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나리

2015.03.05 12:17

정국희 조회 수:164 추천:1

희나리
        



엎어져  무릎이 자주 깨지던 어린 골목길
아직도 꿈에선  폴짝폴짝 뛰다니는 이길
그 깊었던 한 시절이 서정시의 행간처럼 아슴아슴 지나간다

기쁨소식 슬픈소식 번갈아 드나들며 자질구레한 일상으로 닳아진 대문엔
이미 깨꽃 같던 유년은 없다
단풍잎 모세혈관  환하게 비치던  풀먹인 창호지 문살과
앵두 오지게 열리던 뒤꼍 텃밭
구름 몇 장 담가두는 일로 평화롭던  장독대도
동화 속 그림으로 봉인되어 있다

한 뜀에 훌쩍 넘던 도랑이 세면으로 발라져 비닐봉지가 뒹굴고 있는 이곳
모든것이 조용히 늙어가고 있다  
아니 우리는 서로 많이 변해 있다

등골 휘게 일해도 살림이 늘지않던 서른 가호 동네
등 떠민 사람 아무도 없었지만
퍼석한 마늘밭 지나 저마다 변명 들고 떠나버리고
조용히 침잠하고 있는 시간과 시간사이
밀물과 썰물사이
바다의 종족만 끈질기게 번식중이다

이 바닷가를 쉼없이 오고가던 검정 고무신들
엇비낀 전깃줄이 핼쓱하게 걸려있는 이마 깊은 전봇대를 거점으로 길들이 열렸고 도시의 소문이 복제되는 사이
청춘들은 뒤섞이며 어진 땅을 버렸다

바람이 갈래를 만들어 중구난방으로 불고있다
겉으론 평화로웠어도 안으로 만고픙상을 겪던 동네
실날같은 기억 몇 부분 데불고 앉아
어느 다른 시공을 예민하게 더듬고 있는 또 한 번의 작별

맥없이 속이 뒤숭숭한 날은
무슨 긴하게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닷없이 찿아와서
좀체 오지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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