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움직이는 사이즈- 김진영

2008.01.25 02:01

지희선 조회 수:537 추천:50

[사랑은 움직이는 사이즈]

(고양시 소식지 2005년 3월호/ 수필집- 아주작은 공원 P30: 에세이사 간행)

사랑은 그 크기가 얼마 일까?
아니면 한 나라의 크기만 한걸까?
아기들 말처럼 두 손을 활짝 벌린 만큼일까?
하늘과 땅 만큼 일까? 정말 그렇게 큰 걸까?
사랑은 도무지 그 사이즈를 알 수가 없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비밀을 지키며 목숨을 바치고, 사랑에 빠진 왕이 왕관을 버리고 연인에게 달려가며, 공주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거문고를 찢어서 나라를 팔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도 한 해 동안 참고 있다가 구름다리에서 만나는 일로서는 사랑의 크기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 사랑이란 것이 일 년 만에 한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는 무지개다리 크기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슈퍼마켓에서 사는 사탕봉지 같은 사이즈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도 해본다.
그 사랑이 담긴 봉지를 품안에 넣어도 좋고, 사탕 맛이 달콤해서 좋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랑은 정도에 따라서 사이즈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새 신랑 사랑 크기로 해주세요” 하면 제일 큰 봉투를 사이즈를 주고,
“우리 영감 칠순인데 내가 전할 사랑만한 크기는 어디 있어요?" 하면
할머니가 요구하는 만큼 슈퍼마켓 주인이 푸른 하늘과 천국이 그려진 작은 종이 카드를 내 준다든지 하면 좋을 텐데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를 못하다.
사랑은 알 맞는 사이즈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올해 다섯 살배기 외손자가 나의 고민을 풀어주었다.
외손자는 일주일간 계속하던 유치원을 금요일에 마치면 사랑하고, 보고 싶은 외할아버지 집에 오고 싶어서 몸살을 하다가 딸이 데려다 주면 신이 나서 찾아온다.
외손자가 온 날 외할머니가 외손자에게 사랑의 사이즈를 물었다.  
“울 손자는 할아버지를 얼 만큼 사랑해?”
“많이 많이 요!”
“그럼 할머니는 얼 만큼 사랑해?”
외손자가 입장이 곤란한 듯이 한 참을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 앞에 서서 키 재기 해 봐요.”  
라고 해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외손자 앞에 나란히 섰더니,
외손자가
“거 봐요!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이 만큼 크잖아요”
하며 팔을 크게 벌리면서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를 더 많이 사랑하고, 할머니는 조금 사랑하는 거야! 알았지?” 해서 웃었다.
그러나 서운한 마음이 든 외할머니가 외손자에게 다시 물었다.
“할머니는 울 손자를 많이, 많이 사랑해!”
“얼 만큼요?”
“할머니는 외손자를 이 만큼 많이 사랑해” 하며 두 팔을 크게 벌리니
“근데 동생 재원이는 얼 만큼 사랑해요?” 하며 외손자가 물었다.
외손자는 현재 2살 난 여동생 재원이에게 시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재원이는 요만큼” 하며 양손을 동그랗게 모으고 작게 보여주니까.
“아하! 내가 재원이 보다 내가 더 크니까, 나를 재원이 보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하는구나. 할머니도 나하고 똑 같다. 하 하 하” 라고 말했다.
그렇다.  사랑의 크기는 늘 변한다.
외손자 아기의 말처럼 사랑은 사이즈가 없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그 사이즈를 키우고, 늘이는 만큼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지극한 사랑을 원하면 그 사이즈만큼 사랑이 전달되는 것이다.
아이들 사랑은 주고자 하는 사람이 전하려는 마음만큼 사이즈가 움직이는 것이다.  
요즈음같이 사랑이 메마른 시대에 아기가 말하는 남을 사랑하는 것은 재상의 소회보다 더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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