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9 (토) 맑고 바람 쌀쌀

2013.02.19 13:03

지희선 조회 수:315 추천:47

오늘은 둘째 주 토요일.  '영우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영우회'는 영원한 벗이란 뜻으로 성당에서 비슷한 연령배끼리 만든 남자들의 정클럽이다.

우리 여자들은 그냥 따라가는 셈이다.

주로 술자리를 벌이기 때문에 나는 정말 가기 싫은 모임이다.

더더구나 여자들의 입심이란!  마치 자기들이 정회원인 양 주장이  거세다.

신앙인으로서도 그렇고, 정클럽으로서도 그렇고 마음의 온기를  느낄 수가 없다.

게다가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도 없다. 화제도 어쩜 그리들 빈곤한지.

언젠가  멕시코 쿠루즈 여행을 갔을 때도 남자들은 술판, 여자들은 밤 한 시까지 카지노판이었다.

선장이 초청하는 파티에도 성장을 하고 나온 여자들은 딱 두 사람밖에 없었다.

옷 차려 입고 나간 우리가 더 부끄러웠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면, 평소에 모임에 잘 나오지 않던  L부인이 왔었는데

같은 고향 사람에다 성격도 솔직담백하여 서로 좋은 친구가 된 사실이다.

나는 낮에는 선상에서 풍경 구경하고, 사람 구경하고,  탁구 한 게임 하고, 방에 들어와서 책이나 읽었다.

정말 너나없이 참 즐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이 탓인가? 그래도 재미없는 건 확실하다.

집에서도 재미없고 밖에 나가서도 재미없고. 자연히 크게 웃을 일도 없다. 나 같이 잘 웃는 여자가.

내가 나가는 문학모임이나, 오페라 감상 클럽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모임도 영양가가 있거나 의미가 있어야 나가고 싶지, 그냥 재미로 나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개스값(현재;1갤런에 $4.75, 하루 나갔다 오는데 약 $50 정도 소요)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다.

재미도 내적인 기쁨이 있어야 진정한 기쁨이 아니겠는가.

"이 나이에 배우기는 뭘 배워?" 하고 버럭 소리라도 지르면, 나이 많은 사람하고 결혼한  내 신세가 가련해지기까지 한다.

지금 내 앞에서 나이 운운할 처지인가 말이다. 아픈 데 찌르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으면 늙은 티는 안 내야 될 것 아닌가.

보다 못해, 교육학 박사이신 송박사님이 회의실을 예약해 놓고 여행 마지막날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다.

어디를 가나, '남학생' 따로 '여학생' 따로 노니 보기가 딱했던 모양이다.

주제는 '다시 태어나도 나는 나의 배우자와 결혼할 것인가?'였다.

다소 웃기는 주제지만, 그런 거라도 얘기해 보자고 처음으로 한 방에 다 모였다.

남자들은 대부분 '한다'로 모아지고, 여자들은 대부분 '안 한다'로 모아졌다.

물론 나도 '안 한다'였다. 나는 정말 술 마시는 사람은 질색이다. 한 두 잔 멋

있게 마신다면 누가 말 하리.

그야말로 '풍류'를 즐기라는 말씀.

그러나 술 조절이 그리도 어려운가 보다. 벌써 회원 두 명이 암으로 죽었다.

뜨끔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술 하고는 상관 없다나. 얼마전에 기사까지 났더구

만. 상관 있다고.

막간을 이용하여 남자들은 '불법 상륙'하여 싱싱한 횟감을 구해왔다. 한 편의

영화요 드라마였다.그때는 늙은 남편들이 아니라, 모두 유쾌한 악동으로 보여

우리도 웃고 말았다. 쿠루즈 여행에서의 유일한 추억거리라고나 할까.  



오늘 모임도 여느때나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여자들과 등 돌린 채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눈다.

자기들은 즐거운 모양이다. 벌써 10년 째다. 그나마 식당에서 모이면 술도 덜 마시고 일찍 끝나서 좋다.

여자들은 오늘 일곱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별 재미도 의미도 없으니 빠질 수밖에.

나도 LA에서 일만 하지 않았던들 모임에 가지 않았을 터이다. 여전히 영양가 없는 이야기 주거니받거니.

갑자기,  같은 반모임 회원인 A여사가 반장인 나를 매도하는 말을 한

다. 잘못 듣고와서는 수녀님까지 들먹이며 자기말을 합리화한다.

반모임은 원칙적으로 반장집에서 모여야 하지만, 우리 집이 멀어서 처음부터 자

기집을 제공해 주기로 하고 내가 떠 맡았는데 무슨 소리?

반장 회의 참석도 한 두 번 갔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고 끝나고 나면 너무 늦

은 시간이라 친구집에서 자고 와야 한다.

이건 무리다. 이번 1월 모임에서 아무래도 반장을 못할 것 같다고 했더니 반장

모임은 제가 가겠노라고 소피아 자매님이 도와주신다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그

런데 이제 와서 반장이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그것도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

들 앞에서.

나는 이메일과 전화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우리 모임을 차질없이 진행해 오지

않았나.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역대적으로 사정이 있으면 반장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도 모여 오고 있

지 않았나. 자기집을 오픈한다고 유세를 떠나.

오늘따라 이 모임이 더 정 떨어졌다. 무슨 정클럽.  가급적이면 모임

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A씨 남편이 대신 사과를 했지만,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한 두 번이 아니다. A

씨는 사사건건이 시비쪼다.

이런 사람은 가급적이면 자주 부딪치지 않는 게 상수다. 어떤 모임이나 코드가

안 맞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2월 반모임에서 반장을 A씨 남편으로 바꾸거나 모임장소를 변경하는 문제

를 두고 구역장님과 의논했다.  

오늘은 무척 기분 나쁜 날. '영우회' 갔다올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돈 쓰고, 시간 낭비하고, 기분 나쁘고. 이게 무슨 꼴이람.

안 따라 가자니, "내가 무슨 홀애비냐?"하면서 화를 내니 안 갈 수도 없

고...... 차라리, 술 안 마시는 교회로 가고 싶다. 물론 남편이야 펄쩍 뛰겠지.

엄마도 술 마시지 말라는 유언은 차마 하지 못하고 가셨다. 가는 마당에 사위

의 유일한 취미를 떼 버리고 갈 수 있느냐며. 에고, 내 신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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