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시 "수라" 감상

2017.01.16 12:15

정국희 조회 수:926


 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디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갓 깨인 듯한 발이 채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에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에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내가 무서워 날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감상문

 

 

 

이 시는 참 순진무구한 시다. 백석의 시가 아니었다면 여성이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시가 참하고 부드럽다. 왜냐하면, 풍뎅이 새끼 보다 훨씬 작은 한낱 미물인 거미를 두고 인간의 여린 심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첫연에는 거미 하나를 발견하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연에는 다른 큰 거미가 또 나타난다. 덜컥 내가 버린 새끼의 엄마인가 싶어서 가슴이 뭉클하다. 그래서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다시 같은 장소에 버려둔다. 그런데 3연에서는 좁쌀만 한 애리디 애린 것이 간신히 발을 딛고 또 왔다. 그래서 엄마나 형한테 가라면서, 하도 작은 것이라 보드라운 종이에 얹어 또 보낸다.

 

이렇게 현실에서의 실제 경험을 적은 이런 종류는 치밀한 형식을 갖춘 작품과는 달리 무절제하기가 일수다. 반면에 문학에 포함되어 있는 예술적이라 불리는 요소들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경험을 토대로 해서 현재를 세밀하게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미적 감각이 살아있다고 하겠다. 이런 원리는 서정시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현재의 행위를 드러내는 순간의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사물을 보고 상황에 맞게 순서적으로 적어낸 현대시로서 하나의 완결된 줄거리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이 시는 화자가 무심히 행했던 일이, 자꾸 커지게 되면서 나중엔 죄책감에 이르는 시라고 하겠다. 애초부터 무슨 억하심정을 가지고 했던 건 아니지만 하나씩 나타나는 거미들을 보면서 한 가족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거미 가족이 다시 합쳐지길 바라는 연민의 마음을 나타낸 시다. 다시 말하면, 엄마나 누나나 혹은 형일 것 같은 가족을 뿔뿔이 갈라놓은 자신이 미안하여 서로 빨리 만나 행복하게 다시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는 시라고 하겠다.

 

그러고 보면 남자들은 대범하면서도 참 여리다는 걸 느낀다. 신혼 초에 남편이 집에 들어온 개미를 하얀 종이에 올라오게 하여 밖에 버리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나 같으면 그냥 죽여 버릴 텐데, 참깨보다 작은 것을 종이까지 찾아와 얹어서 보내는 걸 보고 참 기가 막히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여자들은 남자가 있을 때만 약하다는 말이 있다. 남자와 함께 있을 때 바퀴벌레를 보면 찢어지는 목소리로 있는데로 질러대지만, 혼자 있을 땐 눈 하나 깜짝 않고 손바닥으로 때려죽인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도 손바닥까지는 아니지만 아무것이나 들고 때려죽일 수는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 자신에게 평화로움이 깃들어지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줄줄이 연결되는 사건의 줄거리를 통한 생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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