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순

2009.08.13 14:33

정국희 조회 수:545 추천:92




고구마 순


부엌에 있던 고구마 중 한 개
순한 싹을 틔웠다
생살 뚫고 간신히 숨통 튼 애린 생명
댕강 부러뜨리고 삶아 먹을 수 없어
보시하 듯 물을 부어 주었다

뒷 날 아침
쑤욱 올라온 순들
키순대로 정렬하여
대롱대롱 빛을 잡고 있는 모습
너무 이뻐서
가슴 한 켠이 시렸다
이 말간 새순들
물이 아무리 많아도
물만으로는 살 수 없을 텐데

산다는 건 잠시 빛을 쥐었다 놓는 것

죽음이 없다면 태어난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파릇파릇 죽음을 노래하는 잎들

세상에 눈물겹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가늘가늘 매달린 연약함이
눈물겨워서 눈물겹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3 가게에서 정국희 2013.04.02 560
102 남의 말 정국희 2013.02.18 560
101 맥시코 국경에서 정국희 2008.02.23 558
100 신호등 정국희 2008.02.12 558
99 정국희 2011.12.13 556
98 무서운 세상 정국희 2012.10.19 555
97 죄송합니다 정국희 2009.05.26 550
» 고구마 순 정국희 2009.08.13 545
95 마네킹 정국희 2009.08.11 544
94 바람아 정국희 2011.07.17 521
93 김지하의 시세계에서 불교적 상상력의 특성, 내용, 위상 정국희 2016.01.01 521
92 소리3 정국희 2008.02.28 517
91 한국에서2 정국희 2008.02.09 511
90 동창회 정국희 2013.07.10 495
89 유목론에서 다양체의 원리 정국희 2018.01.13 491
88 소리2 정국희 2008.02.28 491
87 인간의 시간 혹은 우주의 공간(배한봉/복사꽃 아래 천년) 정국희 2016.07.04 485
86 질투 정국희 2013.03.12 484
85 한국문학사 요약 정국희 2016.12.05 481
84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 대한 비평 이론 정국희 2015.12.20 468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9
전체:
88,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