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돌산에 핀 잡풀들

2017.07.24 15:13

서경 조회 수:9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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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얼마나 질긴 것이며 삶은 또 얼마나 모진 것인가. 
흙 한 줌 없고  물 한 줄기 흐르지 않는 이 돌산에도 생명은 살아 있다. 
죽고 살고 다시 태어나 죽기까지 그들은 묵묵히 삶을 이어 나간다. 
생성과 소멸. 
그들은 목숨의 붓으로 인생을 쓴다. 
척박한 터전도 마다 않고 생명을 이어온 그 숭고한 삶에 옷깃을 여며야 하리. 
어떻게 뿌리를 내렸으며 어디서 물을 구해 목을 축였느냐 묻지 말자.
대답하기에도 버거운 삶의 무게를 우리는 그저 가슴으로 느껴야만 하리. 
그들 앞에 겸손하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 겸손하랴.
나는 가던 길 멈추고 돌산에 핀 이 이름 모를 잡풀들을  본다. 
잡풀이라 칭하기도 미안하고 민망하다. 
척박한 땅에 뿌리 박고 살아 온 게 어디 저들 뿐일까. 
떠듬거리는 영어로 노동을 치며 삶을 견뎌내는 이민자의 삶이 저들에 비해 뭐가 다르겠는가.
하지만, 희망이 있고 목적이 있기에  열심히 살아가는 거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거라는 믿음. 
나보다는 자식의 삶이 훨씬 개선되리라는 바램.
이런 순수 감정이 없다면 , 그만한 노력과 열정을 쏟지도 못했으리라. 
푸쉬퀸은 노래했다.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삶 대신에 '희망'이란 말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리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희망에 속아 살아 왔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치고 살 수 없는  거룩함이 삶 속엔 있는 것이다. 
돌산을 뚫고 나온 이름모룰 잡풀들. 
척박한 터전에서 푸르른 삶을 일구어 낸 결과물 하나만으로도 칭송 받아 마땅하다. 
단 한 장의 가족 사진도 없을 그들.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의 증언자가 되어 주고 싶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삶의 증언자가 되고 다정한 벗이 되어 준다는 것. 
그  소명을 되새기며, 한 자 한 자 눌러 쓴다. 


                                                            (사진 : 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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