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선생님께
2009.05.06 14:49
잊지 못할 선생님께
이홍연 선생님!
지금 시계는 새벽 네 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별들은 마지막까지 제 소임을 다하려는 듯 눈을 깜빡이고,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인지 뚜-하고 뱃고동 같은 기적을 뿌리곤 사라져가네요.
선생님께서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45년 전 단발머리 어린 소녀가 이런 편지를 올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셨겠지요. 그것도 하고 많은 학교 선생님을 다 두고 하필이면 주일 학교 ‘반사 선생님께’ 말입니다.
이홍연 선생님!
‘잊지 못할 선생님께’ 라는 편지를 쓰기 위해 제 인생을 거쳐 간 수많은 선생님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잊지 못할 선생님이 어디 한 두 분이며, 제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이 어디 한 두 분이겠습니까. 선생이란 ‘영혼의 정원사’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도 모두 저를 키워주신 훌륭한 선생님들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영혼의 정원사’를 과일에 비유하면 생명을 키우는 ‘씨’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과일, 과즙 다 빼앗긴 뒤에 마른 씨로 남아 있어도, 언젠가는 거쳐 간 아이들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나 큰 열매를 맺게 하는 ‘사랑의 씨’ 말이에요.
사랑의 씨 중에서도 가장 큰 씨앗으로 심 박혀있는 이홍연 선생님!
선생님은 이승을 살다 가시면서 저를 두 번 울리고 가셨군요. 한 번은 제 초등학교 4학년 때였고, 또 한 번은 얼마 전 일이었어요. 선생님과 동기동창이었다는 사람을 통해 선생님이 S대 음대에 재직하셨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죠. 실로 45년만의 소식이라 어찌나 반가운지 즉시 서울로 전화를 걸었지요. 그런데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직원이 선생님의 부음을 전해주는 거 아니겠어요? 2년 전에 돌아가셨다구요.왈칵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겨우 육십 남짓한 선생님께서 그다지도 빨리 떠나시다니. 가족 연락처라도 알고 싶었으나 그마저 찾을 수가 없다더군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날 밤, 눈물 젖은 눈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웠죠.
보고 싶은 선생님!
기억나시는지요? 선생님과 초등학교 4학년짜리 꼬마 소녀 네 명이 부둥켜안고 울었던 어느 수요일 밤을요. 저는 그 수요일 여름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에요.
언제나 우리를 함박웃음으로 맞아주시던 선생님께서 그 날 저녁예배에 나오지 않아 어리둥절했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우리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님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때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이제 더 이상 선생님께서는 교회에 나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동안에도 불교를 믿는 아버지로부터 교회 간다고 맞기까지 했다더군요. '세상에! 맞으면서도 교회에 나왔었구나.' 싶어 선생님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어요. 우리는 선생님 댁을 물어물어 찾아갔었죠. 그리고 목이 터져라 선생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지요.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고 밤만 깊어가자, 우리 목소리는 울음으로 바뀌어갔답니다. 참다못해 아버님께서 나오셔서 가라며 호통을 치셨지만, 우리는 선생님을 교회에 보내달라며 더 크게 울면서 팔에 매달렸지요. 드디어, 아버님이 안으로 들어가시고, 눈이 퉁퉁 부은 선생님이 나오시자 우리는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바다를 이루고 말았지요. 덕분에 선생님은 더 이상 아버님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계속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구요. 그때 선생님은 겨우 십 칠 팔세로 푸른 반팔 교복을 입고 다니던 고등학생이었는데 어쩌면 그리도 신앙이 깊으셨는지. 마치 박해받던 순교자 같았어요.
아, 그런데 선생님! 저는 그 일이 있고 채 6개월도 못 되어 전학을 가게 되었지요. 선생님께서 저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는 한시도 선생님을 잊어본 적이 없답니다. 이젠 고전적 이야기가 되어버린 사제와의 정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늘 그 수요일 여름밤을 떠올리곤 한답니다.
이홍연 선생님!
이제는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친구들도 어디선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거예요. 매를 맞으면서까지 신앙을 지키며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던 선생님, 언제나 맛깔난 이야기 솜씨로 우리 눈을 반짝반짝하게 해 주셨던 선생님. 오늘도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에서 기도하고 계시겠죠? 저도 선생님의 영복을 위해서 기도할께요.
다시 만나 뵈올 때까지 부디 강건하세요.
이홍연 선생님!
지금 시계는 새벽 네 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별들은 마지막까지 제 소임을 다하려는 듯 눈을 깜빡이고,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인지 뚜-하고 뱃고동 같은 기적을 뿌리곤 사라져가네요.
선생님께서는 기억조차 하지 못할 45년 전 단발머리 어린 소녀가 이런 편지를 올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셨겠지요. 그것도 하고 많은 학교 선생님을 다 두고 하필이면 주일 학교 ‘반사 선생님께’ 말입니다.
이홍연 선생님!
‘잊지 못할 선생님께’ 라는 편지를 쓰기 위해 제 인생을 거쳐 간 수많은 선생님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잊지 못할 선생님이 어디 한 두 분이며, 제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이 어디 한 두 분이겠습니까. 선생이란 ‘영혼의 정원사’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도 모두 저를 키워주신 훌륭한 선생님들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영혼의 정원사’를 과일에 비유하면 생명을 키우는 ‘씨’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과일, 과즙 다 빼앗긴 뒤에 마른 씨로 남아 있어도, 언젠가는 거쳐 간 아이들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나 큰 열매를 맺게 하는 ‘사랑의 씨’ 말이에요.
사랑의 씨 중에서도 가장 큰 씨앗으로 심 박혀있는 이홍연 선생님!
선생님은 이승을 살다 가시면서 저를 두 번 울리고 가셨군요. 한 번은 제 초등학교 4학년 때였고, 또 한 번은 얼마 전 일이었어요. 선생님과 동기동창이었다는 사람을 통해 선생님이 S대 음대에 재직하셨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죠. 실로 45년만의 소식이라 어찌나 반가운지 즉시 서울로 전화를 걸었지요. 그런데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직원이 선생님의 부음을 전해주는 거 아니겠어요? 2년 전에 돌아가셨다구요.왈칵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겨우 육십 남짓한 선생님께서 그다지도 빨리 떠나시다니. 가족 연락처라도 알고 싶었으나 그마저 찾을 수가 없다더군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날 밤, 눈물 젖은 눈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웠죠.
보고 싶은 선생님!
기억나시는지요? 선생님과 초등학교 4학년짜리 꼬마 소녀 네 명이 부둥켜안고 울었던 어느 수요일 밤을요. 저는 그 수요일 여름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에요.
언제나 우리를 함박웃음으로 맞아주시던 선생님께서 그 날 저녁예배에 나오지 않아 어리둥절했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우리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님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때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이제 더 이상 선생님께서는 교회에 나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동안에도 불교를 믿는 아버지로부터 교회 간다고 맞기까지 했다더군요. '세상에! 맞으면서도 교회에 나왔었구나.' 싶어 선생님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어요. 우리는 선생님 댁을 물어물어 찾아갔었죠. 그리고 목이 터져라 선생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지요.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고 밤만 깊어가자, 우리 목소리는 울음으로 바뀌어갔답니다. 참다못해 아버님께서 나오셔서 가라며 호통을 치셨지만, 우리는 선생님을 교회에 보내달라며 더 크게 울면서 팔에 매달렸지요. 드디어, 아버님이 안으로 들어가시고, 눈이 퉁퉁 부은 선생님이 나오시자 우리는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바다를 이루고 말았지요. 덕분에 선생님은 더 이상 아버님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계속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구요. 그때 선생님은 겨우 십 칠 팔세로 푸른 반팔 교복을 입고 다니던 고등학생이었는데 어쩌면 그리도 신앙이 깊으셨는지. 마치 박해받던 순교자 같았어요.
아, 그런데 선생님! 저는 그 일이 있고 채 6개월도 못 되어 전학을 가게 되었지요. 선생님께서 저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는 한시도 선생님을 잊어본 적이 없답니다. 이젠 고전적 이야기가 되어버린 사제와의 정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늘 그 수요일 여름밤을 떠올리곤 한답니다.
이홍연 선생님!
이제는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친구들도 어디선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거예요. 매를 맞으면서까지 신앙을 지키며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던 선생님, 언제나 맛깔난 이야기 솜씨로 우리 눈을 반짝반짝하게 해 주셨던 선생님. 오늘도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에서 기도하고 계시겠죠? 저도 선생님의 영복을 위해서 기도할께요.
다시 만나 뵈올 때까지 부디 강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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