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2012.02.03 13:41
바람
도무지 수상했다
참으로 수상쩍었다
결코 무리한 추측이 아닌 것이
그때는 바람에서 나는 냄새부터가 달랐다
검불이나 날리며 건듯 스쳐가는 그런 바람이 아니었다
호박은 못 움직여도 사람은 돌아서게 할
한마디로 허랑방탕하고 느자구 없는 바람이었다
휘파람 불며 샤워 끝내고
고개 돌려 뒷모습까지 비쳐보며
짧게 웃고 나가는 것은 사실 단서가 아니었다
낌새로 오는 것
느낌으로 오는 것
여자의 본능은 물증이 없어도 심증으로
신 내린 지 사십 년 된 천수보살보다 더 정확하게
가락을 타고 줄줄이 체감으로 스며 오는데
척 보면 삼천 리 일어서면 삼만 리 산 귀신인데
바람소리만 들어도 태풍이 오는지 가는지 다 아는데
하물며 잠자리에서 치사하게 뒤척이는
꿍꿍이속을 어찌 모를까
똥낀 놈이 성낸다고
잔머리 굴리다 되려 펄쩍 뛰는 신경질과
피부세포 맹랑하게 가동하는 소리를
모르고 있는 것은 바람 저 혼자 뿐이었다
속 창아리도 없이
옴팡지게 속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은
그냥 모르는 척 속아 주고 있었다는 걸
바람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3 |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 | 정국희 | 2016.05.04 | 791 |
182 | 달이 시를 쓰는 곳 | 정국희 | 2010.09.22 | 791 |
181 | 동창회 | 정국희 | 2010.06.23 | 787 |
180 | 여자 마음 | 정국희 | 2010.07.23 | 784 |
179 | 횡죄 | 정국희 | 2010.02.04 | 783 |
178 | 색 | 정국희 | 2010.02.19 | 781 |
177 | 아줌마라 불리는 여자 | 정국희 | 2009.09.06 | 781 |
» | 바람 | 정국희 | 2012.02.03 | 780 |
175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다 | 정국희 | 2010.08.07 | 776 |
174 | 백석의 시 /고방/ 감상 | 정국희 | 2016.11.23 | 751 |
173 | 마네킹 | 정국희 | 2012.02.29 | 743 |
172 | 단전호흡 | 정국희 | 2012.02.09 | 732 |
171 | 파도 | 정국희 | 2008.11.19 | 731 |
170 | 청실홍실 | 정국희 | 2011.04.07 | 730 |
169 | 멸치젖 | 정국희 | 2009.08.15 | 728 |
168 | 가재미의 말이다 | 정국희 | 2009.08.20 | 727 |
167 | 꼬막 | 정국희 | 2010.11.30 | 724 |
166 | 불면으로 뒤척이다 | 정국희 | 2008.09.18 | 723 |
165 | 나이 값 | 정국희 | 2012.02.21 | 717 |
164 | 포쇄 | 정국희 | 2011.09.25 | 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