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떻게 오는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그 하나 하나의 시간을 모두 흘려보내고 난 뒤, 드디어 밤 12시에 도착했을 때, 또다른 오늘이 그 자리에 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하여 모두의 오늘이 온다고 해도 나의 오늘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또 오늘은 어떻게 오는 것인가. 아침 시간에 맞춰 해가 얼굴을 내밀고 세상을 훤하게 밝히며 그 밝은 하루로 오늘을 가져다주는 것인가. 그 또한 아니다. 오늘은 시간이 밀려간 뒤끝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해가 세상을 밝힐 때 아침의 얼굴로 오는 것도 아니다. 오늘은 사실은 전혀 뜻밖의 곳에서 온다.


새벽 네 시 반
술에 취한 어제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오늘의 사람들이 첫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어제부터 마신 술이 끝나지 않은 나는 아직 어제인데
새벽 네 시 반
거리에는 오늘의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어제의 거리를 고주망태 걷고 있지만
사실은 나도 사랑하는 이가 누워 자는 그런 데로 가서
살며시 방문을 열고
늦어서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다
다음부터는 일찍 들어올게,라고 맹세하고 싶다
지친 어제를 눕히고
코를 골며 잠들고 싶은 나는 아직 어제다

새벽 네 시 반은
어제로 간 사람들이 깊은 잠에 드는 시간
잠꼬대를 하며 한 쪽 다리를 사랑하는 사람의
말랑한 배 위에 올려놓는 시간
자다 깨어 시계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다시 누워
서로 팔베개를 해주는 시간이다
어제는 언제 끝날 수 있을까
손에 든 술잔을 내려놓으면 될까

새벽 네 시 반
우두커니 오늘이 밝아온다, 우리는 나는 아직 어제인데
—김주대, 「새벽 네 시 반」 전문


시인 김주대에 의하면 어제와 오늘이 갈라서는 시간의 경계선은 밤 12시가 아니라 “새벽 네 시 반”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지났다고 모두에게 오늘이 오는 것은 아니다. 술에 취해 아직도 그 시간에 거리를 떠도는 사람에겐 아침 해가 가져다줄 오늘이 없다. 그들에게 오늘이 없는 것은 오늘을 해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어떻게 오는 것인가.
시인의 전언에 따르면 오늘은 만취한 몸을 이끌고 사랑하는 사람이 누워자는 방으로 기어들어가 “늦어서 미안해”라는 말을 마치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마법의 주문처럼 들이밀고 그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난 뒤에야 온다. 때로 그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다음부터는 일찍 들어올게”라는, 하도 많이 반복하여 그녀가 들어주기는 들어주지만 절대로 믿지 않을 그 말을,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지킬 듯한 맹세처럼 덧붙여야 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그녀의 옆에서 잠을 자고서야 오늘이 온다.
“새벽 네 시 반”까지 술을 마시며 거리를 헤매는 동안 우리는 사실은 어제의 사슬에 묶인다. 시간의 힘은 강력해서 밤 12시를 지나면 어떤 어제의 사슬도 끊어내고 오늘을 가져다주지만 ‘고주망태’가 되어 “새벽 네 시 반”까지 거리를 걷는 자를 꽁공 묶어버린 어제의 사슬 앞에선 시간의 힘도 무기력하기만 하다.
아침 해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겐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뜬다는 그럴싸한 말이 있어 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나면 일단 해가 밝고 난 뒤에 어제가 어제라는 시간의 저편으로 물러나고 예외없이 오늘이 온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전설의 그 말로 어제를 무마하려고 해도 “새벽 네 시 반”까지 술을 마시고 어제의 사슬에 묶인 자의 아침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다.
이 강력한 어제의 사슬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 어이구, 이 웬수, 오늘 또 술이냐고 구박을 하고, 그리하여 그 잔소리끝에서 “늦어서 미안해”라는 말과, 그것으로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면 “다음부터는 일찍 들어올게”라는 맹세를 추가로 받아낸 뒤에야 우리를 그 곁에 용납하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술취한 우리들의 잠자리를 그 곁에 펴주는 여인이 바로 그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그 여인은 술먹고 들어온 우리가 그 곁에 몸을 눕혔을 때 우리들을 그냥 재우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들을 재우면서 우리들을 묶고 있는 어제의 사슬을 하나하나 풀어 우리의 오늘을 마련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오늘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여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제에 묶인 시인이 사랑하는 여인이 오늘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 지점은 시와 현실이 갈라서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인은 “어제로 간 사람들이 깊은 잠에 드는 시간,” 바로 “새벽 네 시 반”에 아직도 어제의 그 거리에 남아 어제를 끝내고 오늘을 가져다줄 여인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가져다주는 오늘로 아침을 여는 사람들은 오늘을 가져다준 여인에 대한 감사와 행복으로 그 아침을 여는 경우가 그렇게 흔치 않다. 그들은 잠은 달게 자고 아침은 얻어먹겠지만 빨리 오늘을 뛰쳐나가 미래로 가고 싶어하며 그리하여 오늘을 어제로 만들어 영원히 그 어제의 구속에 묶이고 싶은 심정이 되곤 한다. 그들은 열린 오늘이 두렵다. 사랑하는 여인은 어제의 구속을 풀어 오늘을 가져다주는 한편으로 그 오늘의 아침이면 어김없이 잔소리를 반복하며 우리들로 하여금 오늘을 뛰쳐나가고 싶게 만든다. 시인의 오늘에 대한 그리움은 그 오늘을 사는 자들에게는 큰 동의를 얻어내기가 어려우며, 그런 점에서 바로 시인이 그리워하는 오늘에서 시와 현실이 갈라서고 만다. 오늘은 그리움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지겨움이다.
시인이 그 사실을 몰랐을까.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아도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시인은 어제를 끝내고 오늘로 가고 싶어했을까. 왜 새벽 네 시 반의 그는 우리에게 오늘에 대한 그리움을 내민 것일까.
이쯤에서 비밀 하나를 밝히자면 사실 시인이 “새벽 네 시 반”의 거리를 헤매며 어제의 사슬에 묶여갈 때 그를 그 거리에 팽개친 것은 나였다. 아니, 나만이 그를 팽개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그를 팽개치고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소 위안이 되는 것은 그래도 내가 마지막으로 그를 팽개쳤으며, 나중에 들은 시인의 말에 의하면 나와 같이 사는 여자가 내 전화를 받고는 우리의 술자리에 나타나 마치 독수리가 참새를 낚아채 가듯이 나를 데려가 버렸다고 한다. 말하자면 나와 함께 사는 여자는 내가 기어들어오길 기다리지 않고 아예 술자리로 달려온 뒤 나를 집으로 데려다가 잠을 재우고 나의 오늘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다음 날 내 손에 쥐어진 나의 오늘이 그녀가 가져다 준 것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어디 나만 그랬으랴. 매일매일 어제의 사슬을 풀려나 오늘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 오늘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으리라.
거의 매일매일 오늘이 어김없는 우리는 오늘이 넘쳐나 그 고마움을 모른다. 아니, 고마움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오늘을 지겨워하기까지 한다. 다소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때로 오늘을 뛰쳐나가 미래로 가려하고 어제의 포박자를 꿈꾸기까지 한다.
“새벽 네 시 반”의 시간으로 팽개쳐진 시인 김주대는 오늘에 대한 그리움을 새겨 그 지겨운 일상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 행복은 시인의 눈에 너무 커서 어떤 잔소리의 지겨움도 덮고도 남음이 있다. 말하자면 시인은 어제에 포박된 자의 증언으로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매일매일 흘려보내고 있는 오늘의 행복을 챙겨준다. 그러니 오늘에 대한 그의 그리움은 사실은 오늘의 행복을 감지하고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손에 쥐어주는 시인의 선물이다. 그의 선물을 잘 챙긴 사람들은 이제 오늘의 지겨움이 오늘에 배부른 자의 사치란 것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리라.
그러나 우리에게 오늘의 행복을 챙겨준 시인은 여전히 어제에 묶여 있다. 그의 덕분에 오늘의 행복을 챙긴 나는 일말의 양심이 있어 그의 어제와 오늘이 걱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를 사랑하는 여인 뿐. 그러니 그를 사랑하는 세상의 여인들이여, 어제에 묶여 버려진 그를 구하시라. 그의 머리를 무릎에 눕히고 곤한 잠 속으로 그를 이끌라. 그리고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를 묶고 있는 어제의 사슬을 하나하나 풀어서 그의 오늘을 그에게 가져다 주시라.
(2011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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