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두 마리 동박새

2019.03.01 00:57

서경 조회 수:95

두 마리 동박새.jpg


- (조금 멋적은 모습으로) 나, 좀 놀다 와도 되지? 
- (퉁명스런 목소리로) 언제는 나한테 물어 보고 놀았슈?
-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조금만 놀다 올게!
- (한심하다는 듯) 에구! 저승 차사는 다 어디서 무얼 하누? 
  
동백꽃 위에 앉은 두 마리 동박새를 본다. 
마치 부부 같다. 
입은 꼭 다물고 있어도 어떤 무언의 대화가 들려온다.
상상 속 대화를 희곡 대사로 옮겨 본다.
인생은 연극이요, 우린 모두 연극속 주인공이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꽃과 새로 멋진 풍경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실지로 우리 동네에 소문난 바람둥이 할아버지가 있었다. 
아주 멋진 할아버지였다. 
언제나 환한 미소에, 칠십이 넘었는데도 옷맵시가 뛰어 났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 할아버지는 늘 바쁘게 지내셨다. 
종종 안 들어 오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가끔 집에 들어 오면 옷만 갈아 입고 도망치듯 나가곤 했다.
그런 할아버지 등짝을 후려치며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 에구! 저승 차사는 다 어디서 무얼 하누? 저 화상 안 잡아 가구...... 쯧쯧!
우린 할머니가 왜 자꾸 멋진 할아버지를 때리는지 몰랐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 따라 놀러 갔을 때 그 할아버지가 일류 바람꾼이란 수근거림을 들었다. 
평생을 바람 피우며 할멈을 속상하게 했다는 거였다.
늙으면 나아지려니 하고 살았는데 늙어도 그 바람은 잘 줄 몰라 이제는 포기하고 산단다. 
그 곳에 모인 할머니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려서 들은 얘기라 바람이 무언지 확실히 몰랐으나 할아버지가 나쁜 사람인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멋진 할아버지도 달라 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들은 쉬도 때도 없이 부는 바람이다.
살짝 스쳐가는 바람도 있고 사라호 태풍처럼 모든 걸 뿌리 채 뽑아 버리는 무서운 바람도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쉬쉬 해가며 조심스레 행동하지만, 순정파나 초보자는 열정적으로 빠져 버린다. 
급기야, 조강지처를 버리고 살림까지 차린다. 
그러나 동화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단다’ 하고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여자나 남자나 다 거기서 거기다. 
찌지고 볶고 사는 인생살이도 뻔하다. 
가끔은 희망에 속아 살고 또 때로는 체념을 배워가며 살아간다.
그러노라면 세월 가고 어느 새 눈 감는 날이 온다.
바람둥이 할아버지네도 헤어지지 않고 은혼식 금혼식까지 치루고 가셨다. 
언제 낳았는지 아이도 여섯이나 낳았고 그 밑에 손자들도 주렁주렁 달렸다.
바람둥이 할아버지는 연신 싱글벙글이요 할머니는 여전히 뾰루퉁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잔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인생엔 무풍지대가 없다. 
무색무취의 시험관 증류수도 아니다. 
이런 저런 바람도 맞아 가며 칼슘 마그네슘 듬뿍 든 우물물도 마셔가며 사는 거다. 
어쩔거나. 
동박새가 동백꽃을 사랑해 주지 않으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멸종될 지도 모른다지 않는가. 
여자들은 이래저래 주님의 ‘창조사업’에 능동적인 조력자가 되어야 하나 보다. 
아이를 낳아 주거나 바람 피우는 남편 등짝을 후려쳐 가면서 체념하고 살거나.

 
(사진 : 임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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