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산문) 북간도 - 마가렛 모아

2012.01.06 09:57

지희선 조회 수:241 추천:28

수수 옥수수 콩 조 밭이 가까이 딸려 있는 네 채의 집들이 거기 있었다. 겨울에는 벌거벗은 갈색 언덕 너머로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집 추녀에서는 비명같은 소리가 났다. 내가 바람을 가장 기억하는 건, 바람이 한번 일면 며칠이고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거주지는 한 행복한 섬 같았다. 네 집들 북쪽으로는 도와주는 사람들의 집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조선족 아이들과 놀고 밥과 김치를 먹으며 자랐다. 그 너머의 외양간에는 젖소들이 있었다. 남쪽으로는 기다란 회색 성 앤드루 병원이 있었다. 거기엔 침대가 오십 개나 있었다. 그리고 언덕 배기에는 조선족 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집 건너에는 은진중학과 정구장이 있었다. 학교 지하에는 양지바른 교실이 있었고, 우리 일곱 형제자매가 거기서 공부를 했다. 우리 선생님 브라드쇼 양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멀리 캐나다에서 왔다. 마을에 있는 명신여자중학에서는 카스 양과 팔레토프 양이 가르쳤다. 이것이 그 시절 용정에 있는 캐나다 선교부의 모습이었다. 이 곳은 중국이지만, 수천을 헤아리는 조선족이 몰려 들은 곳이다. 경제 사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1910년에 조선을 병합한 일인 밑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이 때 캐나다인들이 주로 조선족에 도움을 주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1916년 2월에 그 곳에 왔을 때엔 병원이 없었다. 아빠 스탠리 하벌랜드 마틴과 어머니 마가렛 로저스 마틴은 의료사업을 시작하기 위하여 각각 캐나다 뉴파운드랜드와 미국 메인에서 왔다. 아빠는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였지만 의사학위와 외과 학위를 갖고 계셨다. 어머니는 공인 간호사였다.

얼마 있어 환자들이 의사집으로 밀려 왔다. 첫번 째 다리 절단수술은 우리 집 부엌 식탁 위에서 어머니가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였다. 그 남자는 회저병으로 죽을 뻔한 것을 수술로 생명을 구하였다. 이러자 '서양 의사의 의술'이 용하다는 말이 퍼지면서 점점 환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들은 바로 옆의 독신녀의 집으로 옮겨가야 했고 그 곳의 한 침실을 수술실로 쓰게 되었다. 병원의 첫 확장은 1916년 9월에 세워진 처치실이었다.

아버지는 매우 기뻐했다. 그것은 날마다 오후 두시에는 예배가 열렸기 때문이다. 환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신자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불행히도 태풍이 불어 닥쳐서 병원의 지붕이 날라 가고 벽이 쏟아져 내렸다. 아버지는 그 때 심정을 "마치 배를 잃은 선장 꼴이 되었다."고 회상하였다. 병원의 옆면이 개축되며 나머지 부분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의사 마틴은 젊은 조선인과 중국인 직원들을 조수와 보조원으로 훈련시켰다. 또 마우드 맥킨넌 양은 조선족 소녀들을 간호원으로 훈련하였다. 아버지는 또 그 곳에서 수도 배관이나 전기 시설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의 도움으로 수도관을 놓고 병원·교회·캐나다인 집들의 전기 시설을 손수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수도가 나온 몇 해 뒤에야 발전기를 구입하였다. 그 무렵에 우리 집에는 루트, 마가렛(필자), 에드나 세 딸이 차례로 태어났다.

불이 켜졌다! 그것은 우리가 본 첫 전등이다. 새 병원이 문을 연 뒤, 의사는 첫 아홉 달 동안에 1만여 환자를 보았다. 이렇게 용정의 캐나다 마을은 분주한 곳이 됐다.

우리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가 오자 흥분하였다. 병원 환자들과 우리 집을 돕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한 조선 엿이 든 큰 흰 주머니를 기억한다. 거기엔 엿과 눈깔사탕이 들어있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나무에 옥수수를 주렁주렁 매달고 종이고리를 만들어 달았다. 선물은 아주 간단하였다. 나는 한 작은 조갑지 상자, 손수건 그리고 작은 아주 작은 인형을 기억한다. 나는 아주 만족하였다.

음악은 우리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 어머니는 능숙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래서 우리는 일찍부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것이 나의 어린 시절의 행복한 초기 기억들이다.

- 부싯돌 2001년 봄호 (17호)  게재


마가렛 모아Margaret Moore : 용정 출생의 미국 연출가. 그는 60-80연대 한국에서 극단 <가교>의 연출가로서 연극 토착화에 힘썼다. 그의 공로가 인정돼 많은 상을 받았다. <부싯돌>에 기고한 이 글을 계기로 30-40년 대에는 서울의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온 의사 마틴의 전기를 쓰기 위하여 그녀는 캐나다 연고지에서 자료를 수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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