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싸움

2010.10.31 08:23

정국희 조회 수:653 추천:101

패싸움



갑자기 밤의 명치 끝이 날카롭게 울었다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였다
가을날 살모사 독오른 목 쳐들고 쏘아보는 소리였다
칠흑의 숲 속에 밤이 끌어당긴 불온한 소리는
카요리들의 앙칼진 당파 싸움이었다
숲이라 하기도 뭐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런
콘도를 둘러싼 작은 산
사람보다 더 일찍 자리잡고 살았던 원주민인 카요리들이
밤이면 밀림을 끌어다 놓고 병정놀이 하는 곳
짐승들끼리 무슨 일이 생겼는지 온 마을이 시끄러웠다
며칠 밤을 내리 물어 뜯는 비명소리 들려오더니, 급기야는
승리의 팡파레인지 장례의 서곡인지 수십 명이 한꺼번에
울부짖는 거센소리에서 야만의 스피드가 느껴졌다
한통속들이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군락을 이루는 곳
멍청하든지 용감하든지 둘 중 한 쪽이
승리를 했던지 패배를 했던지 양단간에 결정이 난 것 같다
예의와 도덕이 없는 짐승들의 세계
날카로운 분별력은 있어 건널목에서는 꼭 뛰어가는  
길들여지지 않는 그들의 혈통은 성날 때나 기쁠 때나 포효하는 것이다
편 가르기는 어디든 저렇게 처절하다
보기에는 다 그렇고 그런 것이 그들에겐 삶의  정수리인가 보다
숲의 표정이란 어둠을 포식한 검은 문양 뿐인데
굶주린 발톱으로 어슬렁거리는 방랑의 털만 있을 뿐인데
숲의 중심에도 밥그릇 경전이 깊이 관여해 있나 보다
밤의 실핏줄을 파먹는 짐승들의 패싸움에 온 산이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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