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시 만나요 / 홍영순

2008.04.16 09:28

미문이 조회 수:321 추천:5

동화 엄마 다시 만나요 홍 영순 아침 식사 시간이었어요. 내가 식탁 밑으로 아빠 발을 살짝 밟았어요. 빵에다 크림치즈를 바르던 아빠가 나를 보더니 알았다는 신호로 한쪽 눈을 찡끗했어요. 난 팬케이크를 먹는 척 하면서 아빠에게 붕어 말을 시작했어요. 아참, ‘붕어 말’이란 아빠하고 나하고 둘이만 하는 말인데요, 붕어처럼 입을 크게 벌리되 소리 안 나게 하는 말이에요. 아빠는 빵을 든 채 부엉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내 입을 열심히 봤어요. “아빠, 엄마한테 햄스터 사주라고 하세요.” 아빠가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웃으며 눈을 찡끗하고는 엄마에게 말했어요. “여보, 아침 같이 먹읍시다.” “지금은 생각 없어요. 나중에 먹을게요.” “참, 오늘 라빈이에게 햄스터 사 줍시다.” 딸기를 씻어 소쿠리에 건지던 엄마가 놀리듯 말했어요. “하여튼 아빠나 딸이나 똑같아요. 햄스터도 쥐인데 왜 쥐를 집에서 기르자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고양이가 좋잖아요?” 한달을 졸랐는데도 엄마의 대답이 이러면 마지막 방법을 써야합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에게 애걸을 했어요. “플리~즈 마미! 풀리~즈 마미!” 엄마가 나를 보더니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어요. “내가 어떻게 두 사람을 이기겠니? 이따 학교 끝나면 가서 사자. 하지만 햄스터는 네가 길러야 한다. 알았지?” “엄마, 내가 다 할게요. 물도 주고 밥도 주고 청소도 하고요.” 난 엄마한테 달려가서 양쪽 볼에, 이마에, 그리고 입에다 뽀뽀를 했어요. 역시 우리 엄마나 아빠는 나의 “플리~즈” 란 말에는 늘 지고 맙니다. 나는 속으로 “앗싸, 성공이다!” 하며 웃었죠. 나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내내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또 보았어요. 그러나 시계 바늘이 배가 고픈지 다른 날보다 더 천천히 가는 것 같았어요. 점심시간이 지나고, 산수시간과 미술시간이 끝났어요. 드디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 아빠들이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을 데려가기 시작했어요. 내손은 책가방을 싸지만, 내 눈은 엄마를 찾아 문에 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인을 하러 교실로 들어오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아빠였어요. 나는 아빠에게 달려가며 물었어요. “아빠, 엄마는 어디 있어?” “응, 엄마는 조금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있어.” “엄마가 또 밥을 안 먹어나?” “글쎄, 요즘 엄마가 소화가 잘 안 되나보다.” 아빠와 내가 엄마 걱정을 하며 집에 와보니 엄마는 방에서 자고 있었어요. 내가 엄마를 깨우려 하자 아빠가 내 손을 잡더니 붕어말을 했어요. 입을 크게 벌렸다 오므렸다하는 아빠를 보며 ‘쿡쿡’ 웃음이 났지만, 난 꾹 참고 열심히 아빠의 입 모양을 보았어요. “라빈아, 엄마 피곤 하니까 깨우지 말고 나가자.”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살그머니 방을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불렀어요. “라빈이 왔니?” “엄마, 어떻게 알았어? 내가 아기 고양이처럼 가만히 들어왔는데?” 내가 엄마에게 달려가자 엄마는 누운 채 나를 안으며 말했어요. “왜 몰라. 우리 라빈이 냄새가 나는 걸.” “나한테서 아직도 젖 냄새가 나?” “아니, 이젠 빵 냄새가 나. 그런데 우리 라빈이 햄스터 못 사서 화 안 났어?” “응, 화 많이 났었어.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 아빠가 다음 토요일에 엄마랑 같이 가서 사준다고 약속했거든.” “잘됐네. 그렇지만 오늘은 엄마가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엄마, 아파?” “아니, 지금은 괜찮아. 아까 좀 어지러웠어.” 내가 침대에 누워 엄마랑 이야기 하는 동안 옷을 갈아입은 아빠가 들어왔어요. “라빈아, 엄마하고 밥 먹으러 가자. 오늘은 아빠가 맛있는 저녁을 살게.” 우린 내가 좋아하는 ‘Soup plantation’ 에 가서 저녁을 먹었어요. 아빠와 나는 샐러드, 수프, 군 감자, 빵, 스파게티, 피자와 아이스크림까지 배가 볼록 나오도록 맛있게 먹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늘 맛있게 먹던 감자도 못 먹고 수프만 좀 먹었어요. 며칠이 지났어요. 그날도 엄마대신 아빠가 학교에 왔어요. 집에 가보니 엄마는 자고 있었어요. 난 아빠가 스파게티를 먹고, 내 방에 가서 "disney channel" 게임을 했어요. 그런데 다른 날 같으면 “숙제 다 했니? 받아쓰기 공부하자.” 하며 내방으로 몇 번씩 오던 엄마가 한 번도 안 왔어요. 나는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서 거실에 가보니 텔레비전은 꺼져있고 아무도 없었어요. 엄마아빠 방으로 가보니 문이 닫힌 채 조용했어요. 내가 문을 두드리자 아빠가 나왔어요. 그런데 아빠 눈이 빨간 게 젖어있었어요. 아빠는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나오며 말했어요. “괜찮아, 엄마가 좀 아파서 기도했어. 엄마 쉬게 네 방으로 가자.” 아빠가 엄마대신 기도 해주고 동화책도 읽어주었어요. 얼마 후, 난 아빠가 나가는 줄도 모르고 어느새 콜콜 잠들었어요. 다음 날도 엄마는 죽을 조금 먹었어요. 그래도 엄마는 라벤더 꽃보다 더 화사한 옷을 입고 나를 학교에 데려다 줬어요. 아참 깜박했네요. 나는 초등학교 일학년이고요, 우리 아빠는 치과 의사고요, 우리 엄마는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나 때문에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일해요. 그래야 내가 학교 끝나면 데리러 올수도 있고 집에 같이 있을 수 있대요. 그날 저녁때가 되자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뒤뜰로 나갔어요. 뒤뜰엔 레몬과 오렌지 꽃이 활짝 피어있었어요. 엄마와 나는 흔들 그네에 나란히 앉아 숲을 내려다봤어요. 그네를 천천히 흔들던 엄마가 나를 조용히 불렀어요. “라빈아!” “왜, 엄마?” “......” 이상하게도 엄마는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아무 말 안하고 다시 그네를 흔들었어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레몬 꽃은 피었고, 집안까지 레몬 꽃향기가 가득 들어왔어요. 그런데 집안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은 혼자 떠들 때가 많았고, 아빠는 점점 말을 잘 안했어요. 아빠와 내가 붕어말을 한지도 한참 되었어요. 부드러운 달빛이 레몬 향기 가득한 뜰로 해서 창문으로 들어왔어요. 엄마는 여느 날처럼 나를 재우려고 내방으로 왔어요. 기도를 끝낸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고 나를 아기처럼 무릎 위에 안았어요. “라빈아, 외할머니 어디로 가셨지?” “하나님 나라에 가셨잖아.” “그래, 외할머니는 하나님 나라에 가셨어. 엄마도 언젠가는 하나님 나라로 가겠지?” “엄마는 가지마.” “누구나 다 가는데 어떻게 안가?” “언제?” “천사가 데리러 오면 가야지.” “그럼 할머니처럼 다시 못 오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가지마.” 잠시 머뭇거리던 엄마가 천천히 말했어요. “라빈아, 너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되어있다는 거 알고 있니?” “몸과 영혼? 그건 교회에서 배웠어.” “그래, 하나님이 주신 우리영혼이 우리 몸 속에 있는 거야.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 영혼은 몸을 떠나 하나님한테 가야 돼.” “엄마, 그럼 몸은 어디로 가?” “몸은 예수님이 다시 세상에 오실 때까지 잠을 자게 돼. 지금 외할머니가 산소에서 주무시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시면 할머니는 깨어나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새로운 몸으로 살아나셔. 예수님이 죽으신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할머니도 다시 살아나셔. 그걸 부활이라고 해.” “그럼 예수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부활하실 테니까. 그치 엄마!” “그래, 그러니까 죽는 건 나쁜 게 아니지?” “그렇지만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면 더 좋잖아.”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좋은데?” “그래도 엄마 혼자 가면 안 돼. 나랑 같이 가야 돼.” “엄마가 먼저 가고 넌 나중에 가는 거야.” “싫어. 난 엄마 갈 때 같이 갈 거야.” “우린 다시 만날 건대 뭐.” “그래도 싫어. 천사가 엄마를 먼저 데리러 오면 말해. 이다음에 라빈이랑 같이 간다고.” “그런 건 엄마 맘대로 할 수 없어.” 엄마 눈에 별보다 많은 눈물이 고였어요. “그럼 나도 엄마 갈 때 갈 거야.”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떼를 썼어요. “라빈아, 울지 마. 엄마가 금방 하나님한테 가는 게 아니잖아. 나중에 천사가 오면 꼭 말할게. 라빈이랑 오래 오래 같이 살고 싶다고.” 엄마 눈에 가득 고였던 눈물이 달빛처럼 방안을 가득 채울 것 같았어요. “그럼 지금 나랑 약속해.” 나는 엄마와 새끼손가락 걸고, 사인하고, 복사까지 했어요. 며칠 후 뉴욕에서 이모가 왔어요. 다음날 아침, 엄마가 다른 날처럼 내 머리를 땋으며 말했어요. “라빈아, 엄마 오늘 병원에 가면 며칠 동안 집에 못 올 거야. 아빠랑 이모랑 잘 있어야 해. 우리 라빈이 잘 할 수 있지?” “왜 병원에 오래 있어야 하는데?” 그때 방으로 들어오던 아빠가 엄마 대신 대답했어요. “라빈아, 엄마가 오늘 수술해.” 엄마가 수술한다는 말을 듣자 나는 갑자기 무섭고 슬펐어요. 내가 울먹이며 엄마 품에 안기자 엄마가 말했어요. “라빈아, 엄마는 괜찮아. 며칠만 있으면 다 나아서 집에 올 거야.” 난 울고 싶은 걸 꾹 참았어요. 내가 울면 엄마도 아빠도 울 가봐 겁이 났거든요. 그래서 난 내가 아플 때 엄마가 한 것처럼 엄마를 안으며 말했어요. “엄마, 내가 기도해줄게.” 내가 엄마를 안자 아빠가 팔을 벌려 엄마와 나를 함께 안고 기도했어요. 엄마는 수술을 하고도 집에 오지 못했어요. 아침이면 이모가 팬케이크를 구웠고, 학교가 끝나면 이모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토요일이 되면 아빠는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어요. 엄마가 병원 침대에 앉아 나를 안으며 웃었지만 많이 아파보였어요. 예쁘던 얼굴이 턱이 뾰족하도록 야위었거든요. 하루는 병원에 가보니 엄마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있었어요. 나를 가까이 앉힌 엄마가 내 귀에다 속삭였어요. “라빈아, 천사가 왔었어.” “천사가 왔었어? 언제?” “오늘 새벽꿈에.” “그럼 천사한테 라빈이랑 오래 오래 같이 살고 싶다고 이야기 했어?” “...... 라빈아, 미안해.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했어.” “왜 말 안했어? 엄마가 천사한테 말한다고 약속했잖아.” 나는 엄마 손을 뿌리치고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라빈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천사들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고, 하늘까지 닿은 꽃길에는 아기천사들이 양쪽으로 줄을 서서 금빛 나팔들을 불었어. 그때 햇빛보다 찬란한 흰 옷을 입은 예수님이 내게 손을 내미셨어...... 나는 우리 라빈이랑 오래 같이 산다고 약속했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간호사가 깨웠어. 약 먹으라고.” 엄마가 날 안으려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러나 난 더 크게 울며 침대 끝으로 도망갔어요. “라빈아, 미안해. 미안해….” 갑자기 엄마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어요. 난 엉거주춤 다시 엄마한테로 다가갔어요. 엄마가 나를 안으며 말했어요. “라빈아, 라빈아!” “응, 엄마!” 나는 눈물을 훔치며 엄마를 봤어요. “네가 다 커서 결혼도 하고, 예쁜 아기도 낳고, 아주 행복하게 살다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그럼 아주 오래오래 기다려야 하잖아.” “괜찮아. 그동안 엄마가 예수님이랑 할아버지 할머니랑 기다리고 있을게.” 언제 들어와 있었는지 아빠가 눈물을 닦으며 도루 밖으로 나갔어요. 엄마가 휴지통에서 휴지를 꺼내 내 눈물을 닦아주었어요. “그럼 왜 아빠는 울어?” “섭섭해서 우는 거야. 오랫동안 엄마를 볼 수 없으니까 섭섭하잖아. 작년에 아빠가 한국 가서 한달 동안 계실 때 너 아빠 보고 싶다고 울었잖아.” “그래도 엄마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 “엄마 사진 보면 되지.” “그럼 엄마는 나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 “하나님 나라에선 언제나 라빈이랑 아빠를 볼 수 있어.” “하나님 나라는 정말 좋아?” “그럼,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 곳인데. 우리가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좋은 곳이야.” “정말 엄마가 언제나 나를 볼 수 있어?” “그렇다니까. 항상 우리 라빈이를 볼 수 있어.” 엄마가 무슨 말을 하던 난 자꾸만 눈물이 나왔어요. “라빈아, 사랑해. 엄마가 너를 얼만 큼 사랑하는지 알지?” 엄마가 나를 더 꼭 껴안으며 말했어요. “응, 엄마. 나도 엄마 많이많이 사랑해.” 나도 마른나무처럼 여윈 엄마를 안으며 말했어요. 그때 간호사가 들어와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주사를 놨어요. 엄마는 눈으로 사진을 찍듯 나를 빤히 바라봤어요. 그렇게 눈으로 사진 찍어놓으면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것처럼 엄마는 나를 오래 오래 바라봤어요. 한참동안 나만 바라보던 엄마가 졸린 듯 스르르 눈을 감았어요. 창가에 서있던 아빠가 다가와 나에게 말했어요. “라빈아, 엄마 쉬어야 해. 그만 집에 가라.” 나는 가만히 엄마 이마에 뽀뽀했어요. 엄마는 어느새 하늘 꽃길을 예수님 손을 잡고 가는 꿈을 꾸는지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