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에서 만나다/『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16년1-2월호
2016.02.28 18:38
행성에서 만나다
조옥동
내 허블이 찾아 낸 행성
매끄럽게 포장한 길은 없고
그래 도랑하나 구불구불 흘렀던 생명자국
도란도란 얘기로 저희끼리 흐르는 곁을 따라
급하지 않게 느리지 않게 걸어가면 좋겠다
마주 오는 외발자전거 탄 외인을 만나면 손짓인사를
바람에 날리는 풀꽃에도 우아하게 눈웃음 나누다
지구에 두고 온 얼굴이 잠시 떠오르면
풀밭에 누워 핸드폰 속 사진 한참 보다가
비슷한 얼굴을 찾아 그들 틈을 비집고 찾아가는 이방인
확실한 것 하나 알지 못한 무례한 여행을
꿈속을 헤매 듯 끝낼 수는 없기에
귀환을 서두르지 못하다
떠나보내지 못한 것들
떠나보면 놓아지네 우리
얽혀진 애증의 매듭이 풀리면
외인은 어디서나 외인이라고 본래
본향이란 없음을, 마음의 상처 치유해주는 또 다른
행성의 따뜻하게 낯선 거리에 앉아
서가의 묵직한 고서 얼굴에서 읽었던 고적함을 애써 지우며
언젠가 영원히 떠나야할 불안한 의자 지구를
세월의 골짜기 명암을 차곡차곡 접으며 회전하는 정거장을
허블의 거울에서 멀리 밀쳐내는 수줍은 용기
나를
나는 만나다