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시
2020.11.29 21:12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절정(絶頂)>
1940년 『문장』에 발표된 <절정(絶頂)>은 일제 강점기하에서 고통받는 민족수난을 주
제로 한 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시라고 평가받고 있다. 다시 말하면, 조국 상실과 극한의 상
황에 처한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괴로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저항의식을 담은 시로
가혹한 위기상황을 처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라고 하겠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옥
타비오 파스가 쓴 시론 <활과 리라> 첫 장 첫 줄에 나와 있는 이 문구는 이육사의 <절정>과
너무나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즉, 이 시 전체가 바로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기 때문
이다. 색깔도 소리도 없이 파고드는 시의 몸짓이 마치 내가 겪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몸속
으로 파고 들어온 까닭은 바로 한 핏줄을 나눈 동족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겪어보지 못한
저 먼 시대, 분노와 통곡이 만무하던 그 시대는 내 어머니가, 내 동포가 겪었던 참혹한 현실
이었기에 같은 감정으로 스며든 것일 게다.
어찌 시뿐이겠는가. 올해는 3.1 운동 및 상하이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
과 외국의 여러 곳에서 민족 시인과 열사들을 기렸다. 1919년 4월 11일에 임시정부가 수립되
어 27년간 항의투쟁으로 고난의 여정을 겪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86년 전 오늘 4월
29일은 윤봉길 의사가 대한 독립을 위해 생때같은 자신의 몸을 던진 날이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 천왕의 ‘생일 연과 상하이 점령 기념식’에서 일본 국가가 막 울려 퍼지는 순간 단상에
폭탄을 투척하고 헌병에게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간 날이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은 ‘사내대장부는 집을 나서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는 뜻으로 <매헌 윤봉길> 의사가 집을 떠나면서 남긴 글이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최후의 식탁을 같이 했다. 일터에 나가려고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 라
고 윤봉길의사와의 마지막 식사 장면을 썼다. 시인이기도 했던 윤봉길 의사는 거사하러 떠나
기 전 자기의 새 시계를 김구 선생에게 드리고 김구선생의 헌 시계를 바꿔서 차고 나갔다고
한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25세의 나이로 조국
을 위해 몸을 바친 윤봉길 의사나, 저항의식을 글로 승화시킨 민족 시인들의 곧은 정신은 길
이길이 우리 민족의 자산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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