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종강일

2016.06.03 09:03

서경 조회 수:167

   531. 화요일,  

  오월의 마지막 날, 드디어 4개월의 대장정을 끝내는 IHSSHHS 한국어 클라스 종강일이다. IHSSHHS 클래스는 LA City College에서 진행하는 시니어 홈 케어 전문 커리어 교육이다. 헬렌 장 교수가 한국어로 진행하는 이 클라스는 정원 30명을 넘어 매번 대기명단까지 줄을 서 있는 인기 수업이다

      나날이 뛰는 의료 경비도 줄이고 직업 창출도 도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어 정부에서도 적극 권장하는 수업이다.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는 수업료도 무료고, 끝나면 CPR 자격증과 함께 두 가지 자격증을 더 준다. 같은 일을 해도 밸류가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다. 영어로 된 두툼한 교재를 이론과 실기를 겸비해서 입심 좋게 한국어로 풀어주니 모두 재미있어 한다. 여섯 시간의 수업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수업 분위기도 좋아, 한가족이 된 기분이다. 

     어떤 사람은 커피와 빵을 가져오고, 어떤 사람은 단체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교수님 점심 식사도 원하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준비해 온다. 모두 사랑으로 즐겁게 하는 일들이다

     사실, 직업적으로 간병인 일만 하려면 카운티에서 진행하는 3시간짜리 교육만 받으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하는 것은,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해 드리고 싶은 사랑과 배우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살아 있다는 증거다. 생기 넘치는 모습들이 어쩌면 그리도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나 역시, 이번 봄 학기는 English Writing 클라스에 컴퓨터 클라스까지 합해 9학점이나 신청했기에 시간이 좀 빠듯했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받고 싶었던 수업이라, 약간 무리를 해서 신청을 했었다.

     수업에 참석한 사람들 동기도 가지가지다. 아픈 가족을 돌보기 위해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홈 케어 일을 해볼까 하는 사람도 있고, 의료 지식을 좀더 익히고자 온 사람도 있다. 몇 몇 사람은 의료 선교 봉사에 뜻을 둔 사람도 있다. 한때, 엄마 병실을 지킨 경험이 있는 나는, 배워두면 은퇴한 이후에 유익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온 경우다

      연령도 다양하다. 나를 왕언니로 부르는 걸로 봐서 4,50 대들도 제법 있는 모양이다. 남자는 딱 세 명. 스무 일곱 명의 여자들 속에서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다. 특히, 캡틴 홍은 로봇의 현신같이 앉아 눈만 껌뻑이고 있어 처음엔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알고 보니, 상당히 수줍음이 많은 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꾸라지 속에 넣어둔 가물치 세 마리 모양, 농담을 해도 남자들이 듣고 있다 싶으면 더 재미있고 신이 났다. 슬슬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들도 수업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종강 수업을 앞두고, 몇 주 전부터 의견도 분분하고 아이디어들도 다양해 들썩들썩 했다. 결국, 캐더링으로 음식을 주문해서 '합동 만찬'을 하고, 로젠 노래방으로 가서 숨겨둔 끼를 발산함으로써 아쉬움을 털어내기로 했다

      오늘 마지막 수업은 영상 수업이었다. 'Grandpa, do you know Who I am?' 이란 제목의 영화로 치매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들의 이야기였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와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인다

      치매로 시어머니를 잃은 나 역시, 슬픔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엄마! 딸이 왔는데도 몰라?" 하면서 울던 두 시누이의 울먹이던 소리도 귀에 되살아났다. 꿈에 그리던 두 딸이 한국에서 달려왔는데도 눈만 껌뻑이며 "뉘시우?" 하고 묻던 시어머님.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없지 싶다. 

     치매는 병중에서도 가장 슬픈 병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병이라니!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형벌이다. 정말, 다른 병은 몰라도 치매만은 걸리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매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는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 장면 중에서도 손녀 손자들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울먹이는 모습이 가장 슬펐다. 손녀를 둔 나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치매에 걸린 환자도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정도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늘 늦게사 이럴 걸 저럴 걸 하며 후회하게 된다. 나도 시어머님이랑 많은 시간을 못 보내드린 게 후회스럽다. 하필이면, 교수님은 왜 마지막 수업 소재로 치매 영상을 선택하셨을까. ,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강조하려 그 영상을 선택한 건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운이 있는 마지막 수업인 것만은 확실했다. 

     수업을 받으면서 느꼈던 점을 나누자며 헬렌 장 교수님이 우리를 둘러보셨다. 느낌도 할 말도 있는 듯하나 누가 선 듯 나서지는 않는다. 몇몇 사람이 나를 쳐다본다. 이대로 끝나나 싶은 시간에 내가 일어섰다. 일전에 우리 IHSS 17기 동기생들을 위해 적어 두었던 8행시를 읊어주는 것으로 느낌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IHSS 17. 8행시는 우리 동기들에 대한 내 사랑의 헌시다. 먼저 운을 떼라고 했다. 호기심에 찬 눈망울로 입을 모아 운을 뗀다. 나도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지으며 감정을 실어 8행시를 읊어 주었다.

   

    I. In할 때가 있으면 out할 때도 있나니

   H. Home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섰어라

   S. S로 시작하는 '서포티브'도 모른 채

   S. Service 한답시고 공부 길에 들어섰네

  . 제 자리 동동대며 고달팠던 이민 삶

  . 십 대의 열망으로 눈 초롱초롱 빛나니

  . 칠십 대도 28 청춘이라 그 누가 웃으리

  . 기실, 열공하다 보면 신천지도 열리리 

    

    영한 혼용 행시를 지어본 것도 난생 처음이다. - 하는 감탄사와 함께 리액션을 보내 주는 친구들. 졸시임에도 만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리액션을 해주는 친구들이 한없이 정겹다

     치매 영상으로 잠시 숙연해졌던 분위기는 풍성한 음식 앞에서 반전되었다. 다시 웃음을 찾고 삼삼오오 짝이 되어 즐거운 식사를 했다. 못 볼 걸 생각하니 벌써 서운해진단다. 왜 아니겠는가. 정든 사람들을 못 보게 되니- 유월 말에 있을 17기 동기 모임도 너무 멀다며 2주 뒤에 '벙개 미팅'을 하잔다

     전직은 못 속인다고 국어 선생답게 점잖게 '번개미팅'이라고 바로 잡아주었다. 그런데 어렵쇼? 요즘 젊은 애들은 '벙개 미팅'이라 한다나? 완전 한 방 맞았다. 바로 요 직전에, 왕 되는 것도 싫다며 앞으로는 '왕언니'에서 ''자는 빼달라고 농을 했는데 이 무슨 망신이람. 세대차를 인정하고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역시 나는 '왕언니'가 맞다

     노래방에 오니 가수는 또 왜 그리 많은지. 어지간한 사람은 명함 내기도 어려웠다. 아니, 우리 17기 동기들은 역대 최고의 열공파로 공부 잘 하지, 성격 좋지, 음식 잘 하지, 한 인물들 하지, 게다가 노래까지 잘 하지 '말입니다.' 나는 묻고 싶다. "얘들아, 네 엄마가 누구니?"

   하 하 호 호. 정말 즐거운 종강일이었다. 벌써 한 달에 한 번 있을 동기 모임이 기다려진다.

   "교수님과 임원들, 그리고 백 한나와 샌디를 위시한 숨은 봉사자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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