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산책하고 싶은 날

2020.04.28 15:46

서경 조회 수:16

 산책하고 싶은 날.jpg


참, 웃기는 세상이다.
코로나가 뭐라고, 이토록 지구촌을 사망의 골짜기로 몰아 넣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인간이 죽어 나가고, 인간관계마저 균열이 생긴다.
거리는 전장과 같이 고요하고 적막하다.
보도를 울리는 차량은 뭐가 급한지 서둘러 달아난다.
그래도 봄이 왔다고, 꽃은 피고 물 오른 가지엔 새 잎이 돋아 난다.
맑은 새소리도 새벽잠을 턴다.
비로 씻긴 말간 하늘은 목화솜 풀어 솜사탕을 연상시킨다.
솜사탕을 생각하니, ‘그리운 사람끼리’라는 노래가 떠오르고 ‘우리 젊어 기뻤던’ 그 날이 생각난다.  
 
- 그리운 사람끼리 두 손을 잡고/마주 보고 웃음지며 함께 가는 길
- 두 손엔 풍선을 들고 두 눈엔 사랑을 담고/가슴엔 하나 가득 그리움이네
- 그리운 사람끼리 두 눈을 감고/도란도란 속삭이며 걸어가는 길
- 가슴에 여울지는 푸르른 사랑/길목엔 하나 가득 그리움이네 
 
아, 이런 분위기를 나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풍선 대신, 연핑크 솜사탕을 손에 들고 입가엔 함박 웃음 머금고 걷던 오솔길.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는 또 얼마나 귀를 간지럽혔던가.
때로는, 해변가나 갈대밭 사잇길을 걷기도 했었지.
정말 그리운 풍경이다.
자아가 억눌리고, 자유가 억압되어 외출조차 삼가하게 되니, 들로 산으로 바다로 쏘다니던 옛날이 그립다.
자연도 사람이 그리울 테지.
한 손엔 솜사탕을 들고 도란도란 속삭이며 걷는 연인도 좋고, 아이들 웃음 앞세우고 나들이 나온 부부라도 좋겠지.
하다 못해, 벤치 위에 드러누운 홈리스라도 반가울 테지.
모름지기, 자연도 사람과 함께 어우러질 때 완성된 풍경화를 이룬다.
지금은 봄날의 풍경도 제 맛이 아니다.
봄날은 짧건만, 코로나 비상 사태는 왜 이리 길기만 하누.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방금 올라 온 사회적 거리를 둔(?) 미미와 예삐 사진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애들도 눈치 보는 모습에 기마저 죽은 듯하다.
그 애들도 나처럼 산책이 그리울 테지.
이토록 화창한 날씨에,  눈 빼꼼히 내밀고 이불 밑에 묻혀 있을 처지가 아니다.
이왕이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정다운 주인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종종걸음 치고 싶을 게다.
저나 나나 정신 건강상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한다.
계속 이 모양 이 꼴로 백수가 되어 시간만 죽인다면 정상적인 사람도 우울증에 걸릴 게 뻔하다.
심적 한계를 느낀 나도 우울증 퇴치법으로 글쓰기를 친구 삼아 이 총체적 난국을 헤쳐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도란도란 얘기할 사람도 없고, 설령 있다한들 마주 보고 웃음 지며 손 잡을 수 있는 현실이 아니기에.  
 
(사진 : 리디아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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