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감상) 감자꽃-권태응

2012.03.11 10:40

지희선 조회 수:413 추천:29



감자꽃

권 태 응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소학생》1947년 10월




   그렇다. 감자의 꽃은 자주색과 흰 색의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이 꽃의 색깔이 감자의 색깔을 결정짓는다.
   자주색 꽃이 핀 감자는 자주색 감자이고, 흰 꽃이 핀 감자는 흰 감자이다. 이것도 일종의 진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랜 동안의 관찰과 체험으로 하여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다. 자주색 꽃이 핀 감자의 뿌리는 자주색을 띠고 있었고, 흰 꽃이 핀 감자 뿌리는 흰 색이었다.
   이처럼 진리는 간단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구나 쉬 보아 넘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곳에서 참다운 이치가 있음을 이 시는 깨우쳐 준다.
   평소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멩이 한 개조차도 예사로이 보지 않는 예리한 관찰력이 이런 시를 낳게 되었다. 전체 4행씩 2연으로 된 짧은 시이면서도 이 시는 큰 깨우침을 준다.
   권태응 선생님은 충북 충주에서 출생하여 젊은 나이로 작고하였다. 선생님을 기리는 뜻에서 고향의 유적지 탄금대에 이 시를 새긴 노래비가 있다.(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신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해서 이름 붙은 탄금대는 충주에 있지요, 이 탄금대에 노래비 하나가 서 있는데, 거기에 이 동요가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그 곳 충주에서 태어나 농촌 정서를 단순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시어와 운율에 담아 노래해 많은 어린이들에게 풍성한 상상력을 제공했던 권태응(19018∼1951) 시인을 기리려는 것이지요.
   세상의 일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것 투성이지만, 세상의 때를 벗고 처음의 마음 상태로 돌아가서 보면 의외로 그것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요. 금세 확인될 수 있는 사실도 아예 믿지 않게 된 풍조를, 단순한 어휘와 리듬의 규칙적인 대조와 반복을 통해 씻어내면서 환한 웃음을 웃게 하는 한 편의 동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덕규)

                자연에 순응하는 생명의 경이로움
  <감자꽃>은 단순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진국이 우러나오는 수작이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 감자"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냄이라는 진리와 더불어 종(種)의 명령에 순응하는 개체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자주꽃 핀 데 하얀 감자가 달리지 않고, 하얀 꽃 핀 데 자주색 감자가 달리지 않는다. 무릇 생명 가진 것들은 그 종의 진실을 거스러지 않는다. 우리는 날마다 이 기적과 신비를 체험하며 이 우주 안에서 거대한 생명의 코러스에 참여하는 것이다.
   본디 감자는 페루와 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안데스 산맥이 그 원산지다. 16세기에 유럽으로 건너온 뒤 18세기 말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사람과 감자는 전략적 호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감자는 사람에게 식량을 보태주는 대신에 사람에게서 더 많은 지배 영역을 얻어낸다. 여름 장마가 올 무렵 감자꽃이 핀다. 땅속에 숨어 사는 한해살이 풀 은자(隱者)는 파보나 마나"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다. 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시인은 놀라고 경탄한다.
   권태응(1918∼1951) 시인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때 치안유지법 위반 협의로 1년간 옥살이를 한 기록이 있다. 그 뒤 폐결핵에 걸려 고향에서 요양했는데, 그때 시골 체험이 알알이 든 동시와 동요를 많이 내놓았다. 아이의 손길까지 귀히 빌려 쓸 수밖에 없이 바쁜 수확기 농촌의 일상을 엿보게 하는 시도 있다.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벼 멍석에 덤벼드는/ 닭을 쫓고//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양지쪽에 묶어 세워둔/ 참깰 털고//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뒤꼍에 오볼 달린/ 대출 따고"(<막대기 들고는>). 아이는 양광에 마르는 벼의 알곡을 쪼려는 닭을 쫓거나 참깨를 털어야 한다.
   씨눈을 가진 감자알은 흙의 자양분을 끌어다가 둥글게 익는다. 이 성숙의 결과가 원만(圓滿)이다. 이 풍부한 땅의 부(富)를 산처럼 쌓고 인류가 공평하게 나눈다면 10억 명의 사람들이 굶어 잠 못 드는 일은 없을 터다. 탐욕이라는 짐승들이 감자를 독점하려고 한다. 나는 태정이네 감자밭 둔덕에 쪼그리고 앉아 저 혼자만 잘살겠다는 이 짐승과 인류가 꿋꿋하게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1968년 충주 탄금대에 <감자꽃>을 새긴 노래비(碑)가 세워졌다. (장석주 시인)

  권태응(1918∼1951)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동요 시인이었다.
   그는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해서 '친일파 구타 사건'으로 졸업을 앞두고 종로경찰서에 구금되는가 하면, 1937년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에는 지하 독서회 활동으로 구금과 퇴학을 당하고, 1939년 5월에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스가모 형무소에 투옥되는 등 항일 민족 의식이 투철했다. 계속되는 감금 생활로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서 폐결핵을 앓다가 1951년 피난길에서 33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사후인 60돌 광복절에 독림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는 1947년 4월에 발행한 <소학생>지 제45호에 '어린 고기들'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1950년까지 매호마다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동요집 <감자꽃>을 펴낸 것은 1948년이다. '감자꽃'은 불과 36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이지만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겉을 보면 속을 안다는 것일까. 진리는 누구나 의심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속에 평범한 듯 숨겨져 있다. 시인은 이것을 동심의 눈으로 찾아내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시인이 '감자꽃'에 대하여 갖고 있는 심층 심리를 파악할 수만 있다면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을 관련지어 많은 시대적 담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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