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기도하는 선인장
2019.05.16 03:09
샌 자비에르 성당을 찾아가는 길가에 하얀 십자가로 모여 있는 묘지를 보았다.
신자들의 공동 묘지인지 마을 사람들의 묘지인지 알 수 없으나 가슴이 뭉클했다.
누구의 아들이나 딸로 태어나서 사랑하고 가끔은 이별의 아픔도 겪으며 살아갔을 사람들.
“수고했다, 수고했다!”
모두 주님의 어여쁨 받으며 품에 안겼으리라.
죽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는 누구나 살기 위해서 바둥대었을 삶이기에 주님께서는 그 노고를 분명히 알아주시리라 믿는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 사이에 연옥도 있다지만, 이 땅에 단 한 방울의 눈물이라도 흘리며 산 사람들이라면 모두 천국 마을로 인도해 주고 싶다.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일생 행복하기만 했던 사람이 과연 몇 있을까.
돈이거나 건강이거나 모두 저마다 눈물 젖은 빵 한 조각은 먹었으리라.
우리는 모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었다.
“모두 내게로 오라!”며 두 팔 벌리는 주님 품에 뛰어들 수 없는 자는 이 땅에 한 명도 없다.
크거나 작거나 죄 짓지 않고 고매한 성인으로만 살다 간 사람도 없지 싶다.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고...
말과 행위로 지은 모든 죄들을 용서해 달라고 주일 미사 때마다 신앙고백을 하며 빌고 있지 않는가.
주님도 의인을 위해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왔다고 공표하셨다.
고독하기 때문에 인간의 사랑이 필요하듯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님의 긍휼 또한 필요하다.
키리에 엘 레이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랑의 주님, 자비의 주님!
살아 갈 때도 늘 사랑으로 돌보아 주신 만큼 불쌍히 여겨 우리 모두 죽음의 복도 누리게 해 주소서.’
고인들의 명복을 마음으로 빌며 성호를 그었다.
아리조나를 굳건히 지키는 선인장답게 장대한 두 선인장도 두 팔 벌려 기도하고 섰다.
하루 스물 네 시간, 잠시도 쉬지 않고 양팔 기도를 하며 서 있는 두 선인장이 기특하고 대단하다.
점점 멀어지며 점으로 남던 묘지의 하얀 십자가와 두 선인장이 심상으로 남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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