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횡한 날은
2013.08.20 01:53
바람 횡한 날은
수저가 한량없이 무겁고 밥알이 두 겹 세 겹 보이는 날은
묻어둔 이력이 보리싹처럼 밑둥 헤집고 나온다
길섶에 선 여남은 나무들 흔들리며 흔들리지 않으며
무슨 설익은 꿈을 꾸듯 뒤척뒤척 수런대는 바람 횡한 날은
꼭 묵정밭 냄새가 저릿하게 스며 온다
그런 날은 그냥 구불텅한 둑길 아슴찮히 내고 그 길을 쭉 따라가
삐꺽거리는 대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작물 여물기를 기다린 끝물 잎사귀 어느 타관에서 온 바람 한 조각
가벼운 몸피로 안으며 잘 왔다 잘 왔다 군불 땐 아랫목으로
찰진 밥 한 상 걸게 차려내면
그때서야 목에 걸린 설은 밥알은 못 이긴 척 그렁그렁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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