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진희-이상옥
2007.07.20 07:26
자신의 은색 랙서스 SUV에서 지루한 시간을 신문을 뒤적이며 기다리든 진희는,
저만치 정장 차림의 금석이 눈에 띄자 얼른 읽던
신문을 접어두고 차에서 내려 금석에게 달려갔다.
금석은 마치 혼자서 저 멀고 험한 길을 달려온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듯이 진희의 품속에 안기고 싶었다.
"여보, 나 참 힘들었어."
금석의 말에 진희는 금석을 포옹하며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알아요, 당신은 잘 참을 수 있었을 거야."
그렇게 금석은 진희에게 오랫동안 안겼다.
둘은 오래 전 그때처럼 I-90 고속도로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들은 2년 반 전에 로맨틱한 하루를 보냈던 그 호텔을 향해 달려갔다.
진희는 흘긋 금석을 바라보았다.
말이 없는 금석의 표정으로 짐작컨대 갈등의 순간들을 많이
넘어온 듯 보였다.
금석은 불과 한 시간 전의 일들이 벌써 까마득히 먼 꿈속 이야기처럼
아득해져 감을 느끼며
말없이 조용히 운전하고 있는 아내 진희의 옆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창 밖의 어른 키만큼 자란 옥수수 밭에 눈을 주었다.
금석은 과연 우리 인간들의 인연이란 그 누구의 작품일까,
하는 생각을 해 봤지만 역시 만물의
창조주만이 알 수 있는 '불가사의'라고 거듭거듭 생각했다.
자신이 미영을 만나 별탈 없이
두 아이를 낳고 열심히 살았다면 물질적인 부야 어찌됐던 그런 대로
남들처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경험한 미영은 똑똑했고 다른 여자들처럼 허영심도 좀 있으며
감정적이긴 하지만 본성적으로
성격에 결함이 있는 여자는 아니었다.
그런 여인이 어떻게 아이들과 금석을 버리고 떠났을까 ?
정말 불가사의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영이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이성적이며
완벽한, 이상형의 여인 진희를 새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연의 설계를 도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 ?
그때 자신의 품에 안겨 흐느끼던 미영의 슬픔과 후회의 모습이 클로즈업 돼왔다.
하지만 곧 진희의 이지적이며
사랑스러운 얼굴, 넓은 옥수수밭,
길가 차에 치어 죽은 동물 곁에 앉아있던 까마귀들,
그리고 방금 지나친 늪지의 암 오리 한 마리가 다 큰 새끼 떼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모습이 현실로 분명하게 떠오르자
금석은 혼잣말로 '최소한 저런 오리만도 못한 인간이 될 수는 없잖아.'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다시 그 옛날 병든 자신을 업고 다니며 고생을 한
돌아가신 엄마와 마지막 트랙을 힘있게 달리는 딸아이 숙이의 모습,
상대 선수를 교묘하게 엎어 치며 폴승을 거두는 아들 피터가 떠올랐고,
제 순서를 찾기 위해 환등기를 빠르게 돌린 것처럼
여러 가지 장면들이 금석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란 ?
문득 그런 생각들을 하며 운전 중인 아내를 쳐다본 순간,
금석은 본능적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거야, 진희 ! "라며
큰소리로 외쳤다.
선글라스를 쓴 진희가 가만히 금석을 쳐다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의 뒤편으로 저 멀리 조그마한
농가가 등성이에 보였고,
넓다란 옥수수 밭과 드문드문 초록빛의 콩밭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위를 파아란 하늘에 흰구름이 두둥실 지나가고 있었다
-소설, <<내사랑 진희>>끝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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