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 대한 비평 이론

 

                                                                                                                            정국희

 

 

         “자크 데리다의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란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천둥을 동반한 폭우를 피해 주차장 안에 있었다. 비평이론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차 안에서 그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데리다의 글이나 폭우가 드러내는 장대한 자연의 힘에 감동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읽은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이것은 <비평이론의 모든 것> 을 쓴 로이스 타이슨이 한 말이다. 이 말은 또한 내가 <비평이론의 모든 것>을 읽은 뒤의 심정과 거의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에 옮겨 보았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 은 라틴 아메리카의 소설문학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고 평가되고 있는 책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작품은 인간과 자연이나 선과 악에 대한 이데아를 바탕으로 무수한 에피소드를 삽입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개발이라는 미명을 내세운 인간들에 의해 그 처녀성을 유린당하고 있는 아마존을 위한 서사시이다. 몇 년 전 페루에 갔을 때 아마존에 갔던 기억이 떠올라서 책을 읽는 내내 상상을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밀림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배를 타고 한 바퀴 돌았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스토리가 연결되었다.

 

1) 정신분석 비평으로서의 소설에 대한 이론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소설을 먼저 정신분석 비평으로 이론을 전개해 보면 이렇다. 먼저 전치(displacement)라는 단어는 딴 곳으로 옮겨 놓음이란 뜻인데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 용어로는, 어떤 이를 향한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소설은 아마존 열대우림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마구 훼손시키며 무차별적으로 야생동물을 죽이는 현대문명에 전치를 둔 소설이라 하겠다. 리얼리즘에 마술 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이 소설은 최초의 환경소설로 평가 받을 만큼 생태계 문제를 흥미 있게 다뤘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쓴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이 작품을 아마존의 수호자이자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다 무장괴한에게 살해당한 치코맨더스에게 헌정했다. 한 마디로 친구인 치코맨더스가 해준 이야기를 토대(base)로 쓴 작품인 만큼 테마가 순수하고 플롯이 복잡하지 않다. 특별히 아마존을 위한 주인공의 무수한 에피소드에서 정신분석학 개념들과 마르크스비평 방법, 그리고 신역사주의와 문화비평의 대략적 개념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우기가 시작되는 어느 날 백인 시체가 발견되면서 마을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밀렵꾼에게 새끼를 잃고 암살쾡이가 그 보복으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가장 궁극의 버림받음이다. 죽는 순간에는 온전히 자신 혼자만의 것이므로 공포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거의 70이 다 되는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죽을 때가 되면 죽는다는 자신만의 어떤 신념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들처럼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무수한 심리적 실체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다 동물에게 찢겨 흉측하게 죽어간 시체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민을 위해서 아마존 숲을 잘 안다는 이유로 읍장과 함께 몇 사람이 모여 암살쾡이를 죽이러 떠난다. 자기가 죽을지 또는 죽임을 당할지 아무런 추측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처절하고도 슬픈 죽음의 싸움이 시작된다. 죽느냐 사느냐의 현실 앞에서 노인은 지나간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죽음과의 사투를 뒤돌아본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형식이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기본 이론과 같은 이론이다. 경험과 감정들에 힘을 부여함으로써 현재의 경험을 조직해내도록 하는 무의식의 정의라고 하겠다. 또한 주인공이 치과의사에게 부탁해서 얻은 연애소설을 읽는 대목은 야릇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지만, 노인은 그 것을 늙음에 대한 하나의 방어 목적으로도 사용했다. 일종의 마음의 알레르기인 과잉방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혼자 생활하면서 생기는 고독한 감정들을 피하고자 할 때는 책을 읽는 것처럼 외로움을 즉각 거둬들이는 것도 사실 없기 때문이다.

 

       노인은 책을 읽을 때 안정되고 편안한 마음을 느낀다. 그런 마음은 그의 생활에 무의식적으로 심리적 압박이 들어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를 테면, 자신도 모르게 일시적으로 오는 불안감이라고 하겠다. 이런 현상을 정신분석학 용어를 말한다면 심리적 방어라고 말한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키스라던가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 등이 어떤 환상을 상키 시켜 주는 것도 있지만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도 말했듯이 상실과 결여가 수반되면 사물을 대신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연애소설이 필요한 이유는. 사실은 그 연애가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란 뜻이다. , 환유처럼 연관되어 있는 사물을 다른 사물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전치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을 또한 라캉의 정신분석학 독법에서 해석 했을 때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가 갖는 중요한 초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임신을 못하는 아내를 데리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일이라던가, 아내가 말라리아에 걸려 뼈를 태울 듯한 고열로 신음하다 죽는 일, 그리고 뱀에 물려서 죽어가는 순간에 주술사의 끈질기고 집요한 처방에 가까스로 살아나는 일 등은 암살쾡이와 사투를 벌이는 일 못지않게 정신적 상처들을 고조시킨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가 수아르족 인디오들과 함께 정신적 상처들에 대한 억압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하겠다.


2) 마르크스주의와 비평으로서의 소설에 대한 이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 중에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은 없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이념과 사상의 신념체계이며 모든 신념체계는 문화적 조건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심지어 자연이 과학적 법칙들에 따라 움직인다는 가정조차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했다. , 이데올로기는 모든 인식체계로서 이데올로기가 없다면 한 순간도 사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스토리의 무대인 엘 이딜리오는 에콰도르 정부가 약속한 땅이라고 속여 수많은 사람을 이주시킨다. 에콰도르는 개발이라는 이유로 엘 이딜리오를 이용하여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확산하려고 해당 지역에 세력을 넓히려 한다. 어찌 보면, 토착민들의 의식을 식민화하기 위해 문화적 길들임을 시도하려는 의도로 봐도 무방하겠다. 정부가 파견한 유일한 공무원인 읍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이주민 위에서 독재자처럼 군림한다. 이런 정부의 강압적 공권력을 지닌 기관이나 공무원은 사회경제적 계급지배의 이데올로기에 속해 있다. 어느 도시에서 근무하다 공금을 횡령하다 들켜서 밀림의 오지로 좌천되었다고 소문난 읍장은 원주민 여자와 함께 살며 무지막지하게 손찌검도 한다. 읍장의 잔인한 속셈은 여자 자신이 쫓겨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저항하지 않는 하층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인정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또한 여기에서 읍장의 역할은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경제적 현실이라는 계급에 속해 있다. 모든 인간의 사건과 생산에는 특정한 물질적 역사적 원인이 존재하므로 가진 자들과 못가진 자들 사이에서 곧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실제 전선이 형성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천성적으로 우월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계급차별주의에서 비롯된 심리라고 하겠다. , 인간존재의 가치를 계급과 동일시하는 이데올로기가 읍장과 마을사람들에서 확연이 나타나고 있다. 백인들이 허락도 없이 오두막에 들어와서 그의 아내와 찍은 사진을 사겠다며 그것을 마음대로 떼어 배낭에 담는다. 그리고 그 댓가로 지폐를 내려놓는 행위들은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문화적 차원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를테면, 소유물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만을 강조하며 오만한 그 행위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많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어떤 물건의 가치가 인간적인 것과 무관해진다. 그 가치는 등가의 화폐로 전환되어 오직 물건과 화폐사이의 관계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 행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은 자본주의가 인간 정서에 끼치는 악영향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고 본다. 사실, 사진 속 그의 아내는 머리에 식물성 기름을 발라 두 갈래로 늘어뜨리고 그 위에 청색 벨벳 수건에 화려한 색실로 수놓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하긴 원형의 귀걸이며 목에 두른 여러 개의 띠 모양 목걸이를 한 모습은 오타블로 지방풍이 자못 위엄 있게 보이긴 했다. 이런 면에서 백인이 한 행동은 아마도 상품화에 의한 사용가치(use value)나 교환가치(exchange value) 또는 교환가치 기호(sign-exchange value)의 측면에서 되팔려는 상품화의 목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백인은 그 사진을 상품화 하여 자신을 근사한 사람 즉, 상대의 교환가치 기호(sign-relative exchange value)로 상품화하는 두 가지 효과에 따른 가치를 동시에 노렸던 것이다. 즉 바로 이런 점이 내가 가진 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인간의 상품화에 속한다고 하겠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소설에서는 낮은 계급의 이주민이나 수하르족들을 호감가지 않는 인물들로 그리고 있다. 그들은 몸으로 열심히 세상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는 그들이 절망의 땅에서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치과의사가 정부를 몹시 증오하는데서도 볼 수 있다. 정부는 이 마을사람들을 위한 어떤 시설이나 혜택을 전혀 하지 않고 방치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 밖에 오지 않는 캐캐묵은 수크레오를 타고 오는 치과의사는 부족한 치아로 음식을 씹는데 이골난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틀니를 끼워주곤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이러한 경제적 물질적 조건에 따라 형성된 이데올로기는 차별 및 갈등을 인식하게 만든다. 자본주의의 가치는 내가 살고 있는 재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만 결정된다는 이데올로기를 함께 보여주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작품 논의는 정신분석학적 독법과 마르크스주의적 독법을 대조하므로서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3) 신역사주의와 문화비평으로서의 소설에 대한 이론

 

       신역사주의의 핵심개념은,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해석의 문제이지,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라고 했다. 모든 역사소설은 서사(소설에서의 서사는 일종의 허구적인 구조)이며, 그렇기 때문에 문학비평가들이 서사를 분석할 때 활용하는 도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역사서술을 분석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었다. 만약 어느 역사가가 독립전쟁에 관해 저술한 책이 있다고 치자, 전통적인 역사관을 지닌 사람이 이 책에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이렇게 설명해도 되는 것인가의문하며 그 당시의 전쟁을 일으킨 시대정신과 관련하여 반문할 것이고, 신역사주의 이론가라면 이러한 설명은 무엇을 말해주는가생각하며 그 당시의 문화적 배경과 정치적 현안 및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것이다.

 

여기에서 전통적 역사학에 입각한 학자들의 질문과 신역사주의 이론가들의 질문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아래의 도표에서 나타나듯 역사를 무엇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대한 서로의 시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역사학

(사실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신역사주의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무엇이 일어났는가?“ 그 사건이 역사에 관하여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그 사건이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가?“ “그러한 해석이 해석자에 관하여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선형적인 인과관계

복잡다단하고 순환적인 영양관계

객관적인 분석, 진보적 역사관

해석자의 주관성, 진보는 없다

사실에 대한 완벽한 재현

사실 자체에 대한 불신

총체적인 시대정신, 당대 세계관의 구현

이데올로기의 경쟁. 다양한 의제들의 대립

 

      문화비평과 신역사주의는 동일한 이론적 근거들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두 분야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심지어 철학적 토대까지 공유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역사적인 문헌들을 어떤 담론으로 해석해서 이런 것들이 숨어있는 권력의 구조라든가 성 이데올로기들을 읽어내는 작업을 하였다) 의 작업에 크게 의지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도 문화비평의 사례로 읽힐 수 있다. 심지어 이 소설에 대한 정신분석학 해석 역시 문화비평으로 고쳐 읽는 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좁은 의미의 문화비평은 마르크스주의 비평을 모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비평 이론가들의 작업은 검토 대상이 대중문화이든 고급문화이든 특정한 문화적 생산물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내자면, 현대소설의 미학을 한 차원 끌어올린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환경이나 생태계 문제를 흥미 있게 다루면서 주인공인 노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밀림 속으로 죽음을 찾아나서는 행위에서 오로지 이익만을 쫓는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위선에 찬 존재들인가를 깨닫게 한다. 이를 테면, 이 책에 실린 온갖 에피소드를 보면 권력 앞에서 억압받는 환경들이 나오지만 어떻게 나아질 것인가 하는 답은 없다. 억압당하는 사람들은 지배적 권력 구조로 부당하게 고통 받는 존재들이지만 저항하거나 변화를 일으킬 역량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자료출처: 로이스 타이슨 <비평이론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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