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강과 골프 황제의 추락

                                                                                       

                                                                                             조옥동 (시인, 수필가)

 

 그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다. 풀장의 물이 흘러나올 시간을 어찌 아는지 물소리에 맞춰 포로롱 경쾌한 날개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에서 담장으로 담장에서 벤치로 한 단계 씩 내려 와 흘러넘치는 물가로 걸어 나온다. 처음엔 짝인 듯 둘 이었는데 점차 친구들까지 불러와 한 무리가 목을 축이고 좌우로 몸을 뒹굴며 목욕도 하고 한참씩 놀다 간다. 한가한 뒤울안의 풀장에 새들이 찾아 와 생동하는 삶의 기쁨을 선사해준다

여름내 초록색이던 열매가 노란색으로 변해가며 가지가 늘어져 가는 오렌지 나무가 있고 그 옆엔 한 그루 석류나무가 있다. 오후의 햇살을 받고 서 있는 석류나무의 단풍잎은 은사시나무 잎처럼 유난히 노랗고 환하다. 석류 몇 알이 발갛게 볼을 붉히며 노란색 두루마기 앞자락에 달려 있다.

열매는 결실의 기쁨으로 빨간 느낌표가 되기도 하고 한 세월을 끝낸 의미의 마침표도 되며 비바람을 견뎌 낸 감사의 눈물도 된다. 과일나무를 바라보며 그 열매들이 주는 의미들로 내 가슴엔 잠시 저리고 아리게 전류가 흐른다.


자연은 색깔과 모습이 바뀌면서 저절로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느끼도록 먼저 우리의 감성을 깨워 고취하거나 또는 우울이란 저기압의 기류에 휩쓸려 휘청거리게 만든다. 계절의 강을 건너는 때엔 자연이 사람을 다스린다는 생각을 더욱 실감하며 나는 창가에 서 있는 한 그루 머리카락 달린 작은 나무가 된다.


 몇 년 전 유명한 스포츠 스타의 외도행각이 발각되어 그는 세상의 질타에 굴복하고 용서를 구했다. “자신의 적절하지 못한 행실이 가족을 다운시켰다.”고, 그는 ‘다운’이란 말을 썼다. 매우 적절한 단어를 실감나게 사용했다. 골프 황제의 위상도 골프채를 한 번 스윙하듯 짧은 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가족과 수많은 선후배, 팬들, 광고주들을 ‘업’ 시켜 줘야 할 인물이 그들의 실망을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한 번 쏟은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기에 안타까웠다. 허나 그는 얼마기간 근신하며 자신의 추락을 자인하는 태도로 초록필드에 나타나지 않다가 옛날의 황제라는 명성을 되찾고 싶고 골프로 얻은 삶의 기쁨을 그는 어디서든 찾을 수 없는 듯 지난 날 놀던 곳을 잊지 못하고 계속 이름 있는 경기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하나의 예이고 날마다 TV에서 제법 잘 나가고 있는 연예인 또는 사회 지도층에 있는 유명인들의 추락을 우리는 흔히 보고 듣는다. 그들은 몸도 마음도 다운되고 한 번 실추된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면 떠나간 옛 사랑의 속삭임처럼 옛날 영광의 그림자만을 홀로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들을 기억하고 아끼던 팬이나 이웃들에게 조차 영영 잊혀 질 존재로 될 것이 염려된다.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슬프고 아프게 만드는 요소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게 된다. 첫째는 나 자신이다. 행복과 불행을 누구에게 핑계 댄다면 불행해질 사람이 없다. 자식과 배우자 그리고 부모, 나는 그들과 묶여있는 매듭이다. 그들의 일들이 나의 행복과 기쁨의 열쇄가 되고 나의 문제가 그들의 가슴에 슬픔과 아픔을 치는 날카로운 못이 되기도 한다. 형제나 이웃들의 작은 행복이 나를 즐겁게 한다. 가까운 사람들은 서로 행복지수를 높여주고 또 낮춰준다.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소외로 인한 고독과 이웃의 배신을 이기지 못해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음은 물질은 삶에 하나의 조건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타이거우즈는 자신의 잘못에 스스로 깊이 후회했을 테고 가장 심한 상처를 입은 것도 자신이요 다음은 사랑하는 가족이었을 것이다.

 

 가까이 서 있는 웅숭깊은 자연이 우리의 심령을 어루만져 준다. 열매와 씨앗들로 계절의 결실을 나눠 주고 여름날엔 보기 좋은 옷을 입고 풍성한 그늘까지도 우리에게 다 주었다며 나무는 속으로 연륜의 나이테를 감고 서 있다. 이 계절의 강을 다 건너면 햇빛과 비와 바람이 공들인 것들을 다 나눠준 깨끗한 들판은 고요하고, 무겁게 매달고 있던 열매를 내려놓은 어깨와 팔이 가벼울 것이다. 자연을 닮아 이 가을엔 나도 성숙이란 나이테를 또 하나 감고 싶다. 나와 함께하는 우리 곧 가까운 사람들의 격려와 위로의 말, 포장 없는 칭찬과 진솔한 충고 한 마디, 멀리서 날라 온 반가운 소식 그리고 찡긋 건네주는 따뜻한 웃음, 이런 탐스런 눈송이들을 맞으며 즐거워하리라.


 이런 눈송이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깨끗하고 행복한 세상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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