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행복 바이러스

2018.07.23 11:21

서경 조회 수:19

행복 바이러스 1.jpg

행복 바이러스 2.jpg




행복이란 이상한 요물이다.
남의 행복한 모습만 봐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이름하여, 행복 바이러스. 
‘바이러스’란 말이 ‘행복’이란 예쁜 말 뒤에 붙는 게 영 좋지 않았는데, 그것도 몇 번 들으니 나쁘지 않다. 
알게 모르게, 자유 의지없이 전염되는 게 바이러스 속성인가 보다. 
이런 기분 좋은 바이러스라면 백신 주사를 맞을 필요가 전혀 없으리라.
가게에 매번 혼자 오던 여자 손님이 훤칠한 남자 한 명을 데리고 들어 섰다. 
한 눈에 봐도 둘이 무척 행복해 보이는 짝이다. 
둘 다, 6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데 틴에이저 커플처럼 마주 보며 싱글벙글이다.
‘제법 오래 산 부부 같은데 아직도 허니문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곧 결혼할 약혼자란다. 
여자 손님은 평소 알고 있던 터라, 덕담 한 마디 던졌다. 
“하이구, 잘 만났네? 축하한다. 어디서 이렇게 훤칠한 미남을 만났냐?”
여자 이름은 사랑스런 ‘Love’다. 
남자 이름은 안토니라 한다.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 했던가. 
새침한 러브보다, 사교성 많게 보이는 안토니가 신나서 자기들 러브 스토리를 풀어 놓는다. 
난 눈을 반짝이며 그들의 러브 스토리를 흥미롭게 들어 주었다. 
자기들이 처음 만난 건 7학년 중학생 때라고. 
하이스쿨 프롬  파티까지 파트너로 갔으나 다른 도시로 옮기고 대학교도 달라지면서 소식이 끊어졌단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각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잊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작년, 처음으로 하이스쿨 동창회에 참석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단다. 
4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이 변했지만, 미소가 아름다운 러브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단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뜻밖에도 한 사람은 사별한 처지고 또 한 사람은 오래 전에 이혼을 하고 싱글 아빠로 살아오고 있었다고.
그 때문에 동창들하고도 소식 끊고 살다가 안토니가 LA로 다시 이사를 오면서 고교 동창회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첫사랑 러브를 다시 만날려고 이사를 오게 된 모양이라며 안토니는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면서 “you know?” 하더니 사진 한 장을 자기 지갑에서 빼 내어 보여 주었다.
7학년 때 학교 행사를 끝내고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해 준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키 작은 안토니가 있어 우리도 러브가 꼭 누나 같다며 웃었다. 
그때는 러브보다 작았는데 지금은 자기가 훨씬 더 크다고. 
사실, 안토니는 함께 사진 찍은 기억도 없었는데 러브가 긴 세월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가 다시 만났을 때 기억하느냐며 보여주었다고 한다. 
여자는 작은 것도 기억하고 추억으로 간직하는 반면, 남자들은 그때 그 순간 뿐 쉬이 잊어버리나 보다. 
안토니는 사진을 보자 너무도 감동하여 그 사진을 달라고 애걸복걸하여 겨우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자기 지갑에 넣어두고 하루에도 수십 번 보고 또 보고 한다며 파안대소했다.
러브는 사랑 얘기를 신나서 풀어놓는 안토니의 넉살에 계속 행복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곧 팜스프링에서 근사한 결혼식을 올릴 거라는 그들. 
행복이 꿀처럼 흐른다. 
예복도 옛날 프롬 파티에서 입었던 것처럼 아이보리 색깔로 같이 맞출 거라고 한다. 
정말 내 일 같이 기쁘고 흥미로웠다.
돌아서 돌아서 45년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
만날 사람은 이렇게 해서라도 기어이 만나나 보다. 
너희들 얘기 글로 좀 쓰야겠다며 포즈를 취하라 했더니, 아예 뽀뽀 포즈로 나간다.

하하.

좋긴 좋은 모양이다.

애정 표현은 러브가 훨씬 적극적이다.

먼 길 돌아 다시 만난 사람들. 
부디 남은 인생, 따따불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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