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기도하는 팜트리
2017.08.07 19:30
팜트리는 왜 늘 생각에 잠기게 하는 걸까.
아마도, 버릴 것 다 버리고 잊을 것 다 잊은 초연한 자세가 이민 온 초기의 나를 닮았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녀린 몸매에 소소한 생각 몇 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를 볼 때면 마치 기도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무슨 애절한 사연 그리 많아 몸은 그토록 야위어졌을까.
퇴근하면서 차를 향해 걸어가는 길.
하늘을 잡으려 키를 세운 팜트리의 열병식을 본다.
한 잎 한 잎, 아픔을 버리듯 잎을 버리며 자라온 팜트리.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면, 머리 풀고 통곡하는 여인이 되고 바람 자는 날이면 묵상하는 수도자가 된다.
팜트리는 이국적 풍경을 자아내며, 내 이민 생활의 시작과 함께 마음의 벗이 되어준 특별한 나무다.
십 년만에 다시 이 거리에 섰다.
생각에 잠겨 오고간 거리.
내 이민사가 걸음마다 씌여지고 젊음이 녹여진 이 거리, 베벌리 드라이브.
오가는 길손들의 발걸음이 바쁠 것 없는 관광의 거리에 서서 옛일을 더듬는다.
초등학생이던 딸이 교복을 입고 쫄랑대며 나를 따라 들어서던 쟈니 로케트 햄버거샵은 이름이 Fatburger로 바뀌었다.
하이 체어에 앉아 빅버거를 기다리며 동전을 넣고 듣던 팝송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예닐곱 살이던 딸아이가 이젠 서른 일곱.
세월이 많이 흘렀다.
뻔질나게 드나들던 베벌리 힐스 도서관도 여전하고 내 어카운트가 있던 뱅크 오브 어메리카도 그 자리에 있다.
새로운 듯 낯익은 이 거리.
옛날에 올려 보았던 팜트리가 오늘도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말 없는 말로 얼마나 많은 얘기를 들려 주었던가.
옛날은 가고 없어도 여전한 팜트리.
그 자리 지켜 옛모습 그대로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오래 된 책방, 혹은 드나들던 빵집이 그대로 남아 쑥 들어서면 옛주인이 버선발로 반겨주는 상상에 잡힌다.
그런 반가움과 세월의 무상함을 주는 묘한 감상에 젖어 한참이나 서성였다.
(사진 : 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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