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성수입니다

   오늘은 싱글엄마들의 성경 모임인 ‘임마누엘’ 소구역 모임이 있는 날이다. 사별을 한 사람, 이혼으로 생이별 한 사람, 외국인과 결혼해 ‘또 하나의 고독’에 절인 사람들이 모여 함께 울고 웃으며 나눔의 시간을 갖는 모임이다. 저마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기에 정도 각별해 특별히 기다려지곤 한다.  
   405 프리웨이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찬 겨울비가 시야를 뿌옇게 흐려 놓는다. 이런 날의 과속은 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15마일로 속도를 줄였다. 속도가 느려지니, 마음마저 느긋해진다. 라디오를 틀었다.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라디오 코리아에서 김종찬의 ‘당신은 울고 있네요’가 흘러나온다. 노래의 가사도 가사지만, 축축한 그의 목소리가 왠지 우수에 젖게 한다. 비오는 날의 노래는 흑인 영가나 샹송이 제 격이다. 그러나 김종찬의 목소리도 이런 날의 노래론 손색이 없다. 산그리메가 마을을 덮고 저녁연기가 실실이 피어오르다 자취를 감춰버리는 그런 목소리. 김종찬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고향집의 아랫목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는 듯 아늑해지곤 한다. 가만가만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옛날에 옛날에 내가 울듯이 당신도 울고 있네요.”    
   괜히 내 설움에 취해서인가. 아니면, 내가 아는 여인의 한 많은 삶이 떠올라서인가. 나직이 따라 부르는 내 시야에 나도 모르게 뿌연 물안개가 인다. 그 물안개를 헤집고 한 여인이 걸어 나온다.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한을 안고 살아가는 여자, ‘피코의 마마.’ 남편의 배신에 한이 맺혔으면서도, 죽기 전에 꼭 한번은 총고백성사를 하고 함께 영성체를 하고 싶다는 그녀. 가슴에 눈물을 담고 살아온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물먹은 선인장을 연상하곤 했다.
   ‘피코의 마마.’ 그녀의 이름은 따로 있었지만, 우리는 그녀를 ‘피코의 마마’라고 불렀다. 그녀는 늘 빈민자의 거리인 피코 길에 실비 식당을 차리고 싶어 했다. 쓰레기도, 짐승도, 사람도 한 통속이 되어 뒹구는 그 거리에 실비집을 차려 그들을 배불리 먹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해 아이들을 앞세우고 “마암!” 하고 들어선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거라 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녀의 꿈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뜨거운 화덕 앞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하고 있는 그녀 모습을 보면 누군들 그녀의 꿈을 믿지 않으랴.    
   그러나 이 꿈은 4.29 폭동이 앗아가 버렸다. 벌몬트와 2가 쇼핑몰에 차린 식당은 몫이 좋아 장사도 잘 됐었는데, 흑인들에 의한 폭동으로 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이 곳 가게를 정리하고 피코 길에 새 가게를 차리려고 에스크로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즈음의 일이었다. “출출하지예? 오다가다 한번 들려 주이소, 예?” 하던 그녀의 구수한 광고 목소리도 그날 이후 뚝 끊겼다. 끊긴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의기도 꺾여버렸다.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녀 얼굴만 쳐다보고 있던 그 날 저녁, 우리는 처음으로 그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나 허허 웃으며 맏언니 역할을 해왔던 우리 모임의 수장한테 그토록 큰 아픔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녀가 되기 위해 독일로 떠났었다는 것도 그날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사랑은 시작도 끝도 비극적 소설이었다. 수녀복도 마다하고 맺어진 사랑이었기에 남편과의 만남은 그만큼 뜨겁고 애틋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진했던 사랑은 채 십 년을 넘기지 못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올망졸망한 아이를 키우며 이민 초기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 가실 즈음, 뜻밖에도 남편이 어느 젊은 여인의 손을 잡고 집을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남편이 죽어 불쌍하다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여자라 아픔이 더욱 컸다.    
   그녀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혼만은 막으려고 했다.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천주교 신자여서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가정만은 꼭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을 빼앗겨 버린 남편은 이혼을 해 달라며 폭력의 강도를 높여 갔다. 기도를 바치고 시를 읊던 고상한 입에서 망언과 욕설도 앞다투어 나왔다. 그때,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된 어린 딸이 울면서 막아섰다. "I don't know. What's mean 개썅년. But she is my mom!"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그는 엄마를 때리지 말라고 울면서 가로막는 어린 딸마저 내동댕이쳐 버렸다. 그걸 본 순간, 그녀는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그녀에게 남은 건 쓰라린 배신감과 어린 두 자식뿐이었다. 찔레꽃이 갸웃거리던 어느 초여름의 일이었다.      
   아픈 세월 속에서도 꽃은 피고 꽃은 졌다. 회억하는 그녀의 희미한 눈빛 속으로 세월의 강물이 출렁였다. 시간은 정말 돌아오지 않는 강물일까.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마릴린 몬로가 아득한 눈빛을 띠고 기타를 치면서 “No return, No return......”하고 반복해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다. 마치 ’피코의 마마‘ 심정을 대변이나 해주듯, 가수는 더욱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을 / 그 누가 알았던가요......”    
   그녀가 남편을 다시 만난 건,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였다. 속 깊은 딸이 동생 졸업식에 아버지를 불러들인 것이다. 떠날 때에는 채 걷지도 못하던 아들이었기에 무대에 서 있는 아들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딸이 울먹이며 아빠에게 일러주었다. “아빠! 우리 진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 저어기 왼쪽에서 두 번 째 서 있는 녀석이 바로 아빠 아들이야.” 그때사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알아보고,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피코의 마마도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아비가 제 아들 얼굴조차 못 알아보는 게 서럽고, 새까맣던 그의 귀밑머리에 허옇게 서리가 앉은 것도 서러웠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사랑은 더더욱 서러웠다. 졸업식이 끝나자, 그는 다시 뒷모습만 남긴 채 자기의 둥지로 돌아갔다. 그 날 저녁, 딸은 엄마의 손을 잡고 애걸하다시피 말했다. “엄마! 아빠 이제 용서해줘. 엄마는 우리를 가졌지만, 아빠는 아무도 없잖아......” 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아빠로부터 내동댕이쳐졌던 그 딸은 아빠를 용서해줄 정도로 훌쩍 커 있었다. 시간은 잔인했지만, 또 한편 시간은 너그러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믿었던 남편에게 배반을 당하고 싱글 엄마가 되어 살아온 그 잔인했던 날들이 얼마나 길고 깊었던가를. 차창 밖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라디오에서는 애틋한 가사가 흘러나와 나의 상상을 끝없이 부추긴다.
    "찻잔에 어리는 추억을 보며 / 당신도 울고 있네요......”  
   가사를 음미하며, 먼 훗날 다시 만날지도 모를 그들의 재회를 한번 상상해 본다. 나의 상상은 소설을 쓰며 날개를 단다.  
- 어느 날, 길을 가다 두 사람이 마주친다. 너무나 뜻밖이라 말문마저 막힌다. 덥석 두 손 더우잡고 불리워야 할 이름들이 목젖 아래로 깔아 앉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찻집을 향했다. 남편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욱하고 슬픔을 치밀어 올린다. ‘바보 같은 양반.’ 그녀의 눈시울이 더워 온다.
   붉은 벽돌로 장식된 찻집의 벽난로는 따스했다. 장작불이 타닥타닥 피어오르고 진항 커피향이 두 사람을 감싼다. 그러나 그들은 시선을 내리깐 채 오랫동안 말이 없다. 흐르는 침묵은 세월의 강만큼이나 넓고 깊었다. 커피 잔만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아, 그때 그녀의 눈에 비친 남편의 눈물! 굳게 감은 두 눈을 비집고 주름진 골을 따라 흐르는 눈물, 눈물, 눈물. 그의 눈물은 소리 없는 말이 되어 그녀에게 건네어진다.
   ‘여보, 미안하오. 용서해주구려.’
   이십 년, 아니면 삼십 년 뒤에야 눈물로 용서를 청하는 이 한 마디. 이 한 마디가 그토록 어려워 지금도 말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가. 어느 새 그녀의 두 볼에도 뜨거운 눈물이 골을 타고 흘러내린다. 미칠 듯한 밤이면 식칼을 들고 달려가, 새벽이 희부염하게 밝아올 때까지 그의 아파트 불빛을 보며 어둠 속에 떨었던 그녀. 후딱 정신을 차려보면, 손에 든 칼은 어느 새 휘어져 있고 몸은 흥건히 땀에 젖어 있었다. 한기에 떨고, 배신감에 떨며 이슬에 함뿍 젖어 돌아오던 그 숱한 나날도 이제는 눈물 속에 녹아내린다. -
  
   깨진 사랑을 회복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이 세상에 있을까. 절규하듯 높아지는 음이 상상에 빠진 나를 깨웠다.  
   “남겨진 상처가 너무 아파서 / 당신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 나 혼자 방황했었죠......”    
   방황이라면 그녀만큼 많이 한 여인이 또 있을까. 어둑한 방을 박차고 밤이면 밤마다 산타 모니카 바다로 달려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그립다아 ......!”
   파도는 그녀의 절규를 삼켰다 뱉었다 하며 말없이 철썩였다. 검은 밤바다를 비추고 있는 은빛 달빛도 그녀에겐 한줄기 빛이 되어주지 못했다. 성당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용서할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영성체조차 못하는 그녀에겐 영성체 후 묵상 시간이 오히려 고문이었다. 모든 사람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위로를 받는 그 시간. 그녀는 가슴을 쥐어뜯는 통증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성체 후 묵상 시간에 그녀는 감격스럽게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못 오면 내가 가마.” 그녀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사방 좌우를 훑어보아도 묵상에 잠긴 교우들의 모습뿐이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똑 같은 음성이 들려오며, 가슴에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 그 순간,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여태껏 원망만 했던 주님인데, 주님은 역시 그녀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 이후, 그녀의 아픔은 딱지가 되어 떨어져 나가고 긴 방황도 끝이 났다. 하느님의 치유는 완전하셨다. 그녀에겐 그 날이 바로 부활의 날이며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앞으로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용서와 화해, 그리고 봉사의 삶으로 채워가야만 했다. 그것만이 무상으로 받은 주님 은총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녀가 굳이 빈민가인 피코 길에다 실비집을 차리고 싶어 한 이유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봉사의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꿈은 하나뿐이다.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주 대전에’ 나가 옛 남편과 함께 영성체를 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용서와 회개의 완성이라는 생각에서다. 진주조개가 진주를 품어 오듯이 그녀는 이 소망을 오랫동안 품어 오고 있다. ‘피코의 마마’가 되고 싶다던 첫 번째 꿈은 4.29 폭동으로 물거품이 되었지만, 두 번째 꿈은 꼭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것 역시 시간과 주님의 은총 속에 맡길 수밖에 없으리라.
   나의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도 깨진 사랑의 회복이다. 우리가 지상에서 올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그것뿐이란 생각이 든다. 비단 부부의 사랑뿐이랴. 자식과의 관계도 그렇고, 사소한 오해로 헤어진 사람들, 긴 세월 '웬수‘ 목록에 올라 도저히 용서 못 할 것 같은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더 늦기 전에 손을 내밀어 지난날을 용서 받고 화해하는 복된 시간이 왔으면 싶다.  
  “옛날에 옛날에 내가 울듯이 / 당신도 울고 있네요.”
   창밖엔 비가 오고 내 마음엔 더운 눈물이 흐른다. 안개 속과도 같이 뿌연 405 프리웨이 빗속을 달리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눈물은 성수’라고 말한 섹스피어의 말도 이제사 알 것만 같다. 정녕 미움으로 흘리는 눈물은 없다. 오늘 우리 모임을 위해 국을 끓이고 있을 ‘피코의 마마’를 보면 와락 끌어안고 울 것만 같다.
<후기>      
    이 글은 1998년에 최초로 쓴 작품으로 2000년 대희년 때 발표한 뒤 묵혀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다시 꺼내서 읽어 보게 되었다. 우연히 피코의 마마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너무나 기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 속에 내가 상상의 날개를 달고 두 사람이 만나 화해하는 장면을 넣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걸로 설정한 내 상상과는 달리, 전 남편이 집으로 찾아와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35년만의 일이었다. 눈물로 용서를 청하는 그에게 피코의 마마는 이렇게 말했단다. 이제 와서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마음의 짐을 훌훌 벗고 떠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화해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도 눈물이 괴어왔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혹시 용서 못하신 분 있으면 먼저 손 내밀어 화해를 청했으면 좋겠다. 깨진 사랑을 회복하는 일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이 지상에는 없지 싶다. 전화를 끊기 전에 피코의 마마는 이렇게 말했다. "요안나! 이제 나는 마음의 부자야! 억만금을 줘도 안 바꾸는 마음의 부자!”  그녀의 들뜬 음성이 내 마음을 따스하게 지펴왔다





새벽 전람회                                                                          
   새소리에 잠을 깼다. 창으로 들어오는 여명의 빛살을 바라보며 침대에 나를 그대로 버려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많이 먹는다고 한들 나와는 잠시 먼 얘기가 된다. 적어도 이 해 뜰 무렵의 한 시간, 새벽 여섯 시부터 일곱 시 까지는 나만의 시간이다. 늘 바쁘게 사는 자신을 붙들어 이렇게 게으름 속에 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육체의 게으름을 마음껏 피우는 이 시간이 오히려 내겐 창작의 시간이 된다. 시인이 되고 철학가가 되어보는 것도 오직 이 시간이다.
   게으름을 피우는 내 눈에 남쪽으로 난 큰 창이 들어온다. 사방 막힌 벽에 창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주검같이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어도 창이 있음에 내 방은 무덤이 되지 않고 집이 되어준다. 집과 무덤의 차이는 창의 유무라던가. 창은 외부와의 차단을 막아주는 열림의 상징이다. 창이 있음으로서 내 마음은 열리고 사고는 확장된다. 그리고 관계가 성립된다. 창은 바깥세상을 보여주고 나는 내 마음의 내밀한 정원을 보여준다. 생물과 생물과의 관계도 아름답지만, 생물과 무생물의 교감도 그 못지않게 아름답다.
   창을 본다는 것은 결국 창밖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눈과 가슴으로 읽는 묵독이다. 조근조근, 나긋나긋 자연이 전해주는 말은 언제나 나직하다. 그러나 긴 여운이 있다. 창이 보여주는 세상은 지루한 산문이 아니라, 암시와 은유로 보여주는 경쾌한 시요, 음악이다. 아니,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풍경화라고나 할까. 나는 내 창을 통해 비발디를 듣고, 모네를 본다. 때로는 빛의 작가 램브란트를 통해 로고스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여미기도 한다. 나는 이 시와 음악이 흐르는 풍경화를 일러 ‘새벽 전람회’라 이름 지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오직 나만을 위해 열어주는 새벽 전람회. 이 전람회는 오직 나만을 위한 유일성도 유일성이지만, 그 표정과 모습이 매양 다르기에 더욱 흥미롭다.  
   마침, 오늘은 토요일 하고도 특별한 부활전야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드리는 자정미사는 경건하고 장엄하다. 사순시기를 지나고 슬픔과 고통의 강을 건너 드디어 맞게 된 부활전야. 서로에게 촛불을 붙여주며 함께 어두움을 밝혀가는 빛의 예식이 있는 날이다. 빛의 예식이 끝나면, 우리는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하고 환호하며 서로를 끌어안고 부활의 기쁨을 나누게 된다. 사람들은 이미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밤 자정미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 특별한 날, 나의 창은 어떤 그림을 내어걸며 오늘의 메시지를 전해올까. 사뭇 기대가 된다.  
   아침 햇살이 서서히 부챗살로 퍼져오자, 새벽하늘도 가슴을 열어 즐거이 아침 태양의 배경이 되어준다. 가슴을 연다는 것은 상대방의 배경이 되어준다는 것, 그 아름다운 의미를 읽는다. 연회색 새벽하늘에 붉은 기운이 더해지니, 옅은 무채색으로 걸려있던 담채화 한 폭도 밝은 채색화로 바뀌어 간다. 그제서야 어둠 속에 지워졌던 형체와 색깔들이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4x6피트의 커다란 화폭에 비해서 구성이나 소재는 매우 단순하다. 네모난 창틀 왼쪽 귀퉁이에 반쯤 몸을 드러내고 있는 팜츄리와 시골 학교 종처럼 처마 밑에서 달랑거리고 있는 구리 풍경, 그 뒤에 너울대는 버드나무와 키 큰  잡목 한 그루. 그리고 풍경화의 단골손님인 구름 몇 점과 이 모든 소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연푸른 하늘. 단순한 소재에 구성 또한 늘 고정되어 있어 어찌 보면 매우 단조롭고 지루할 것 같은 풍경화다. 하지만, 이 단조로운 풍경화가 날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바람의 장난 때문이다. 거기에 새벽 새들의 군무가 곁들여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떻게 보면, 우리네 인생도 ‘생로병사’라는 간단한 문패 하나 달고 있을 뿐이다. 길게 풀어 써봤자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었다’라는 단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생’과 ‘노’라는 단 두 음절 사이에 끼어든 ‘사랑’이나 ‘운명’이란 단어 때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장편 소설을 쓰고 간다. 뿐인가. 책 열권을 써도 모자란다며 아예 말문을 닫고 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병’과 ‘사’ 사이에 끼어있는 긴 고통은 차라리 말없음표로 남겨두자. 하지만, 조약돌 없이 어찌 시냇물의 노래가 있겠는가. 마지막 불러야할 한 소절의 노래를 위하여, 우리는 조약돌에 미끄러져  무릎이 깨지더라도 나아가야만 한다. 걸림돌로만 생각되던 조약돌도 때로는 노래가 되는 것을 살면서 배워간다.      
   오늘 따라 멋진 풍경화를 보여주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하던 새들이 더욱 바빠졌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다시 왼쪽으로 사방팔방 무늬를 그리는 새떼들의 군무는 단조로운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꾸며준다. 저들의 전언은 무엇일까. 새벽 새떼들의 몸짓을 보며 그들의 암호를 풀어본다. 저 넓은 창공을 날고도 상처 하나 내지 않는 ‘무흔적’. 순간, 이 세상에 점 하나라도 남기고 싶어 안달하던 내 욕심에 실소했다. 그러면서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던 그 위선이라니. 그토록 부산하던 새들의 날갯짓은 이런 나를 깨우치기 위한 작은 몸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래펄에 자꾸만 제 발자국을 새기지만, 파도는 몇 번이고 되돌아와 발자국을 지워준다. 겨울 눈발도 마찬가지다. 삐뚤삐뚤한 우리의 발자국을 말없이 지워준다. 어찌 보면, 자연은 걸레를 들고 따라다니는 어머니 같다.
   때마침, 한 줄기 바람이 풍경을 깨워 놓고 팜트리 잎 사이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풍경이 놀라 땡그랑거리자, 제 구도를 그리며 조용히 서 있던 팜트리도 후두둑 잎을 턴다. 아, 그때였다. 갈가리 찢기운 잎새 끝에서 수 천 수  만 조각의 햇살이 금빛 가루를 뿌리며 쏟아져 내렸다. 와아, 저 눈부신 빛의 난무. 찢겨서 더욱 아름다운 ‘성의’를 펄럭이며 잎새도 목청 높여 부활을 노래하고 있다. 바람과 햇살과 팜트리의 잎새가 탄주하는 저 아름다운 빛의 삼중주. 숨이 멎도록 아름다웠다. 아니, 눈물겨웠다.
   십 수 년 간 싱글엄마로 살아온 내 삶과 허전한 시장바구니 같던 그의 삶이 닮아 보인 탓일까. 팜트리에 대한 내 마음은 장미보다 늘 각별했다. 꽃도 열매도 자랑할 게 없던 나무. 게다가, 힘없이 축축 늘어지고 뾰족하기만 해 새마저 외면하던 나무가 아니던가. 외로움이 얼마나 컸으면 하늘로 하늘로만 그 키를 높혀 갔을까. 버릴 것 다 버리고 잊을 것 다 잊으며 소소한 생각 몇 이고 살아가던 팜트리. 갈가리 찢겨져 힘없이 늘어져 있는 팜트리 잎새를 보면, ‘너도 아픔이 참 많았었구나’ 싶어 짠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저토록 아름다운 빛의 축제를 벌여 날 들뜨게 하는가. 그 가녀린 몸체에 얼마만한 소망이 숨어있었기에 저토록 많은 빛을 토해내나. 저도 오늘만은 부활의 기쁨을 소리쳐 노래하고 싶었나 보다. 아니, 상한 갈대는 꺾지 않으신다던 신의 선물이었을까. 아픔도 슬픔도 모두 버리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신도 애달팠을 테지. 울고 싶은 우리네 삶도, 때로는 바람 불어 금빛 햇살 쏟아지는 날도 있겠거니. 금빛가루를 뿌리며 너울너울 춤추는 팜트리가 오늘따라 눈부시게 아름답다.
   어느새 밝아온 아침, 나만을 위한 ‘새벽 전람회’도 문을 닫아야할 시간이다. 팜트리 위에서 부서지던 금빛 햇살이  새벽 풍경화에 부제를 달고 있다.  
    ‘지나온 삶은 모두가 은총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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