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실 비치 산책

2020.06.07 22:38

서경 조회 수: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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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오월도 어느 새 꽃처럼 지고 있다.
인간과 인간을 격리 시키는 이 잔인한 시간에 그래도 꽃은 피고 지고 계절은 오고 간다.
답답한 마음 달래려고 모처럼 실 비치를 찾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말간데, 바람은 불어 나뭇잎 수런대며 푸르름을 노래한다.
살갗을 스치는 바다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투고한 패스트 푸드 점심을 펼쳤다.
혹시, 하는 눈빛으로 비둘기 한 쌍 쬐끄만 눈 반짝이며 자비를 기다리고 참새도 포롱포롱 나르며 재롱을 피운다.
프렌치 프라이를 보고 내려 앉은 참새 한 마리.
‘사회적 거리 두기’ 교육이나 받은 듯, 요 녀석 멀찌감치 떨어져 눈치를 본다.
귀여운 녀석.
엣다, 먹어라!
식어버린 프렌치 프라이 한 조각도 감지덕지.
녀석, 재빠르게 물고 동료에게 날아 갔다.
먼 수평선엔 수 척의 배가 미동도 없이 떠 있고, 여객선은 손님도 없이 꼬리에 흰 파도를 달고 바다를 가른다.
의외로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자연은 역시 사람과 더불어 풍경을 이루어야 아름답다.
성급한 아이들, 웃통 벗고 바다로 뛰어 들고 몇몇 아가씨들 늘씬한 몸매 뽐내며 선탠을 하고 있다.
러닝도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가.
‘그래도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는 듯이, 뚱보 러너가 땀을 뻘뻘 흘리며 건너편에서 달려 왔다.
뛸 때마다 같이 출렁이는 과한 살에 나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노력이 가상하기도 하고 살 빠지지 않는 그녀의 몸이 딱하기도 하다.
나도 슬슬 워밍업을 하고 싶었다.
달리지 않은 게 벌써 석 달 째.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게으름을 부렸더니, 모든 근육들이 풀려 물렁물렁하다.
누구에게 실소할 처지가 아니다.
몇몇 해피 러너 팀 동료들이 매일 새벽 여섯 시에 모여 뚝방에서 뛰고 있다고 전갈이 왔다.
뛰고지비들, 참말로 부지런하다.
LA로 이사 와 버렸으니, 매일 참여할 수는 없고 주말에라도 동참하고 싶다.
정다운 친구요, 보고 싶은 멤버들이다.
모래밭 사이로 난 긴 포장길을 보니, 슬슬 끼가 돋는다.
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살짝 워밍업으로 뛰어 봤다.
살이 빠져서인지 몸은 가벼웠다.
런닝화를 신고 왔더라면 해풍을 맞으며 힘차게 뛰었을 텐데...
아쉬웠다.
가슴을 열고 기다리는 나의 길이여, 머잖아 그대 만나리니 잠시만 기다리시라.
속인사를 건네며 돌아섰다.
눈을 드니, 바다로 난 긴 실 비치 다리가 퍽 아름다웠다.
걷고 싶어 입구 쪽으로 돌아 갔더니, 굵은 쇠줄과 출입 금지 사인판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바다로 난 아름다운 연인의 다리.
아쉬운 마음에 계속 바라 보았다.
실 비치 다리는 인적을 거부한 채 홀로 사유 중이다.
마치, 사막의 은수자처럼 고고하게 보였다.
탁 트인 수평선과 높이 나르는 갈매기, 흰 파도 가르는 여객선과 생동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니 비로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바다 가까이 내려가 철썩이는 파도 소리 들으니 귀가 시원하고 잠자던 오감이 살아나는 듯했다.
깊은 심호흡으로 바다 내음을 흠뻑 들이켰다.
인간과 인간이 격리되어야 하는 전대미문의 이 잔인한 시간이 어서 속히 지나가기를 빌며 발길을 돌렸다.
해풍은 달콤하고, 맑은 새소리는 숲속에 온 듯 내 귀를 시원하게 씻어준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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