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슬프다 외 3편
2015.11.27 15:55
사막은 슬프다(外 3편)
정국희
사막 한가운데 천리 만리 외딴 집
동서남북 둘러봐도 덤불밖에 없는
죽음처럼 엎드린 저 고요한 풍경 속엔
누가 살고 있을까
신기루에서 나온 수천 파장의 적막이
촘촘히 집을 둘러친
단단히 응집된 저 고립
어느 사고무친한 슬픔이
저리도 옹골찬 고독을 받아들였을까
수억 년 버려진 시간에 전입되어
푸석한 바람 아우르고 있는
슬프다는 말은 이런 때 써야 한다
염증난 생의 뒷덜미를 끌고
유장한 길 돌고 돌아 마침내 정착했으리
그늘 한 그루도 키워내지 못하는 곳
고요한 정적 울타리 삼고서야
비로소 외로움 더 독해졌으리
비밀한 내력 숨긴 바람소리가
음울한 화가처럼 적막을 터치하는
사막을 끌고 조심조심 다가가
똑똑 문 두드리면
고요를 몸속에 채운 사람
먼 시간 지난 눈매로 나올지도 모를
시간의 배후에서 호흡하고 있는 저 슬픈집
폼페이
없어진 도시 귀퉁이엔 스스로 돌아눕지 못한 썩지 않는 몸이 있다
쫑긋 귀를 세우고 알몸을 엿보는 동안 날카로운 기둥에 부딪치는 바람 부서진 구멍 속 내장된 진실 깊숙이 흡입된다
질식된 시간들 빨려나오는 소리에 놀란 새들 푸드득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현상 안된 한 장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위엔 새들이 왈츠를 춘다
혼비백산 통과하여 전속력으로 내동댕이 쳐진 무감각의 묵시록
웅크린 상태로 당시 상황을 유지한 채 잠들어 있는 그들의 유언은 잊혀지고 싶지 않는 것이다
거뜬히 견뎌낸 하나하나 세포들 늑골 속에 이천 년 비밀 숨겨놓고 영원히 잠들어 있는 몸
행방불명된 시간을 발설하는 유일한 증거는 모래바람 위를 나는 가벼운 새들뿐
말미잘보다 예민한 저들의 기억은 저리도 눈부시고 깜박이지 않는 초롱한 눈은
세상과 완벽한 교신을 하고 있다
눈을 뗄 수 없는 화석 하나 돌아누운 각도가 부서질 듯 견고하다
그 옛날, 대청마루에 누워있던 할머니의 등도 둥그런 저런 각도였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밤
어둠 속
밤을 움직이는 파도소리는 새가 날아가는 소리보다 아름답다
파도의 현을 켜서 검은 음표를 토내해는 바다
울퉁불퉁 물결이 길어올리는 하모니는
물고기들에겐 아늑한 자장가 소리
우주가 쌔근쌔근 숨쉬는 소리다
별들이 긴 여장을 풀고 잠들어 있는 풍만한 저 품속
물의 결을 따라 달빛이 한 올 한 올 두릅으로 엮이고
멈춤을 모르는 출렁임의 근성으로
넘실넘실 생의 맥박이 일어서는 동안
밤의 등허리는 동쪽을 향해 조금씩 돌아눕고 있다
두 귀 모으고 나를 지키는 별들
설혹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깊은 바다 한가운데일지라도
만선의 깃발처럼 펄럭이며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 간담이 서늘해지다가
문득
달을 품고 몸 추스리는 검은 해저 속
환각의 그림자 하나 건져올린다
물의 근원
신이 노한 소리라는 인디언 말
나이아가라
물의 차원을 너머 문명을 비껴간 섬세한 자연
면사포 폭포라 부르는 걸 와서 보고야 알았다
물은,
그저 흐르고 싶은 원초적 본능일 뿐일 텐데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고픈 생성원리일 뿐일 텐데
호모샤피엔스보다 더 오래된 계곡의 전설엔
어느 신의 노한 숨결 숨었길래
순한 물이
저리 뒤엉키러 맹수처럼 포효할까
죽어서도 잠 못드는 어미 심정이면 저럴까
구천을 떠도는 못다한 인연이면 저럴까
속도를 조절할 수 없는 흐름의 내력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강한 저 기질로
거품 물고 까무러쳐도 다시 흐르는 건
물의 전생이 여성이었기 때문일 게다
본래 물은 양수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양수는 자궁이 가지고 있는 최초의 물
몇 천 톤의 급류를 한꺼번에 쏟아 내어
생명을 완성시키는 물의 마음이
바로,
생명을 키우는 어머니 마음이기 때문일 게다
- 시집 『노스캐롤라이나의 밤』(지혜, 2013)
* 정국희 : 창조문학 신인상. 미주한국일보 시부문 입상. 미주한국문입협회 이사 및 사무국장. 미주시문학회 회원. 시집으로 『맨살나무 숲에서』『신발 뒷굽을 자르다』『노스캐롤라이나의 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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