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2012.02.03 13:41
바람
도무지 수상했다
참으로 수상쩍었다
결코 무리한 추측이 아닌 것이
그때는 바람에서 나는 냄새부터가 달랐다
검불이나 날리며 건듯 스쳐가는 그런 바람이 아니었다
호박은 못 움직여도 사람은 돌아서게 할
한마디로 허랑방탕하고 느자구 없는 바람이었다
휘파람 불며 샤워 끝내고
고개 돌려 뒷모습까지 비쳐보며
짧게 웃고 나가는 것은 사실 단서가 아니었다
낌새로 오는 것
느낌으로 오는 것
여자의 본능은 물증이 없어도 심증으로
신 내린 지 사십 년 된 천수보살보다 더 정확하게
가락을 타고 줄줄이 체감으로 스며 오는데
척 보면 삼천 리 일어서면 삼만 리 산 귀신인데
바람소리만 들어도 태풍이 오는지 가는지 다 아는데
하물며 잠자리에서 치사하게 뒤척이는
꿍꿍이속을 어찌 모를까
똥낀 놈이 성낸다고
잔머리 굴리다 되려 펄쩍 뛰는 신경질과
피부세포 맹랑하게 가동하는 소리를
모르고 있는 것은 바람 저 혼자 뿐이었다
속 창아리도 없이
옴팡지게 속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은
그냥 모르는 척 속아 주고 있었다는 걸
바람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03 | Drive Through | 정국희 | 2017.01.18 | 20 |
202 | 순환의 힘 | 정국희 | 2019.01.28 | 34 |
201 |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스페인과 포루투칼에서... | 정국희 | 2017.01.05 | 38 |
200 | 4월의 시 | 정국희 | 2020.11.29 | 40 |
199 | 새해에 바치는 노래 | 정국희 | 2021.01.18 | 40 |
198 | 왼쪽을 위한 서시 | 정국희 | 2019.01.30 | 43 |
197 | 알함브라의 사랑 | 정국희 | 2019.01.29 | 46 |
196 | 5월의 시 | 정국희 | 2020.11.29 | 46 |
195 | 루브르 박물관엔 전생의 내가 있다 | 정국희 | 2021.06.23 | 51 |
194 | 늑대의 조시 | 정국희 | 2019.02.08 | 54 |
193 | 아침부터 저녁까지 | 정국희 | 2021.02.27 | 55 |
192 | 나는 그를 보고 있으나 그는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모른다 | 정국희 | 2021.02.07 | 58 |
191 | 친정집을 나서며 [2] | 정국희 | 2017.03.05 | 61 |
190 | '목줄' 시작 메모 | 정국희 | 2017.04.28 | 61 |
189 | Guess의 문제점 | 정국희 | 2021.04.05 | 61 |
188 | 이영광의 시 (작아지는 몸)감상 | 정국희 | 2019.03.24 | 64 |
187 | 방과 부엌 사이 | 정국희 | 2019.02.08 | 64 |
186 | 왼쪽을 위한 서시 | 정국희 | 2022.02.27 | 66 |
185 | 로스앤젤레스, 천사의 땅을 거처로 삼았다 | 정국희 | 2019.02.03 | 71 |
184 | 똥꿈 | 정국희 | 2019.02.28 | 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