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어 비로자나 / 윤정구

2006.08.29 01:55

eubonghee 조회 수:780 추천:81

사진작가 배병우와 소나무
  목어 비로자나

윤 정 구


쇠락한 大寂光殿 앞마당이다
늙은 木魚 한 마리가
조선소나무 사이로 바다를 듣고 있다
천리를 달려온 나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대적광전의 배흘림을 발판삼아
바다 저쪽으로 귀를 열어 놓고 있다
조선소나무도 되고 바다도 되고 나도 되는
수많은 소리들이 하나의 소리로 울리기를 기다리는,
이제는 삼색 비늘조차 몇 남지 않은 목어
세월의 힘도 빌지 않고
스스로를 깎아내는 아픔도 없이
향기로운 꽃을 피우려 했던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처럼 반쯤 눈을 감고
망망한 바다의 소리를 듣는
늙은 木魚 한 마리,

나는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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