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부자들

                                                                                                                 조옥동

 

 나를 번민케 만드는 장소가 있다. 출근길과 퇴근길, 프리웨이에서 로칼 작은 길로 접어드는 길목에 스톱사인과 또는 신호등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남자나 여자 또는 허름한 젊은이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노인이 서있다. 그들은 가련하게 포장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어떤 이는 기타를 들고 연주하며 노래를 한다. 도움을 청하는 사유를 굵게 쓴 조그만 누런 종이를 들고 있거나 길옆 철책에 걸쳐 놓고 지나는 차의 운전자 쪽 창문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이런 구걸모습은 시내 통행이 잦은 길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바쁜 출근시간 또는 피곤한 퇴근시간임에도 소수의 사람들은 잠시 멈춰 창문을 열고 그들에게 동전이나 지폐를 건네주고 때로는 먹을거리를 주는 이도 있다. 내 앞의 운전자가 그들에게 동정을 표할 때 나는 창문을 열가 망설이며, 반대로 앞차가 그들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면 나라도 그들에게 동정을 표해야지 주춤거리며 몇 초라는 번민의 터널을 매일 지나고 있다.

 

 만일 거리구걸을 금지하는 법이 있다면 아무도 길가에서 추위로 떨면서 아니면 여름 햇볕아래 진땀을 쏟으며 서 있지를 못하고, 반대로 길거리에서 걸인을 보면 반드시 얼마 이상의 도움을 줘야하는 법이 있다면 꾀 있는 사람들은 영리하여 흔히 사용하는 GPS를 보면서라도 그들이 기다리는 길목이나 길옆을 피해 다닐 것이다. 나는 두 방법 모두 길가의 걸인을 없애는 좋은 방법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부유한 나라일지라도 국민의 빈부 차이가 존재하는 한 이 같은 구걸행위는 영원히 사라질 현상이 아니다.

 

 내 출근길에 걸인이 있는 코너는 고등학교와 주립대학이 가깝고 종합병원과 쇼핑센터로 직통하는 길목이라 젊은 학생들부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항상 빈번히 통행하여 구걸하는 위치로는 최상의 지점이다. 얼마 전엔 프리웨이 언덕 아래 그 길의 바로 맞은편 작은 숲에 텐트촌이 생겼다가 며칠 후 즉시 철거되었다. 들려오는 얘기는 그 길목을 사려는 걸인이 수입을 측정하려 머물려고 했단다. 그곳에서 수년간 구걸하던 통기타 할아버지는 몇 유닛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으로 자기가 개척한 그 구걸장소를 이사람 저 사람에게 빌려주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됐다는 소문은 믿거나 말거나 한 확인할 수 없는 내용으로 나에겐 기상천외의 얘기다. 구걸길목이 마치 무슨 비즈니스 같이 그들 사이에선 팔고 사는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간혹 어느 도시의 걸인이 수 만 불을 요양원이나 불쌍한 사람을 돕는데 기부했고, 또는 가난한 할머니가 평생 폐품을 모아 판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매우 곤궁해 보인 사람이 믿기 어려운 거액을 자신을 위해 쓰는 대신 좋은 일에 기부했다는 선행은 보통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냉랭한 사회에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해마다 국가 또는 세계 부자들의 순위를 신문에 발표하는데 순위가 조금씩 오르고 내리며 변하긴 해도 명단은 거의 고정되어 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에서 그들이 소유한 부의 수치는 행복의 수치가 되고 행복의 순위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렇다고 100%수긍하지 않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히려 '가난한 부자들'에서 가난이란 말의 선한 뉘앙스를 느낀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자들의 삶이 한층 고귀하다. 높은 곳의 물이 낮은 곳으로 떨어질 때 수위가 높을수록 에너지를 많이 생성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 주위에도 휠체어, 털모자 지팡이만 남기고 가신 목사님, 누더기가 된 가사 두벌이 오직 유품인 스님 그리고 신부복과 묵주만을 남기신 추기경님이 있었다. 이 어른들은 섬김의 자세로 가진 모든 것을 베풀고 베풀다가 세상을 떠났다. 오래도록 가난한 부자들의 진정한 본보기로 기억될 것이다. 세상을 품는 가슴을 지니면 낮은 곳에서 더욱 잘 보인다고, 내 것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 행복의 고향이라는 말이 옳다. 이웃들로 받은 친절과 위로를 마음에 저금해 두고 필요한 곳에 오히려 더 많이 베풀려는 인생에서는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풍긴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하지 않다."고 말한 솔로몬 왕은 거의 3000년 전에 이 시대를 예견한 것이다. 가난한데 부하고 부자인데 왜 가난한가를 세상은 알고 있다. 오늘의 양식에 만족하지 않고 내일 또 내일의 것까지 한 번에 삼키려는 삶의 횡포에 젖어 부자로 가는 정당성이 흐려지고 있다. 타인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거저 얻어 부자가 되려는 그릇된 환상의 그늘 속에는 가난한 부자, 진정한 부자는 없다. 이미 먹어버린 밥그릇은 나눌 수 없지만 내일 앞에 놓일 밥그릇을 나눠 먹으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저 가파르고 어두운 미래라는 골목에 등불이 보인다.


 출퇴근길에서 작은 동정을 베푸는 일로 번민하는 오늘 "가난한 부자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놓고, 내 스스로 긍정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새로운 번민을 자초하고는 한 날의 괴로움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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