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 속아주기 … 1-5

2012.04.21 07:53

유봉희 조회 수:308 추천: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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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번 속아주기

유 봉 희

바람 부는 풀튜기 바닷가 모래언덕을 걷다가
앞에서 비틀거리는 고리물떼새 한 마리를 보았다.
몹시 다쳐서 쩔뚝거리며 찢어진 날개를 질질 끄는 새,
저걸 어쩌나!
조심스럽게 몇 발자국 따라가는데 갑자기 하늘로 휙 날아오른다
아하! 이곳을 잘 살펴보면 고리물떼새 새끼들이 숨겨져 있겠지
파도소리가 자분자분 두드려 주어도 아직은 털 보송보송
일어나는 새끼들.

엄지만한 저 어미새 머릿속 어딘가에
저런 능청스러움이 숨어 있을까
새의 시조 아르케오프테릭스*에서부터 그려왔을 머릿속 지도는
세상의 모든 어미가 공유하겠지만 어떤 어미도
새끼를 먹이사슬 넘어로 던질 수 없다 저 새는 어떻게
체념의 무거운 닻을 조그만 가슴에 내려놓고 있을까
조그만 새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백 번이라도 싱싱하게 속아주는 일 뿐이구나.


*아르케오프테릭스(Archaeopteryx)
: 가장 오래된 시조새(약 1억3800만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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