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운트 다야불로에서 만난 여우
(Fox I Met at Mount Diablo)
나무와 풀들은 따라오기를 포기한 산등성
송곳니 같은 바위들만 높게 낮게 앉아서
바람을 잘게 부수고 있다
바위 뒤에서 빠른 속도로 한 물체가 지나간다
조금 후 서서히 몸체를 드러낸다
길게 부풀려진 꼬리, 뾰죽한 얼굴
저것은 여우다
돌 하나 집어 던지면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거리
그의 걸음은 너무나 태연하다
잠깐 맞춘 눈도 고인 물처럼 흔들림이 없다
저 조용한 몸짓은
믿음일까 본성일까
인디언들이 성인식을 올리는 밤이면
도깨비불로 타올랐다는 이 산등성이에서
인디안을 지켜보며 불붙던 야성의 눈빛도
일정 거리를 지켜 서성거리던 걸음도
이제는 볼 수 없다
홀연히 끌어 당겨진
그와 나와의 거리
그러나 그의 마음자락은 한 치 앞도 읽혀지지 않는다
오늘, 태양이 제 몸의 한 부분을 터트려
붉은 하늘을 연다는 밤
과연 그는 그의 눈에 불을 옮겨 담을 수 있을까
나는 짐짓 그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유봉희의
〈다야불로에서 만난 여우〉는
동물시의 한 표본이다.
묘사가 완벽한 것은 그의 관찰력의 남다른 재능 때문일 것이다.
감정의 물기를 배재한 치밀한 묘사력이다. 묘사에 들뜸이 없다.
이 냉정한 대상 바라보기. 여우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고요.
인간을 경계하지않는 성자와 같은 여우의 태연한 자태를
바로 앞에서 서로 마주하며 이 긴장력.
“잠깐 맞춘 눈도 고인물처럼 흔들림이 없다.
저 조용한 몸짓은 믿음일까 본성일까.”
외워두고 싶은 구절이다.
이제 미주 문인들의 시는 개인적 서정에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삶으로 부터 종교적 내면적 문명비판적 사회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어 있다. 현대적 서정성이란 자연친화적 서정, 내면적
감성의 상상력, 사회성, 도시적 서정성을 폭넓게 획득하고 있다.
이 항목들은 한국의 현대시의 오늘을 잘 설명해 주는 항목들이다.
- 글 : 조정권 시인 / - 미주문학 통권 제 38호 작품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