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수필 - 혼자 노는 새
2019.12.04 12:51
제가 버리고 왔나
그들이 버리고 갔나
어스름 해질 무렵
혼자 놀던 새 한 마리
종,
종,
종
작은 걸음 걸어 와
내 가슴에 안긴다
모처럼 playa Vista에 들렸다.
Playa vista는 자연 친화적인 계획 도시다.
사람도 환경도 다정다감한 곳이라,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동네다.
동화 작가 정채봉이 좋아하던 어스름 해질 무렵, 소요학파처럼 바쁠 것 없는 걸음으로 산책을 했다.
쇼 윈도우도 기웃대고, 오가는 사람도 구경했다.
내 눈은 수평과 수직을 넘나들며 하늘도 보고 땅도 보았다.
그때였다.
가로수 꽃밭에서 놀던 작은 새 한 마리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 와 내 발끝에 와 섰다.
와서는 날 빤히 올려다 보았다.
먹이를 달라는 눈빛이기도 하고 함께 놀아 달라는 눈빛이기도 했다.
찰라에 느낀 눈빛이지만 왜 그리 측은한지 한발짝도 뗄 수 없었다.
줄 먹이가 없던 빈 손이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렇다고 걸인에게 빈 손으로 악수를 청한 시인처럼 손을 내밀 수도 없는 처지.
난 얼마간 그와 함께 있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 뿐이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재롱을 부리듯 꽃밭으로 들어 가서 놀다가 다시 내게로 와 올려다 보기를 반복했다.
이런 그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오늘의 귀한 만남이다.
이 만남을 기념하려고 사진 한 장을 남겼다.
그리고 말해 주었다.
“널 기억할게!”
혼자 노는 새.
제가 떠나 왔는지 함께 놀던 새가 떠나 갔는지, 그 연유는 알 수 없으나 난 유독 이런 아웃사이더에게 마음이 간다.
혼자가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게다.
내 아니라도 함께 놀아 줄 친구들이 있기에.
그러나 저 홀로 노는 새는 내 눈길을 잡고 마음을 앗았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가던 걸음 멈추고 오랫동안 눈맞춤 했다.
꽃잎을 쪼다가 잎을 물다가, 하늘을 올려 보다가 구름에 눈길 머물다가 그도 심심하면 종종종 고 작은 발로 걸어 와 내 발 끝에 머물러 나를 올려다 보는 새.
이렇게 홀로 산책하는 나와 저가 다를 게 뭐함.
군중 속의 고독이나 상실 속의 고독이나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일기는 서로가 마찬가지인 것을.
동병상련의 정이랄까.
그러고 보니, 언제 어디에 있던지 내 가슴에 안기는 새는 늘 혼자 노는 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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