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

2010.01.11 13:00

지희선 조회 수:769 추천:107

            더불어 사는 삶

                                                                         지 희선

   나는 뜻하지 않게 경인년 새 해 새 날을 시집 한 권과 더불어 열게 되었다. 신정 연휴를 맞아 책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푸르름’ 출판사에서 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111선>이란 시집이었다. 읽은 건지 안 읽은 건지 알쏭달쏭해 슬슬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먼저 눈에 띠인 건 안도현의 ‘그대에게 가고 싶다’라는 시였다.
   -해 뜨는 아침에는/그대에게 가고 싶다/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 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나도 금방 헹구어 낸 햇살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      
    새 해 새 아침이란 정서와 맞물렸음인가. ‘금방 헹구어 낸 햇살’이란 말이 눈에 잡힐 듯 신선하게 들렸다. 그야말로 시가 내게로 왔다. 눈은 어느 새 그 다음 줄을 훑고 있었다.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 날이 밝아오고/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나는 잊지 않으리......-
   싸락눈이 내리듯, 자분자분하게 들려주는 시인의 말이 가슴에 한 켜 한 켜 쌓여왔다. 얼음장 밑으로 물밀져 오던 시냇물처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옴직도 했다. 먼 산은 아직도 하얀 잔설을 이고 있는데 그마저 따뜻한 이불로 보임은 시인이 인도했음이라.
   -그대에게 가고 싶다/우리가 함께 만들어야할 신천지/우리가 더불어 세워야할 날/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만들어야할 신천지’는 어디이며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할 날’은 또 언제일까. 그건 다름 아닌, 내가 발붙이고 사는 ‘여기’ 그리고 ‘오늘 바로 지금’이 아니던가. 비단 나뿐이랴. 어디에 무엇을 하며 살든 땅에 발붙이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함께 만들어가야 할 신천지가 있고 더불어 세워야할 날이 있음을 시인은 일깨워 준다. 백호는 언감생심, 착한 한 마리 양이 되기도 쉽지는 않을 성 싶다. 그런데, ‘더불어 세워야할 날’이 이렇게 걸리는 건 무슨 연유일까. 나도 모르게 벽에 걸려 있는 ‘더불어 사는 삶’이란 편액에 눈이 갔다.
   이민 짐에 고이 싸왔던 붓글씨 한 점. 써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무슨 의식을 치루듯 경건한 마음으로 주고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죽음 다음으로 먼 나라로만 여겼던 미국이기에, 언제 다시 오랴 싶어 나는 조국을 기억할만한 상징적인 정표를 하나 가져가고 싶었다. 흙 한 줌은 좀 진부하고, 일학년부터 육학년까지의 국어 교과서를 가져갈까. 아니면 무궁화 꽃씨를 한 봉지 가져갈까. 나는 몇 날의 낮과 밤을 고민에 싸여 잠 못 들고 뒤척였다. 그런데, 친구가 미국에는 한글학교가 있어 국어 교과서도 필요 없고, 무궁화나무도 있다고 해서 그 생각은 접어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사랑, 나의 조국’이란 붓글씨 한 점을 가져가는 게 어떨까 싶었다. 마침, 큰 스승으로 모시는 교수님이 붓글씨로도 유명한 분이라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조국에 대한 애정과 써 주신 분의 사랑도 함께 간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런 국수주의 사상으로 어떻게 남의 나라에 가서 살 거냐며 다시 생각해 오라고 야단을 치셨다. 평소에는 그렇게 자상했던 분이 히틀러까지 들먹이며 혼낼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고심한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더불어 사는 삶’이었다. 내 이민 생활의 좌우명이라고나 할까. 어디에 살든지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자고 다짐했다. 그제서야 교수님도 흔쾌히 허락하시며 예술적 필치로 멋지게 써 주셨다. 강단에서 은퇴하실 때도, 긴 말씀 없이 광복가를 힘차게 부르신 뒤 “휘익!”하는 휘파람 소리로 고별사를 대신해 전설적 인물이 되신 분.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박수 소리를 들으며 유유하게 떠나시던 모습이 편액에 얹혀 ‘더불어 사는 삶’이란 붓글씨 한 점은 더욱 의미를 더했다.    
  


   하지만, 이민 생활은 놀이도 낭만도 아니었다. 몇 년이 흐르자, 퇴색된 초심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도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살기는커녕 내 한 몸 추스르기도 바빴다. 그동안 새 해 새 날이 스물일곱 번이나 다녀갔다. 어느 새 나는 평범 속에 안주해 버리려는 아낙이 되었고, 몸도 마음도 더불어 살리라던 호기와 열정은 낙엽 따라 가버렸다. 다시 봄은 온다지만, 가을은 길고 오는 봄은 짧았다.
   더불어 살기는 고사하고 더불어 어울리기도 싫은 날들이 점점 많아지는 요즈음.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챘음인가. 시집 속에 있는 김종해 시인은 ‘그대 앞에 봄이 있다’는 시로 슬며시 나를 흔든다.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내 앞에 있다니. 이래서, 시는 삶의 위안이 된다고 정호승 시인은 말한 것일까.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어디 한 두 번이랴/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오늘 일을 잠시라도/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상처받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2010년, 경인년의 새 해 새 아침에 백호의 등을 타고 교수님의 혼령이 달려온 것일까. 시인의 영혼이 실려온 것일까. 홀로 피는 ‘고립의 아름다움’보다는 다 함께 피는 ‘군집의 아름다움’이 고개를 디민다. 한 그루의 관상수가 되기보다 길을 내어주는 숲이 되는 것도 새 해 결심으로 나쁠 거 같진 않다.
                                                   (0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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