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그림)

2012.04.07 20:10

지희선 조회 수:528 추천:32






                                                                                                                                                       풍경소리 2011


송나라 휘종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그는 곧잘 유명한 시 가운데 한두 구절을 골라 이를 화제(畵題)로 내놓곤 했다.

한번은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亂山藏古寺)’란 제목으로 출제되었다.

화가들은 무수한 어지러운 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그 구석에 자리잡은 고색창연한 퇴락한 절의 모습을

그리는 데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를 둘러보아도

절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숲속에 조그만 길이 나 있고,

그 길로 중이 물을 길어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다.

중이 물을 길러 나왔으니 그 안 어디엔가 분명히 절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어지러운 산이 이를 감추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절을 그리라고 했는데, 화가는 물 길러 나온 중을 그렸다.

화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장(藏)의 의미를 화가는 이렇게 포착했던 것이다.


이 글은 정민 <한시미학산책> 중 일부입니다.

그렇다고 제 그림 <풍경소리>가 휘종황제의 화제를

염두에 두고 그렸다는 건 아닙니다.

실은 제가 몇 년 전부터 악기 하나를 여기로 배우고 있습니다.

소금이라는 악기인데, 대금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됩니다.

제 사부님은 ‘풍경이 있는 소리’라는 국악 연주단의 아쟁주자인데,

올 봄에 정기 연주회가 있었지요.

그 때 공연을 보고 술집에서 혼자 그 감흥을 음미하다

문득 떠오른 이미지를 이런 식으로 표현해본 겁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림의 이미지가 휘종황제가 낸 화제와

좀 어울리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적인 색감을 써서 전통적인 동양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요.

이번 전시회에 낸 작품인데,

그냥 관객들의 반응이 괜찮아서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저는 이 그림에 따로 화제를 붙인다면 이렇게 적고 싶습니다.

‘절도 보이지 않는 데서 풍경소리가 들리네.’

좀 유치한가요? 좀 더 멋진 화제가 있으면 추천해주시길... .



P.S : '절도 보이지 않는 데서 풍경소리가 들리네.'
유치한가요 하고 갸웃거린 걸 보면 어딘지 미흡했던 모양이지요?
저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았답니다. 백수 정완영 선생 냄새가 살짝 나긴 하지만...
'보이지 않는 바람, 풍경소리를 데려가네.'
시각적인 산과 절이 엮였는데, 절이 다시 청각적인 풍경소리와 엮이니 조금 짝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이지 않는 바람과 짝을 맞추어 보았습니다. 소리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소리가 나려면 바람과 짝을 이루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거리상으로도 산과 절은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절과 풍경은 너무 가까이 붙은 느낌도 들었구요. 바람은 풍경소리를 두고 가 버리니 거리감에서도 앞구와 비슷하게 맞추어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고
보이지 않는 바람, 풍경소리를 데려가네"
제 실력은 여기까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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