 모화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날 밤 모화는 여인의 혼백을 건지기 위해 여인이 죽은 깊은 소로 넋대를 쥐고 하염없이 들어갔다. 깊은 물 속으로 모화는 들어가고 목소리도 멀어지며 넋두리도 휘황해지기 시작하고 물 속으로 잠겨버렸다.  
모화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난 어떤 날, 낭이의 아버지는 나귀 한 마리를 몰고 모화의 집으로 왔다. 낭이를 나귀에 태우고 길을 떠나 곳곳으로 귀한 집을 찾아다니며, 그녀는 무녀의 그림을 그려주고, 아버지는 낭이에 대한 내력을 얘기하고는 대가를 받으면서 정처 없이 떠돌았다. 낭이는 잠자코 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귀 위에 올라앉았다. 그들이 떠난 뒤엔 아무도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밤이면 무성한 풀 속에서 모기들만이 떼를 지어 미쳐 돌았다 라는 내용이다.

'무녀도'는 일인칭 관찰자가 무녀에 관한 후일담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풀어내고 있다.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관습적으로 이어오는 한국의 토속적인 샤머니즘의 문화와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인한 기독교문화 사이에 잠재하는 갈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사회 변화에 대한 인간의 심리상태와 무속 신앙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모화의 심리상태는 변화에 대한 수긍보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믿음을 파괴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가정에서 정신적 혼돈으로 고통을 당하는 불행한 결말로 이어져있다. 화자가 말하려 하는 특별한 화소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도깨비 굴과 미국이다. 역한 흙 냄새와 수채가 막힌 잡풀들이 우거진 곳에 지렁이와 두꺼비 같은 늙은 개구리가 사는 곳과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발달한 서양 문화와 사회의 아들 욱이가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 가족과의 재회이다. 우상을 섬기는 사귀 들린 어머니의 폐악적 관습과 풍습을 어떻게든 떨치게 하려고 애를 쓴다. 밀레니엄시대에도 한국에는 수많은 무속과 독특한 종교, 민속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사이비라고만 규정하거나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오랜 관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의 기독교는 단지 당시 시대적 변화의 상징으로 구습과 새로운 문화간의 충돌로 봐야한다. 단편소설의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는 것은 모화와 낭이, 그리고 욱이의 출현으로 전개된 상황에서 신앙적 관념의 충돌이 빚어내는 갈등과 모화의 구심점에 선 욱이의 죽음으로 파국을 맞이하고 자신도 죽음에 이르는 결론은 격동의 시대에 부합되지 않은 가족의 단절의 슬픔을 응축시켜 논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