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지워지는 그림 -장태숙
2006.11.15 07:24
그림 속에는 석양빛이 비껴있다
해는 보이지 않는다
산 그림자
건너편 산잔등을 기어오르고
산과 산 사이
작은 산은 함몰되듯 가라앉는다.
산 속에서 흘러나온 S자 길
흰 오토바이 하나가 검은 파도에 밀려
쏜살같이 빠져 나온다
탈출은 언제나 서늘하다
길가 마른 풀숲에 긴 다리 담그고
상념에 빠진 전신주들
십자가처럼 점점 길어지는 제 그림자
거룩히 응시하면
공중에 띄워놓은 악보 같은 전깃줄의 새들
날아가는 음표처럼 포르릉
유칼립투스 나무 옷섶 헤치며 뛰어들고
출렁,
온몸으로 끌어안는 나무 옷자락에서
후드득, 어둠 조각들이 둥글게 떨어진다
어둠 받아먹는 내가
창문 이쪽의 내가 서서히 지워지는
고즈넉한 저물녘
유리창 그림 속의 풍경만이
내 적요의 마음에 들어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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