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2012.11.30 02:38

정국희 조회 수:591 추천:56



향수


손님 없는 계산대에 앉아
깜박 졸음이 들라치면
아득하게 먼 샛길이 보인다
그러면 두 눈 그대로 감고
맨드라미 싸리나무 육모초
옹기종기 줄지어 선 돌담길로
찰랑찰랑 걸어가는 어린 소녀 본다

사시장철 풍치 좋은 산 아래
사대부집 후손으로 자리잡은 집
마당에서 놀던 감빛 햇살
불썬바위로 넘어가면
부녀자들 빌미 만들어 모여들던 집

전생은 어쨌든 간에
후생은 구렁이 되었다는
택호가 영암댁인 작은 할머니
당골네 말이 영험 있었던지
뒷간이나 곳간까지 구렁이 얼씬거려 쌓더니
끝내는 할아버지 데려가 불고
가산이 차츰차츰 반으로 줄어들었던 집

구렁이 같은 년이라고
눈꼬리 사납게 흘겨대쌓던 울할머니
큰 굿하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던 그 집으로
함마니 함마니
쪼르륵 달려가는 어린 소녀 본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3 신발 뒷굽을 자르다 정국희 2012.01.20 584
122 80년대에서 2천년대에 이르는 시의 흐름과 변증법 정국희 2012.02.03 1034
121 바람 정국희 2012.02.03 780
120 단전호흡 정국희 2012.02.09 732
119 나이 값 정국희 2012.02.21 717
118 마네킹 정국희 2012.02.29 743
117 계절 정국희 2012.05.30 649
116 점심과 저녁사이 정국희 2012.06.11 913
115 정국희 2012.07.20 631
114 대책 없는 수컷 정국희 2012.08.20 645
113 그 남자 정국희 2012.08.30 631
112 그늘 정국희 2012.10.04 650
111 무서운 세상 정국희 2012.10.19 555
110 눈빛 정국희 2012.10.30 566
» 향수 정국희 2012.11.30 591
108 사주팔자 정국희 2012.12.26 794
107 상현달 정국희 2013.02.11 653
106 남의 말 정국희 2013.02.18 560
105 질투 정국희 2013.03.12 484
104 가게에서 정국희 2013.04.02 560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5
어제:
17
전체:
88,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