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8 (화) 부슬비 오고 흐림

2012.12.18 10:40

지희선 조회 수:354 추천:54

부슬부슬 비가 온다.
겨울을 데리고 올 겨울비다.
그 무성하던 수영장 옆 뽕나무 잎도 거의 다 떨어졌다.
오늘은 일하러 가지 않는 날.
강아지 목욕이나 시켜야겠다.
여덟 놈 다 씻길 수 없으니 우선 내 사랑 '피터'부터 씻겨줘야 겠다.
요키 종류로 금발과 연회색이 섞여있는 예쁜 강아지다.
아니, 예쁜 것보다 더 감탄하는 건 너무나 '착한' 심성이다.
목욕을 시켜줘도 너무 얌전하고, 털을 깎아줘도 너무 얌전하다.
전적으로 주인을 믿고 의지하는 그 모습이 정말 기특하다.
가게에 데려가도 절대 쫓아 다니거나 짖는 법이 없다.
손님들도 처음에는 인형인 줄 알았다가 눈을 깜빡이는 걸 보고는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집에 낯선 사람이 오거나 짐승이 오면 끝까지 짖는 건 '피터' 요놈이다.
'피터'는 겨울이면 내게 더 사랑을 받는 강아지다.
침대에서 안고 자면 더 없이 따뜻하고 좋다.
저혈압에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내게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침대에서 데리고 자지 못한다.
남편이 강아지 냄새 난다고 당장 밖에 내보내라고 불호령을 내려 어쩔 수 없이 내 보내야 했다.
허긴,'피터'는 안고 자면서도 남편에게는 등 돌리고 잔 내가 잘못이지.
녀석, 밖에서 다른 강아지랑 어울려 놀다보니 엉망진창이 되었다.
오늘 모처럼 정성껏 씻겨주고 털까지 깔끔하게 깎아주었더니 제 본모습이 돌아왔다.
이제 '피터'는 깨끗한 한 표다.
이대로 밖에 내 보내 비를 맞게 할 수는 없지.
오늘만 봐 달라고 남편한테 구걸 하다시피 부탁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허락해 준다. 그것도 고맙지 뭐.
내 침대 밑에 폭신한 담요를 깔고 동그랗게 침상을 마련해 드렸다.
'피터'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밥을 먹고는 잠자리로 가서 드러눕는다.
아, 피터야. 이 얼마만이냐. 나도 모르게 내 손은 자꾸만 피터를 쓰다듬어준다.
부드러운 타올로 빛을 가려주며 "피터 없다!"하고 옛날처럼 장난을 쳤다.
요 녀석! 아직도 우리들의 장난을 잊지 않았다.
고개를 '폭' 숙이며 타올 밑으로 얼굴을 숨긴다.
조금 있으면 그대로 잠 들겠지.
한없이 사랑스럽다. 내 죽을 때까지 사랑으로 키워 줘야지.
피터는 지금 일곱 살이다.
참,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하나.
신(God)에게 실망한 사람이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다가 배신감 느끼고 그 사랑 개(Dog)에게 주어버렸다는 이야기.
그러면 인간의 위치는 신(God)와 개(Dog) 사이 딱 중간인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8 포토 시 - 눈 오는 산장의 밤1* file 지희선 2013.01.06 358
167 둥근 산 지희선 2013.01.04 304
166 깨진 바가지 지희선 2012.12.29 406
165 이준관의 동시 두 편 - <별> <나비> 지희선 2012.12.18 543
» 2012.12.18 (화) 부슬비 오고 흐림 지희선 2012.12.18 354
163 2012.12.17 (월) 비 오고 흐림 지희선 2012.12.18 231
162 (포토 에세이) 가을날의 숲/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11.23 276
161 (포토 에세이) 봄날의 숲/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11.23 341
160 지희선 수필선 연결 - 눈물은 성수입니다/새벽 전람회 지희선 2012.11.06 485
159 지희선 수필선 12편(수정본) 지희선 2012.11.02 745
158 오리 공원에서 지희선 2012.10.17 420
157 독도여! 너의 이름은...... 지희선 2012.10.16 540
156 (포토 에세이) 달맞이꽃 -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10.02 778
155 (포토 에세이) 선자령 눈바람이 그려낸 묵화 한 점 -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10.01 310
154 (포토 에세이) 오대산 겨울 풍경/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10.01 485
153 (포토 에세이) 연잎 위에 앉은 청개구리 /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10.01 444
152 (포토 에세이) 비의 자화상 /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10.01 245
151 (포토 에세이) 비의 회색 초상화 /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10.01 280
150 (포토 에세이) 하얀 코스모스/ 사진; 김동원 지희선 2012.10.01 394
149 (포토 에세이) 가을을 불러오는 코스모스/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10.01 461

회원:
4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12
전체:
1,317,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