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시- 강물 / 눈 오는 밤 + 후기

2023.08.28 00:13

서경 조회 수: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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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비구비 감돌아
                                 그대는 오시는가

                산 넘고 물을 건너
                                 이제사 오시는가

                한아름 이야기 안고
                                 느릿느릿 오시는 그대   

                                            (사진:최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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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석 문학 산장의 밤 -

                  함박눈은 펑펑 나리는데
                             가로등은 누굴 위해
                                      이 밤을 뜬 눈으로 지새는가

                  백석도 가고
                            그의 연인 나타샤도 가고
                                      우리의 젊음도 저만치 멀어져 가는데

                  함박눈은 펑펑 나리고
                             조을 듯 조을 듯
                                      이 밤을 지키고 선 
호박빛 등불   


                            (사진/최문항 - 눈 오는 밤 1,2)

 

< 시작 후기>

십 여 년 전에 쓴 글을 소환해 두고 다시 이 글을 쓰는 마음이 쓰리다. 

2023년, 8월 19일.

코비드 이후, 첫 대면으로 열리는 <미주문학 여름 캠프>에서 소설가 최문항씨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뭐라구요?" 

나는 털썩 주저앉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미주문협 웹사이트에는 잘 들어가지 않고 특별히 전화 수다 뜨는 문우도 없는 터.  

소식에 밝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월보에 난 소식을 지나 칠 일도 없을 텐데 어찌 이리도 까맣게 몰랐을까. 

그는 내가 귀히 여기는 문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의 팬이다. 

'허구'라는 사실 때문에 소설에는 별 흥미가 없었는데 그런 내게 소설의 재미를 알려준 사람이다. 

<황동 십자가>에서 반쯤 눈 뜬 나는 그의 <영규네 농장>을 읽고 완전 매료되었다.

지도를 펼쳐 보이는 듯한 배경 설명과 살아 꿈틀대는 듯한 주인공의 성격 묘사는 가히 일품이었다. 

특히, 소설 속 배경이 우리 동네 근교라 친밀감이 들었고 주인공 영규의 진취적이고 사내다움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소설이지만 소설같지 않은 리얼리티. 

이런 소설 같으면 분명 실질적인 모델이 있을 거라 믿었다. 

소설 속 주인공을 직접 만나 보고 싶었다. 

작가 최문항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규네 농장> 실지 주인공 모델이 누구지요? 배경이 우리 동네 근교던데 근처에 살면 한번 만나 보고 싶어요!"

"하하! 영규는 완전 내 상상 속 가공 인물입니다. "

"네? 완전 가공 인물이라구요?"

"네. 상상 속 인물..."

순간, 나는 솔거의 황룡사 노송도에 머리를 부딪힌 새 꼴이 되었다.  

그의 작품이 독자에게 얼마나 실감을 주었는지 알기나 할까. 

'소설이 다 그렇지, 뭐!'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안돼! 영규 내 놔아!"

나도 모르게 소리치며 영규 내 놓으라고 떼를 썼다. 

그는 애기같이 조르는 내가 우스운지 계속 껄껄댔다. 

"그러면, 그 배경 묘사는 뭔데요? 와 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표현이던데?"

토라진 목소리로 그에게 따졌다. 

"하하! 그건 제가 부동산을 해서 그 동네를 빠삭하게 알아요!"

"뭐라구요? 이건 완전 사기야!"

수화기 저 편으로 그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날 깜쪽같이 속여 먹은 재미에  꽤나 유쾌한 모양이었다.  

허무했다.

마치, 살아 있던 주인공이 저 세상으로 가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소설은 소설이다. 

수필은 등장 인물이 늘 실존 인물이고, 배경도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실경이다.

그런데 이건 뭐람.  

완전 스팀 아웃이다.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이럴 수가 있나. 

허구로 꾸민 소설이 수필보다 더 리얼하다니. 

속았다는 기분에 괘씸하기도 했으나 내심 그의 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사진 솜씨는 또 어떠한가. 

십 수 년 전 함께 갔던 <백석 문학의 밤> 산장에서 찍은 그의 사진 작품은 완전히 그림 엽서였다. 

그의 멋진 사진은 함박눈 내리던 그 아름다웠던 산장의 밤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의 양해를 구하고 나는 때때로 그의 사진에 내 느낌을 달곤 했다.

종종 문학 행사에서 만나면 자기 사진에 글을 써 주었다며 "당신은 없지?" 하며 옆 문우를 놀려 먹기도 했다. 

그는 때묻지 않고 순수했으며 유쾌한 사람이었다. 

일 년 열 두 달이 가도 서로 전화할 일도 없고 따로 약속해서 만날 일도 없었지만, 문학행사에서 만나면 늘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의 작품만큼이나 귀하게 생각했다.  

이제 그는 가고 없다. 

털보 얼굴도 볼 수 없고 호쾌한 그의 너털 웃음도 들을 수 없다. 

그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의 문학서재에 남아 있는 작품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의 재능이 아깝고 그의 죽음이 애통하다. 

어느 죽음인들 아깝고 애통하지 않으리오만, 친했던 문우들과의 이별은 특히 애석하다. 

아마도 문학을 사랑하는 공통분모와 오랜 연륜 때문인 듯하다. 

김영수 시인이 그러했고, 김영문 소설가가 그러했다. 

무심했던 김태수 시조시인에겐 무심했던 만큼 더 미안하고 애석했다.

꾼들이라 거기서도 다 작품을 쓰고 있을까. 

최문항씨의 명복을 빌고 먼저 간 모든 문우들의 영원복락을 위해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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