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소/ 김수환


시장에서 누런 소를 한 봉지 받아들었다

검은 위가 찢어질 듯 위태롭게 출렁인다

고단한 그의 무게는 봉지만큼 가벼워졌다

어제는 그가 늘 빵빵하게 넣고 다녔던

초원이 콘크리트에 쏟아졌을 것이다

흥건히 바닥을 적시고 검은 장화에 짓밟혔으리

젖어 있던 큰 눈과 저 홀로 굽은 뿔과

귀에 꽂고 다니던 번호표도 버리고

어디로 가시는 건가 구절양장 그 마음


◆장원 약력

1963년 경남 함안 출생.
현재 영어학원 운영.
2009년부터 진주시조시인협회에서 시조 공부.



(차상)

보랏빛에 대하여/윤송헌


앙칼진 꽃샘바람이 2월을 움켜쥐자

새눈 뜬 여린 잎이 몇 점씩 떨어진다

떨어져 멍이 드는가 몸빛이 그늘이다

밖으로는 서늘하게 그러나 들끓던 것

야단법석 이주해 온 내 사랑의 눈보라여

오던 길 잠시 멈추고 적설의 키를 재는,



(차하)

눈 오는 날의 소묘/이상


평원을 삼킬 듯이 까맣게 몰려오는

북극의 병사들은 폭풍을 일으키며

북반구 동토의 땅을 유린하고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미완의 설원 위에

수레의 발자국을 남기며 내달리던

전차가 내지르는 함성 날 세운 바람소리

무거운 폭설 탄에 위장한 병사들도

쓰러져 나뒹굴고 새들도 떠나갔다

이런 날 흔들리는 것 어디 마음뿐이랴

빗금 쳐 날아오는 은빛의 화살촉들

온몸에 방패 없이 가슴으로 막아 선다

권태로 얼룩진 일상 깨뜨리는 은빛 화살



<이 달의 심사평>

예리한 감각으로 구제역의 아픔 포착

애가 타들어간다. 피눈물을 흘린다. 소가, 소의 주인이, 소를 매몰하는 공무원이, 소가 매몰된 땅이, 그 땅에 흐르는 물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이 달에는 그래서인지 ‘소’에 관한 작품들이 많이 들어왔다. 장원작도 ‘소’다. 김수환 씨는 쇠고기 한 봉지를 사면서 소의 ‘구절양장’을 읽는다. 늘 자신의 모든 것을 인간들에게 다 내어주고 떠나던 소. 이제는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으로 더 큰 슬픔의 길을 가게 되었다. 화자는 이 비극 앞에서 새롭게 시작된 비극 이전의 비극, 슬픔 이전의 슬픔을 제시하여 현실의 아픔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그 기량이 돋보인다. 함께 보낸 ‘음모’도 수준작이었다. 예리한 감각과 언어 운용 방식이 ‘소’ 만큼 돋보였다. 그러나 음보가 다소 삐걱거리니 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차상은 윤송헌 씨의 ‘보랏빛에 대하여’다. 인생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인상적이다. ‘밖으로는 서늘하게’ 보이는 것들도 알고 보면 내 안에서 ‘들끓던 것’이라는 고백도 삶을 대하는 진지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고 ‘오던 길 잠시 멈추고 적설의 키를 재는’ 같은 성찰의 모습도 아름답다. 둘째 수 중장과 종장의 도치와 ‘떨어져 멍이 드는가 몸빛이 그늘이다’라는 묘사도 신선했다. 첫째 수 전반부의 다소 낡은 표현만 아니었으면 더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차하는 캐나다에서 원고를 보내온 이상목 씨의 ‘눈 오는 날의 소묘’가 차지했다. 몇 차례에 걸쳐서 보내온 그의 응모작에서 우리 시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열정을 잘 읽을 수 있었다. ‘북반구 동토의 땅’ 근처에서 화살이 되어 날아오는 눈을 ‘방패 없이 가슴으로 막’고 살아가야하는 이방인의 힘들고 치열한 시간들을 잘 표현했다. 그러나 보내온 작품들이 모두 너무 길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은 법처럼 시를 너무 길게 끌어가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

  서해경·정민석씨의 원고도 눈길을 끌었다. 더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아직도 시조의 형식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시조가 아닌 응모작들이 많아서 아쉬웠다.

심사위원=오승철·강현덕(집필 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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