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석 줄 단상 - 주차 유감

2022.05.16 14:16

서경 조회 수:36

20. 세 줄 문장 - 주차 유감(05072022)+ 
 
그늘을 찾아 나무 밑에 차를 세워 두었다.
오 마이 갓, 위치불문 분사방뇨한 새들의 몰염치.
오물을 뒤집어 쓴 내 차, 세차는 차주 몫이었다. 

 

주차 유감2.jpg

 

밤새 안녕이라더니, 편히 자는 동안에 내 차는 오물을 뒤집어 쓰는 굴욕을 당했다. 새들이야 날개가 있으니, 제 멋대로 위치 변경해 가며 분탕질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차는 발이 있으되 주인이 없으면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위인이라 고스란히 앉아서 당했다. 예끼, 나쁜 녀석! 출근길 바쁜 나를 30분이나 잡아두곤 세차를 시켰다. 물걸레와 마른 걸레로 닦은 뒤, 차창은 얼룩 방지를 위해 신문지로 다시 닦았다. 새는 재미있다는 듯, 저희끼리 재재거린다. 어떤 녀석은 한 수 더 떠, 하이 소프라노로 바이브레이션까지 넣어 가며 목청을 높인다. “쳇!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해?”하고 면박을 주며 시동을 걸었다. 한 시간 반의 출근길. 생각의 깊이와 높이와 부피가 가능한 시간이다. 오월은 성모성월이라 유투브를 틀고 목청 좋은 신부님 따라 묵주기도를 바치고 가는데 오늘은 달랐다. 마지막 새에게 면박을 준 말이 자꾸만 맴을 돌았다. ‘새는 정말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할까?’ ‘새는 정말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날아 갈까?’ 그건 아니다. 저들도 소통을 하기위해 고저장단 쳐가며 노래한다. 할 말이 많은 거다. 철새도 제 갈 길 다 알고 제 철을 다 아니까 무리지어 날아가는 거 아닐까? 시인이 왜 저들의 마음을 모르고 폄하한 것일까. 사람들은 왜 한통속 되어 멋있다며 송창식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까. 인간에게 그만한 대접밖에 못 받는 새들이 갑자기 불쌍해졌다. 그래, 오늘 30분의 세차는 너를 폄하한 죄의 보속이라 치자. 너는 사랑하는 영혼을 대신해서 내 창가로 날아 와 노래해 주었지. 이 생각 저 생각. 새들이 내 차 위에 분사방뇨한 것처럼 생각의 분사를 날리며 사념에 잠겼다. 어느 새 한 시간 사십 오분. 생각에 잠겨 속도를 늦추다 보니, 출근길이 평소보다 15분 더 걸렸다. 새가 내 차 지붕과 창문에 마구 분사방뇨해도 좀 봐 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심 안한 내가 잘못이지, 너희들이 무슨 죄랴! 모든 게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메아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맥시마 쿨파! 반성의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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