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속 비밀을 읽다
2015.01.02 01:51
몸 속 비밀을 읽다
사내는 필름을 들고 들어왔다
항상 그리 해온 듯 필름을 꽃고 형광불을 켰다
하얀뼈가 환히 들여다 보이는 엑스레이를
쇠막대가 짚어가며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다
뼈사이 숨겨진 상처를 세밀하게 들추어 내
과거에서 현재까지 설명하고
나쁜 곳은 오래도록 지적했다
낮은 첼로음같은 균형잡힌 목소리가
조근조근 살 속의 비밀을 밝혀 내자
미열 있는 가슴으로 긴장이 죄어오기 시작하고
이마 위론 어질어질 빈혈이 인다
내 근심을 엿듣고 있는 둘사이의 공간이
심한 안개주의보를 발효한다
무한세계가 소유하는 침묵 속
세상은 잠시 회전을 멈추고 필름 속으로 축소되었다
침묵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침묵을 지키는 건 얼마나 낯설은가
지리산 아흔 아홉 골을 울리고도 남을 통한
뼈 속에 있건만 귓전에서 소란스러울 뿐
목울대만 저려온다
살아있다는 것 외엔 내세울 것도 없는 몸
그날 이후 시간들이 잔인했다
마디마디 사각거리는 불협음 간신히 삼키는데
필름 빼낸 묵직한 걸음이 가만가만 나가고 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3 | 평론 '삶과 죽음의 변증법' | 정국희 | 2021.04.09 | 74 |
182 | 기억을 사는 여자 | 정국희 | 2019.03.19 | 78 |
181 | 어머니 | 정국희 | 2015.04.19 | 80 |
180 | 봄날은 간다 | 정국희 | 2019.02.17 | 80 |
179 | 어머니 | 정국희 | 2015.11.17 | 81 |
178 | 미주시학 '이 계절의 시' '다음생이 있다면' | 정국희 | 2017.02.28 | 82 |
177 | 딩요 | 정국희 | 2014.12.09 | 83 |
176 | 유토피아 | 정국희 | 2015.01.17 | 86 |
175 | 늙은 호박(KBS 한국어 능력시험 출제 작품) | 정국희 | 2022.01.13 | 88 |
174 | 가끔씩 | 정국희 | 2020.07.18 | 92 |
173 | 자갈치 외 4편 | 정국희 | 2017.04.16 | 94 |
172 | 사막은 슬프다 외 3편 | 정국희 | 2015.11.27 | 99 |
171 | 배정웅시인의 시 감상 | 정국희 | 2017.10.09 | 101 |
170 | 노스캐롤라이나의 밤 | 정국희 | 2016.01.28 | 102 |
» | 몸 속 비밀을 읽다 | 정국희 | 2015.01.02 | 103 |
168 | 세마춤 | 정국희 | 2021.03.03 | 121 |
167 | 다음 생이 있다면 | 정국희 | 2014.12.03 | 138 |
166 | 기도 [5] | 정국희 | 2019.05.21 | 151 |
165 | 시에서의 리듬의 속성,존재양상 | 정국희 | 2015.10.28 | 157 |
164 | 이영광의 시 (고사목) 감상 | 정국희 | 2019.02.09 | 1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