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해외문학 2007 겨울호의 미주 시작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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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원형적 모습에 대한 향수”
- 시인 · 평론가  박영호  


미주에서 발표된 올해의 시작품은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을 다룬 작품이 가장 많고,
… 거론된 자연과 인간의 근원적이고 원형적인 모습에 대한 향수를 다룬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 다음 시 역시 소리라고 하는 감각적인 세계를 통해서 자연과 사물 속에 존재하는 무한의 세계를 연기적(緣起的)인 상상과 사색적 감각을 통해서
하나의 이메이지 시로 형상화 시킨 아름다운 작품이다.
시계 소리만 커지는 아침 열시
누군가 자꾸 벽을 두드리는 소리
그 울림 집안을 채운다
나가보니 머리가 빨간 모자를 쓴 딱따구리가
콘크리트 벽을 쪼으고 있다

눈 먼 새인가 ?
시각이 멀면 청각이 밝아진다는데
벽 속에 숨겨진 나무 숨소리를 듣나 보다
잠자고 있던 집안의 가구들을 깨워
그들이 먼 기억으로부터 일어나는
소리를 듣나 보다

저것 보세요 !
책상 나무 무늬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마루 바닥이 물씬 송진내를 토해낸다
창틀에서 푸른 가지가 피어난다
어떤 나뭇가지는 벌써 하늘을 가릴 만큼 커져있다
빨간 모자 쓴 딱따구리가 휙 날아간다
나무 창틀이 솟아올린 숲으로.

- 유봉희 제1시집 소금화석中
‘나이테의 소리가 들리나요’ 일부 (미주문학 2007 봄호)

시인의 전령사나 다름없는 한 마리의 딱따구리를 통해서 사물의 세계를
사색적 세계와 감각적 세계의 조화를 통한 생과 사를 별개의 개념으로
구분하지 않는 무한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장자 사상에서 두 개의 현상이 전연 별개가 아니고 하나일 수 있다고 말하는 일종의 합일주의(萬物齎同, holism)의 현상과 같이 생물과 무생물이나 그리고 생과 사를 전연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는 세계가 표현된 것이고, 그래서 순수 자연을
하나의 살아 숨쉬는 자연의 생명력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자연이 변질된 현실의 모습인 가구로서의 재목이
보일 뿐이지만 눈을 감고 본연의 자연세계로 돌아가면, 모든 가구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처음에는 '듣나 보다.'
라는 화법을 통해서 안개가 걷히어오는 듯한 불확실하게 살아나는 감각의 세계가 상징적으로 표현 된 것이라 할 수 있고, 처음 청각에서 시작된
감각이 다음에는 나무의 냄새가 엉켜있는 송진내 라는 보다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후각적 느낌을 불러 일으키고, 이어서 창틀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시각적 윤곽과 숲이라고 하는 생명체로 살아난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마리의 날아가는 새를 본다는 생동감으로 표현된다.

결국 벽 속에 갇혀 있는 무생(無生)의 재목이 숲과 새라고 하는 유생(有生)의 생명체로 살아나는 과정을 하나의 감각과 사색의 점층적이고 연상(聯想)적인 구성으로 형상화 시키는 기법이 가히 특출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도 '빨간 모자를 쓴 딱따구리가 휙 날아간다.' 라는 선명하고도 생명력 있는 표현으로 회화적인 감각의 세계를 생동감 있는 유동적 유희적인
시적 감흥 세계로 조화 시키고 있는 점이 특색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딱따구리가 쪼아대는 콘크리트 벽 이라고 하는 상징적인 표현은
변조된 현실적 자연의 모습에 대한 고발이 표현된 것일 수도 있어서,
이는 어쩌면 자연을 막아서는 인간의 그릇된 모습일 수도 있고, 시인이
그려내는 숲과 새는 시인이 바라는 바의 우리 인간이나 자연의 원형에 대한 향수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평론> 해외문학 (2007 겨울)에서… 글 : 시인 · 평론가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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